사람들은 평생 자신의 모습을 자기 눈으로 볼 수 없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눈이 몸에 붙어있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은 그저 내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 것일 뿐, 나의 참 모습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똑바로 바라봐줄 수 있는 또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사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존재가 없다면, 사회는 곧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알지 못하는 삐에로와 다를 바 없게 된다. 서경식은 재일교포, 디아스포라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대해 평생을 두고 연구하고 있는 학자이자 저술가이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있는 경계인이기도 하다.
과거 세대들이 보여줬던 끔찍한 인권 침해 사례들에 대한 망각을 우려하며 끊임없이 한국과 일본 사회에 나치 독일 수용소에 대한 고발자였던 쁘리모 레비를 소개하기도 하고, 이산(離散) 이주자들을 뜻하는 디아스포라에 대한 활발한 연구를 통해 그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도 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대를 건너는 법>은 그가 최근 신문지면을 통해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은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조직된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칼럼집보다는 훨씬 일관적이고 뚜렷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기억에 대한 망각을 강하게 경고하고, 디아스포라와 난민 문제, 그리고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강한 배타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서경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일교포라는 주어진 정체성을 수많은 고민과 사색을 통해 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 승화시키며 그것을 통해 한국 사회에 자성과 포용의 메시지를 제공한다. 서경식과 같은 존재가 한국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아직은 자신의 모습을 고쳐잡을 수 있다는 반증이라는 점에서 안도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과연 아픈 과거에 대해 쉽게 잊어버리는 증세를 잘 치유해나가고 있는지는 앞으로도 줄곧 지켜봐야만 할 것 같다.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유태인 피해자가 살던 곳에 그들의 이름을 적어 둔 '걸림돌'을 놓아둔 독일 사회처럼 한국 사회가 보다 성숙해질 수 있도록 이끌 보다 많은 비판자와 경계인들이 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베를린에서는 많은 것을 봤지만, 그중 내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걸림돌'이다. 베를린 재주 일본인 K씨가 가르쳐주었다. 보도에 깔린 돌만한 것으로 놋쇠 같은 금속제다. 거리를 걸어가면서 K씨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도로 위나 주택의 현관 앞 여기저기에 걸림돌이 있었다.
잠시 서서 자세히 보니 거기엔 사람 이름과 날짜가 새겨져 있다. 예전에 그 장소에서 살고 있던 유대계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과 그들이 그곳에서 쫓겨나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날짜였다.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은 현관을 출입할 때마다 그 집의 옛 주인이 강요당한 잔혹한 운명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K씨에 따르면 걸림돌은 쾰른에 사는 어느 독일인 아티스트가 시작했는데 지금은 독일 각지로 퍼져있는 모양이다. '걸림돌'이라고 이름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과거 나치와 홀로코스트에 인류의 역사가 걸려 넘어졌다는 뜻이다. 또한 그 사실을 잊어버리면 오늘날의 새로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경고다. 그리고 일상의 삶 속에서 일반인들이 실제로 그 돌에 걸려 자칮 잊기 쉬운 과거를 상기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그 돌에 걸려본 사람은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할 수 없을 것이며,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자신과의 '관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흡사 기지에 찬 게릴라전과 같은 '기억의 싸움'이다. - 서경식, 시대를 건너는 법,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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