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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8일 토요일, 날씨 구름 후 맑음, 순례 36일째.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 데 레이까지, 25km.
오전 7시 15분 출발, 오후 3시 도착.


한밤 중의 뒤척임도 거짓말처럼 잘 잤다. 얼굴에 물을 묻히고 짐을 챙겨 1층 식당으로 내려왔다. 벌써 많은 순례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윤소 언니와 테이블에 마주앉아 어제 남겨두었던 빵에 꿀을 찍어 우유와 함께 먹었다.

그 옆에서 진한 초콜릿 우유를 마시고 있는 호르케 네가 보였다. 부스스한 채로 인사를 나누고 “그게 아침이야?” 했더니 “이 정도면 아침에 걷기 충분해” 란다. 어젯저녁 함께 걷자고 말했던 터라 그는 우리가 식사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를 따라 걸어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언니들과도 함께 걷겠다고 약속해두었는데….

“나 오늘은 한국 친구들과 같이 걷고 싶어. 미안해.”
“아냐, 너 오래간만에 한국 친구들 만난 거잖아. 나도 어떤 기분인지 이해해. 오늘은 네 친구들과 함께 걸어. 어디까지 갈 예정이야? 거기서 만나면 되잖아.”
“우리는 오늘 ‘팔라스 데 레이(Palas de Rei)’까지 갈 거야.”
“그럼 그곳 숙소에서 만나자.”

이른 아침, 산등성이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언니들과 약속한 일곱 시를 조금 넘겨 걷기 시작해 윤소언니의 걸음이 바쁘다. 언니를 따라 바지런히 걷자, 뒤를 따라오는 호르케 네들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같은 길 위를 걷는 것이니, 언제든 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생각을 거두고 발을 내딛었다.

길은 눈에 띄게 오르내림이 잦았다. 소나무밭을 따라 걷는 숲길은 청량한 기분이 들었다. 허리춤만한 아기 소나무들이 열을 지어 자라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언니들과 ‘함께’라고 해도,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저마다의 속도로 걸어 나갔다. 나와 걷는 속도가 엇비슷했던 윤소 언니와 나란히 걸어가며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는 것이 닮아 이야기의 시작이 신기하게 잘 통했다. 소소한 취미의 공통점으로부터 시작해 믿음을 갖게 된 것, 나의 고민, 그리고 언니의 생각들을 씨실과 낱실 잇듯 엮어냈다.

“가톨릭에는 성소라고 해서, 결혼성소와 수도성소가 있어요. 세상에서 인연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과 하느님을 섬기는 삶, 이제 겨우 세례를 받은 입장에서 감히 성소를 운운할 수는 없지만…, 제게 성소라는 것이 있는지, 식별을 하기 위해서 온 것도 있어요.”

그동안 누구에게도 쉽게 꺼낼 수 없었던,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이야기마저 술술 풀려나왔다. 몇 발자국 앞서 걸어가며 조용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은아 언니가 넌지시 이야기를 던졌다.

“성소도 부르실 때 빨리 ‘네’, 해야지 안 그러면 기회가 금세 사라져. 내게도 때가 있었는데, ‘아니오’ 하다 보니 놓치고 말았지.”

과연 지금 그 분은 나를 부르시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지금 나를 둘러싼 버거운 상황을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칠 곳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언젠가 성소를 궁금해 하던 내게 신부님께서 던져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수도생활도 잘 해. 언젠가 내가 만났던 수련수녀도 가족과의 문제를 견디지 못하고 수녀원에 들어왔다가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수도복을 벗었지.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는 환경이 달라진다고 해도 같은 문제가 되풀이 될 뿐이야.”

걸음이 지칠 무렵 도착한 마을에서 마당이 멋진 바를 만났다. 커피라도 한 잔 하자고 마음을 모으고 노천에 짐을 풀었다. 주인 없는 바에서 오랜 시간 서성거리다 겨우 주문을 마쳤다. 각자 구미에 맞는 차들을 한 잔씩 들고 테이블에 나란히 늘어놓았다. 나는 처음으로 ‘떼 콘 레체 Te con Leche(밀크티)’ 를 시켜보았다. 큰 컵에 가득한 우유거품을 입으로 가져갔다. 따뜻한 구름을 머금은 맛이었다.

떼 콘 레체 구름을 머금은 맛의 밀크티 한 잔
떼 콘 레체구름을 머금은 맛의 밀크티 한 잔 ⓒ JH


테이블에 노트며 지도를 늘어놓고 한숨 돌리고 있을 때, 바를 향해 들어오는 이가 낯익었다. 호르케였다. 우리 쪽을 향해 인사를 전하는 얼굴이 자못 진지하다. 홀로 들어오는 그가 조금 이상해서 “산티랑 세바스는 어디에 있니?”하고 물었다.

“산티가 다리를 다쳤어. 전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너희가 먼저 떠나고 얼마 안 있어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어서…. 세바스가 마사지며 테이핑을 해 줬는데 택시를 불러야 할 것 같다고 했어. 마드리드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아. 한참 고민하다가 세바스는 함께 있기로 했고, 나는 걷기로 했어. 그래서 혼자 온 거야.”

돌아보면 순례 가운데 그가 가장 심각했던 순간이었다. “큰일이구나” 하고 그럼 우리랑 같이 걷자고 했다.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산티를 걱정하는 마음이 여전하다. 빙 둘러앉은 네 사람의 한국 여성들과 한 사람의 스페인 남자가 통성명을 시작했다.

그는 곧 걱정을 거두고 여느 때처럼 명랑한 모습으로 우리들을 쳐다보다가 “한국어로 ‘Hello’는 어떻게 말해?” 하고 묻는다. ‘안녕’을 가르쳐줬더니 곧 한국어로 인사를 하며 “너희랑 같이 걸으면서 한국어 좀 배워야겠다. 내 한국어 선생님 해줄 수 있지?” 하고 너스레를 떤다.

언니들도 그런 호르케의 붙임성이 싫지 않았는지, 미정언니는 “귀엽다”고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였다. “방금 미정이 뭐라고 말 한거야?” 하고 그가 궁금해 하기에, 언니는 당황한 듯 “절대 말하지 마!” 하며 장난처럼 내 팔을 (조금 세게) 찰싹 하고 때렸다. 생각보다 큰 소리에 호르케는 놀라 괜찮냐고 묻는다. 나는 “언니가 말하지 말라시는데? 그렇지만 되게 좋은 뜻이야. 너를 좋게 보셨나봐” 하고 말았다.

“신기해, 너희들은 걷기 위해서 스페인에 와서 서로 만난 거잖아. 한국 여성들은 굉장히 힘이 넘치네.”

‘한국의 많은 젊은 여성들이 갑자기 이 길을 걷는 이유’를 두고 다양한 가설을 세우던 중 호르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무슨 일이지?’ 했더니 저 멀리 다리를 절뚝이는 산티와 세바스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이거, 동영상 좀 찍어줘!” 하고 카메라를 내게 던지고 달려가는 그를 향해 초점을 맞추었다.

얼씨구나 하며 산티를 번쩍 안아 올리는 그의 모습이 재미있다. 세바스를 향해서는 “명인이야, 명인” 하며 어깨를 다독였다. 산티는 “나 살았어” 하고는 나를 스쳐간다. 순례 후에 받게 된 그 동영상의 이름은 'La resurrección', 부활이었다.

쉬었다가 가세요 커피를 제공하는 길 위의 휴식처
쉬었다가 가세요커피를 제공하는 길 위의 휴식처 ⓒ JH

명인 세바스의 도움으로 겨우 걸음을 걷게 된 산티는 그만두는 것보다는 계속 걷고 싶었다고 했다. 짝들을 다시 만난 호르케가 친구들과 밀린 이야기를 시작할 때 즈음, “우리는 이제 가 볼게”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럼 이따 숙소에서 보자” 하고 그들을 남겨두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벤치에 둘러앉아 서로 더 주지 못해 안타깝기만 했던 작은 점심식사를 했다. 몇 번의 쉼을 이어가다 팔라스 데 레이에 도착했다.

드넓은 초원에 캠핑카와 텐트가 모여 있는 곳에서 자글자글 바비큐 연기와 햇빛을 즐기는 휴일의 스페인 사람들을 스쳐갔다.

언니들과 함께 숙소가 어딘지를 찾으며 헤매던 가운데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두 사람이 보였다. 포르토마린에서 우리 침대의 2층을 나란히 쓰던 아가타와 애덤 오누이였다.

“혹시 여기 숙소 어딘지 아니?”
“여기서 좀 더 들어가면 중심가가 나오는데, 거기에 공립숙소가 있어. 그런데 벌써 만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큰일이었다. 이제 겨우 세 시가 채 안 되었는데 벌써 침대가 만석이라니, 눈에 띄게 순례자들이 늘어난 것을 느꼈지만 이제는 대놓고 침대를 차지하기 위한 달리기라도 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고 여기서 가만 서 있을 수도 없었기에 마을을 향해 걸었다.

곧 도착한 공립숙소에 “자리 있어요?” 물었더니 ‘OK'. 천만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고 입실절차를 밟았다. 곧 오스피탈레라는 흰 종이에 ‘Completo(만석)'을 써서 문 밖에 내걸었다. 우리는 오늘 이 숙소의 마지막 순례자들이었다. 아직 호르케와 산티, 세바스는 도착하지 않았는데, 얘들은 어떻게 하지? 걱정이 되었다.

숙소 가장 구석진 곳, 네 개의 이층 침대가 비좁게 들어찬 방에 겨우 짐을 풀어놓고 마을 주위를 우왕좌왕하며 마음을 놓지 못하는 사이 언니들이 이야기한다. “방금 스페인 친구들 왔던데? ‘노 베드’ 했는데도 ‘노 프라블럼’ 하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빈 침대를 다 찾아내더라. 우리 방 맨 끝 침대에 짐 풀었어", “정말요? 만석이라기에 걱정했는데 어떻게 그랬지?” 하고 궁금해서 후다닥 올라가본 방에는 호르케의 가방과 익숙한 빨간 타월이 침대 난간에 걸려 있었다. “거짓말!” 정말, 거짓말 같았다.

길 위의 집 수국으로 담을 두른 멋진 모습
길 위의 집수국으로 담을 두른 멋진 모습 ⓒ JH

“너 어떻게 한 거야? 오스피탈레라 아줌마는 우리 들어오고 자리 없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그거 다 헛소리야. 리스트에 받아놓은 사람들 수를 세어서 다 차면 만석을 걸지만 실제 방에 들어가 보면 비어 있는 침대가 항상 있기 마련이야. 난 그걸 아니까 문 앞에 걸려 있던 ‘만석’ 표지 보고 ‘웃기지 말라’고 하고 들어와서 다 확인해 봤지. 그랬더니 이렇게 너희가 짐 풀어놓은 방에 딱 하나 자리가 남아 있더라고. 아까 네 가방이랑 짐 보고 이 방에 있는 줄 알았어. 괜히 걱정했구나?”

방에 딸린 샤워실은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두리번거리다 옆방의 것을 쓰기로 하고 “옆방 사람인데 샤워 좀 할게요” 했더니 영어는 못 알아듣겠다는 프랑스의 꼬부랑 할아버지 순례자는 “노, 노”를 외치다가는 곧 침대에서 돌아눕고 만다. “죄송해요” 하고는 샤워실에 쏙 들어갔다. 푸드드 물기를 털어내고 욕실의 물기를 걸레로 한 번 훔쳐내고 방에 돌아왔다.

“난 점심 먹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 호르케의 제안에 함께 숙소를 나왔다. 도착한 식당에는 산티와 세바스가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자리에 끼어 앉고 메뉴를 주문한 후 함께 식사를 했다. 식당 천장에 매달린 텔레비전에서는 축구중계가 한창이었다. “너 축구 좋아해?” 하고 물었더니 “아니, 전혀! 90분 내내 공차는 것 구경하는 건 내 취향이 아냐” 하며 고개를 젓는다. “스페인 사람들은 축구에 열광한다고 들었는데 넌 좀 다르구나” 했더니 “난 보통 스페인 남자가 아니거든” 하고는 식사를 이어간다.

식당을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도로를 메운 화려한 모터바이크의 행렬과 부르릉 하는 사나운 엔진소리가 심상치 않다. 마을 한가운데의 공터에는 거대한 무대가 차려져 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오늘 여기 무슨 일 있는 거야?”, 물었더니 “잘 모르겠어. 한 번 물어볼까?” 하고 공터의 안내부스로 향했다. 스페인어로 한참을 주고받는 그들 옆에서 벽에 붙은 안내문을 찬찬히 살펴보니 역시나 오늘도 Fiesta, 반갑지 않은 축제의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네 말이 맞아, 여기 오늘 모터바이크 축제가 있대. 그래서 이렇게 바이크를 끌고 사람들이 오는 거였어. 그리고 여기 보여? 새벽에는 스트립쇼도 있대. 오늘 여기 잘 왔네. 하하하!”

나는 “으악!”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바르바델로스에서 나를 악몽에 빠뜨렸던 것과 꼭 닮은 모습이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그땐 네가 스페인어를 할 수 없어서 그런 거네. 오늘은 우리랑 같이 있잖아. 축제를 즐길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하고 나를 안심시킨다.

“내가 조금 느낀 건데, 넌 너무 걱정이 많아. 내가 오늘 밤 침대를 구하지 못할까봐 걱정했지만 이렇게 너랑 같은 방에 자리를 잡았고, 아직 시작도 안 한 오늘 밤의 축제마저도 걱정하고 있잖아.”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자며 손짓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당장 오지도 않은 밤의 일까지 벌써부터 걱정하고 있다. 새벽부터 누구와 함께 걸을지를, 식사를, 침대를, 빨래가 마르지 않을 것을…. 나 자신이 되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배짱과 포부를 안고 올랐던 길에서마저도 매 순간 모든 상황을 미리부터 서툴게 짐작하고 바들바들 떤다.

“세바스랑 산티랑 얘기해 봤는데, 어차피 밤에 잘 수가 없으면 지금 자고 이따 밤에 나가 노는 건 어떠냐고 했어. 그래서 난 지금부터 잘 거야.”

호르케는 침대에 풀쩍 뛰어올라가 잠들었다. 나는 고민하다 잠들지 못하고 숙소를 돌아다녔다. 계단을 내려가다 그 가운데 유리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작은 쉼터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곳에 앉아 전화를 하고 있는 아가타를 만났다. 나보다 두 살 많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그녀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 상대가 되어주었고, 붕 뜬 내 마음은 아가타와의 짧은 대화로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었다.

계단을 내려와 1층 안내판에서 곧 미사가 가까워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리를 박차고 성당으로 향했다. 토요일 저녁의 특전미사는 많은 마을 사람들과 순례자들로 붐볐다. 군중 속에서 니콜라스와 하이카를 볼 수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자리에 머무르며 그들을 기다렸다. 그들은 가방을 맨 채였다. 미사 직전에 마을에 도착했다고 한다.

“아저씨, 숙소 자리 없다는데 어떻게 해요?”
“글쎄, 그것보단 우리 아버지가 지금 메리데에 와 계시다고 전화를 받아서 오늘 더 걸어야 할 것 같아.”
“벌써 밤 아홉시잖아요. 해 지기 시작했는데요? 메리데면 여기서부터 세 시간은 더 걸리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이제 저녁이 되면 걷기엔 선선할 테니까 나쁘지 않을 거야. 부지런히 걸으면 열두 시 안에는 도착하겠지. 먼저 도착해 있을 테니 천천히 오렴. 내일 보자.”

그리고 아저씨에게 손을 흔들었다. ‘자정까지 걷는다니 괜찮을까’ 하고 또 다시 걱정이 시작되었다. 고개를 도리질치고 그들을 믿기로 했다.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미사를 마치고 작은 바에 들러 오래간만에 맥주 한 잔을 마셨다. 숙소 입구 근처에는 순례자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 그 가운데 사모스에서 처음 만나고 오늘 같은 방을 쓰는 중년 부부가 벤치에 나란히 앉아 팩 비노를 플라스틱 컵에 따라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온 켄과 줄리아는 나에게도 컵을 내밀며 한 잔 권했다.

“이렇게 큰 비노가 겨우 1유로밖에 안 해. 마음껏 마셔. 모자라면 바로 앞 상점에 또 사러 가면 되지.”

사양하지 않고 받아 마신 비노는 꼭 주스 같았다. 미정, 윤소, 은아언니와도 술을 받아 잔을 부딪쳤다. “오늘 너희들이랑 같은 방에서 지내게 되어 참 좋아. 조용하고 시끄럽지 않고 말야” 벌써 꽤 많은 비노를 마셨는지 혀 꼬부라지는 소리로 이야기하는 줄리아 아줌마가 재미있다.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호르케네들이 들이닥쳤다. 그의 한 손엔 투명한 유리병 하나가 들려 있다.

“저 앞 바에서 싸게 주고 사 왔어. 보드카야. 한 잔씩 하자!”

주위를 둘러싼 십 수 명의 순례자들은 환호를 내지른다. 호르케는 그들의 잔에 보드카를 따라주기 시작했다. “이거 강한 술 아냐? 나 한 번도 안 마셔봐서…” 하며 꼬리를 내뺐더니 “처음이니까 더 마셔봐야지. 조금만 줄 테니까 한 번 맛이라도 봐. 목에서부터 불붙는 것 같은 기분이 재미있을 거야” 하며 조금 따라주는데 알콜 향이 확 끼친다. 따라준 수고를 봐서 조금 마셨더니 꼭 소주 같기도 한 것이 목에 들어가자 따끔따끔해 나와는 맞지 않았다.

손사래를 치며 너무 쓰다 했더니 웃으며 어디서 얼음을 구해 와서 하나 넣어주는데 여전히 먹기엔 고역이었다. 미안하지만 그의 눈을 피해서 바닥에 술을 쏟고 얼음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잘 마셨어, 고마워” 하고 웃고 말았다. 보드카 잔을 들고 껄껄거리며 웃던 산티가 자기 목에 걸린 펜던트를 꺼내 보여주었다. 사각의 은빛 판에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룬 문자가 아름답지? ‘기쁨’이라는 뜻이래.”

그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ᚹ(운조)’가 새겨진 반대편에는 ‘Pleasure'라는 글자가 또렷했다.

“기쁨…, 바로 내가 카미노에서 배운 거네.”

그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이야기하자 줄리아는 나지막하게 “아름다운 이야기야.” 그리고 또 다시 비노를 들이킨다. 산티는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목걸이를 풀기 시작한다. “왜 그래?” 했더니 “너한테 주려고”, “이거 소중한 거잖아. 난 괜찮아” 하며 아무리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다. 목걸이를 내게 걸어주는데 기분이 뭉클하다.

산티의 마드리드 발 강렬한(?) 영어구사를 알아듣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항상 세 사람이 함께 있어도 호르케와 주로 이야기를 해왔다. 아예 입을 굳게 닫아 이야기를 할 수 없었던 세바스에 비해 산티는 꽤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지만 많은 경우 고개를 끄덕이고 마는 정도로 이야기를 넘기고 말았고, 호르케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오히려 편하기까지 했다.

마음 한쪽에 미안함이 자라고 있던 때에, 그가 내게 직접  걸어 준 목걸이는 어쩌면 언어를 구사하는 수려한 능력보다 그저 이야기를 전하려는 마음과 듣겠다는 마음이 만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가져다주었다.

“정말 고마워. 순례 가운데 항상 목에 지니고 다닐게. 그리고 기쁨, 잊지 않을 거야.”

그는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나보다 3일 어린 동생, 산티아고 성인과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산티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곧 공터 무대에서 노랫소리가 쩌렁쩌렁 울리기 시작한다. “한 번 가 볼래?” 하기에 “좋아!” 하고 겁도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자정에 가까워지는 시간 꼬마부터 어른까지 모두 모여 정신없는 노래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춘다.

대형 빠에야 만들기 축제의 밤을 위해, 팔라스 데 레이에서
대형 빠에야 만들기축제의 밤을 위해, 팔라스 데 레이에서 ⓒ JH

곧 무대가 잦아들자 오후나절부터 수영장만한 철판에 삽으로 만들고 있던 빠에야를 나눠준다며 그 앞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뽀르르 따라가 줄을 섰다. 표가 있어야 한다는데 앞에 선 포르투갈 아저씨는 “나한테 표가 있으니까 한 번 사람들한테 얘기해 볼게” 하며 자기에게 맡기란다.

“순례자, 순례자” 하며 우리들을 가리키니 “원래는 안 되는데…” 하면서 접시에 노란빛이 도는 빠에야를 잔뜩 담아준다. 비노와 빵을 받아 주위를 살피다가 어느새 자정이 넘어 숙소의 통금시간이 지났음을 알았다. 퍼뜩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벗어놓고 달음질쳤다지만 나는 두 손에 밥과 술을 들고 냅다 뛰었다.

도착한 숙소 정문은 굳게 잠긴 채였다. 난처하게 되어 주위를 둘러보니 이때까지 보이지 않던 가죽 자켓을 입은 폭주족(?)이며 심상치 않은 주정꾼들까지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주변을 몇 번을 두리번거리는데 산티와 벨기에 순례자 리지스가 다가온다. “문 잠긴 거야?” 하고 서성거리는데 갑자기 안에서 문이 열린다. 미정 언니가 걱정이 되어 나와 보았다는 것이었다. “언니 아니었으면 오늘 밖에서 밤 샜어요!” 고맙기만 했다. 산티와 리지스는 ‘행복한 담배’ 시간이라며 숙소 뒤편의 빨래터로 향했고, 언니와 나는 식당의 불을 켜고 한밤중의 빠에야 파티를 했다.

고요한 숙소 한 쪽에서 밥과 술을 나누며 웃고 또 가슴이 시큰해져서는 언니와 함께 내일의 길을 다짐하고, 발소리를 죽여 방으로 돌아왔다. 조용히 열어본 방문 안에는 창 밖으로부터 희미한 빛이 퍼져나가고 있었고, ‘밤새도록 놀자’며 나를 꼬드겼던 호르케는 어느새 방으로 돌아와 잠든 채였다. 아까까진 공터에서 신나게 춤추고 있다가 대체 언제 들어온 거야? 잠깐 궁금해졌다.

침낭 속으로 들어가 눈을 감았다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창문을 닫아 캄캄해진 실내에서 모든 침대 위의 순례자들은 내일을 위해 고요히 잠든 채였다. 내 옆의 은아 언니, 미정 언니, 윤소 언니, 그리고 저 멀리 방 끝에 있는 호르케의 침대에까지 눈이 닿았다. 뒤척이는 낌새가 느껴져 화들짝 놀라 눈을 꼭 감았다. 생각보다 방은 시끄럽지 않아 잘 잠들 수 있었다. 바르바델로의 악몽이 거짓말처럼, ‘팔라스 데 레이’, ‘왕의 궁전’에서의 축제의 밤은 목의 따끔거림과 기쁨, 그리고 조금 아쉬움으로 마음에 남았다.


#산티아고가는길#스페인#도보여행#성지순례#카미노데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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