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에게 있어 어렵게 생각되던 책이 쉽게 읽히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을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진흙 속에 가려져 있는 진주를 발견한 것 마냥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대를 건너는 법>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행운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수준높은 지식을 얻는 것과 더불어 쏠쏠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건너는 법>은 재일교포 2세이자 대학교수로 재직중인 서경식이 지은 책이다. 서경식이 처음 글을 쓰게 된 계기는 흥미롭다. 당시 일면식도 없는 한 기자에게 연재 제의을 받고 '조국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다는 심정'으로 부탁을 받아들이고 첫 시작을 했기 때문이다. <시대를 건너는 법>은 자신이 체험한 재일교포문제를 비롯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 아우슈비츠 등 어려운 국제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을 들려준다. 책의 내용은 그가 한겨레를 비롯한 국내 여러 매체에 기고한 칼럼을 모아 엮어냈는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던 책의 내용은 외외로 쉽게 다가왔고 작은 감동 또한 전해주었다. 저자에게 있어 재일교포 문제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이었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는 자신의 지원하고 있는 어린이와 관련된 일이었다. 또 독일 나치의 아우슈비츠 문제는 자신이 독일에서 살 때 생존자들로부터 보고 들은 내용이었기에 어느 것 하나 남의 일 같은 게 없었다. 그렇기에 저자의 글은 공자왈, 맹자왈처럼 붕뜨지 않고 낮은 시선으로 현실에 안착해 있었다. 나는 우리 아들 아흐마드가 '테러리스트'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물며 '자폭공격' 따위로 죽기를 바라겠는가. 그것을 막자면 이 세상에 아직 정의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도 희망을 가져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줘야 한다. 하지만 세계는 그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P206 - 내 아들 아흐마드는 무사할까 이런 20세기 역사의 절망적 사건들을 한꺼번에 껴안은 저자, 그렇기에 체험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글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무엇보다 저자는 재일교포2세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살아가면서 느낀 '일본의 우경화'와 '성의없는 역사의식'에 대해 강한 비판을 담아낸다. 서문에 밝힌 '재일 조선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과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를 돌며 느낀 이 시대의 위기에 경종을 울린다'는 작가의 다짐이 책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저자는 재일교포로 살아가야만 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내용의 진정성을 더한다. 그 비판의 밑바탕 대부분은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과 괄시였다. 그런 차별속에서 성장한 저자 서경식에게 일본의 아시아침략,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만행에 대해 사과조차 없는 일본의 행태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은 존중받지 못했다. 프리모 레비들, 아우슈비츠 생존자들만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를 비롯한 동아사이아의 살아 있는 증인들은 존중받기는커녕 '돈 타낼 목적으로 거짓말하고 있다' 따위의 욕까지 먹고 있다. 일본에서는 최근 10년간 반동화가 급격히 진행돼 과거 침략이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려는 우파세력이 정권을 쥐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공공연하게 핵무장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말로 최대한의 예민함을 발휘해 증인들이 미래를 위해 울리는 '불길한 경종'에 귀를 가울여야 할 때다. P260 -참극 생존자들이 세상을 저버리는이유 <시대를 건너는 법>은 한반도를 강제정렴했던 일제, 일본에 대한 사과요구가 왜 필요한지를 논리있게 알려준다. 일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해야 한다는 책의 내용은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사과나 반성을 요구하지 않겠다'라는 최근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인의 발언에 강한 경종을 울리게 한다. 저자는 전후 처리문제 있어서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대조하면서 '반성없는 일본'에 대하여 소리높여 비판한다. 하지만 지금 그런 용기있는 행동은 큰 벽에 부딪쳤다. 일본 내 우익들의 견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숱한 협박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끊임없이 지켜나가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신념을 <시대를 건너는 법>에서 주장한다. 부디, 일본의 만행을 잊지 말라고, 그렇지 않다면 또다시 암울한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고. 덧붙여 저자는 이런 자신의 생각이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한국인 지성들이 갖춰야 할 생각이라고 믿고있다. 그렇기에 책을 읽는 내내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왜일까?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저자의 노력에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자의 신념은 고스란히 책에 쓰여 우리에게 찾아왔다. <시대를 건너는 법>은 말해준다.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 길이, 올바른 한-일 관계를 정립해 나가는 길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재일교포와 얽히고설킨 한일관계의 매듭을 푸는 길이라고 책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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