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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 이란내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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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스럽기 그지없는 마을

어제 하룻밤을 보냈던 모래의 마을 추파난. 그곳에 도착 했을 때의 그 괴기스런 첫 느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을을 둘러싼 모레언덕의 모레들은 바람을 타고 꿈틀거렸고,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마냥 우리 앞을 휘몰아쳐 지나갔다. 게다가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이 흙빛의 마을은 텅 비어 있었다.

아나락의 털복숭이 선생님이 연락해 놓겠다고 했기에, 이미 이야기가 됐을 거라 생각하고 찾아간 학교에서의 반응도 그냥 그랬고, 어쩐지 마을 전체의 분위기는 전날 머물렀던 아나락과는 너무나 달랐다.

"영아, 뭔가 이상하지 않아?" 이 작은 마을에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떤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아니 괴기스러웠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저녁을 해먹고 하루의 기록을 정리할 때쯤 이상한 느낌 때문에 쳐다본 창가에서 마주쳤던 한 남자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누군가가 우리가 짐을 푼 교실 안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소름이 확 돋았지만 아닌 척 했다. 잠시 후 눈이 마주쳤건만 아무 반응 없이 훔쳐보기를 멈추지 않는 그를, 일부러 매너 없이 거칠게 대해 쫓아 버렸지만 찜찜함이 가시질 않았다. 교실 안의 의자와 책상을 모두 문쪽으로 밀어붙여 문단속을 단단히 한 후에야 잠들 수 있었다. 게다가 밖에는 태풍이 부는지, 온 세상을 다 날려 버릴 듯한 모레 바람이 밤새 으르렁 거렸다. 

사막에서는 늘 해가 지는 무렵이면 미친 듯이 바람이 불어댄다. 우리나라에서 사상 유례없는 태풍이 올 때처럼 말이다. 자연의 힘은 이처럼 거대하고 무섭다.
▲ 사막의 일몰! - 사막에서는 늘 해가 지는 무렵이면 미친 듯이 바람이 불어댄다. 우리나라에서 사상 유례없는 태풍이 올 때처럼 말이다. 자연의 힘은 이처럼 거대하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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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읽어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은 달라!

비가 내린다. 이 광활한 대지가 비에 젖어가고 있다. 오늘은 영아의 무릎 통증으로 오전 25km 주행 후, 픽업과 덤프트럭을 번갈아 얻어 타고 카비르 사막의 진입로인 잔닥(Jandaq)까지 왔다. 반나절을 자전거를 타야 하는 거리인 40~50km를 차량을 이용하니 1시간 만에 와버렸다. 역시나 자전거는 과정을 추구하는 목적이어야지 이동 수단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카비르(Kabir) 사막을 향해 출발한 지 닷새 째. 우리는 식당 한 편에 방을 얻었다. 이스파한을 떠난 후 처음으로 하루 종일 우리만의 공간을 가진 셈이다. 난로 하나와 더러운 카펫만 휑하니 깔려있는 널찍한 방. 아무것도 없는 흙벽돌집 구석이지만, 간만의 휴식이라 몸이 녹아나는 것처럼 세상 모르고 낮잠을 잤다. 

여기서부터 카비르 사막을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야 하는데 다음 마을까지는 140km 정도의 여정이 될 것이다. 추파난에서 만났던 경찰과 지역 유지들에게 얻은 정보에 따르면 중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정말 아무 것도. 잘 곳도, 물을 얻을 곳도,  음식도….

우리는 이틀을 이곳에서 쉬면서 체력을 충전하고, 모레 아침 카비르 사막으로 들어갈 것이다. 다행히 오늘 비가 내려 사막을 적시고 있다. 지금 마침 1년 중  모래 먼지가 사나운 시즌인데 그나마 비가 내려주니 다행이다.

저녁 무렵에는 엄청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사막에서는 늘 해가 지는 무렵이면 미친 듯이 바람이 불어댄다. 우리나라에서 사상 유례없는 태풍이 올 때처럼 말이다. 자연의 힘은 이처럼 거대하고 무섭기만 하다.

이란 고원의 카비르(Kabir)와 루트(Root) 사막은 소금사막이라 일컬어진다. 노트북에 담아놓은 자료를 훑어본 뒤였기에 이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읽어서 아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어서 아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목이 말라 현지 학교의 수도에서 지하수를 받아먹었는데, 물맛이 엄청 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알고 있었다면서 새삼 놀라기는!" 다행히 물 때문에 탈이 나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의 물로 홍차를 끓여 마셨는데 차조차도 짠 맛이 나는 것이다.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비로소, 경험을 통해 삶의 지혜로 쌓여가는 순간이다.

카비르 사막은 소금사막이라 물맛이 짜다. 이 물로 홍차를 끓여도 여전히 짜다.
 카비르 사막은 소금사막이라 물맛이 짜다. 이 물로 홍차를 끓여도 여전히 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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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와 흙의 도시에 전혀 다른 푸른 세계가 있다니!

이튿날, 잠에서 깬 우리는 마을을 산책해 보기로 했다. 마을은 텅 비어 있었고 간혹 검은 망토의 여인들이 보이긴 했지만 모두들 바쁜 걸음으로 휑하니 사라져 버렸다. 

"왜 저렇게 도망치듯 다니는 걸까?"
이 여인네들을 휘감은 검은 차도르와 이 텅 빈, 흙색 도시의 색감이 어울려 기가 막힌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진기를 꺼냈지만 모든 것이 너무도 조심스럽다.

이스파한이나, 시라즈 같은 도시의 사람들보다 훨씬 보수적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는 아닌 것 같은데. 남자건 여자건 우리와 눈을 마주치질 못하는 것 같다. 잠시 후, 집들 사이로 난 아름다운 수로에 카메라 렌즈를 맞추고 있는데, 갑자기 한 집의 대문이 열렸다. 그리고 조금 전 길에서 잠시 스쳐 지나갔던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너네 집에 한번 들어가 보면 안 될까?"
"?"
"음. (바디랭귀지) 우리가… 너희 집에…들어가서…한번 봐도 되냐고…."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우리를 밖에 세워놓고 안으로 들어간 이 아이는 잠시 후 대문 밖을 내다보며 안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와우. 잠시 후 눈앞에 펼쳐진 건 녹색의 정원이었다. '포도와 마늘과 파를 집 안에서 키우고 있었구나!' 이런 모래와 흙의 도시에 전혀 다른 푸른 세계가 집 안에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사막전 마지막 마을, 잔닥에서 만났던 여인네들. 이들을 휘감은 검은 차도르와 이 텅 빈, 흙색 도시의 색감이 어울려 기가 막힌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진기를 꺼냈지만 모든것이 너무도 조심스럽다.
▲ 사막 마을, 잔닥 - 사막전 마지막 마을, 잔닥에서 만났던 여인네들. 이들을 휘감은 검은 차도르와 이 텅 빈, 흙색 도시의 색감이 어울려 기가 막힌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진기를 꺼냈지만 모든것이 너무도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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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이런 미로같은 골목으로 이어져 있었다.
▲ 사막 마을, 잔닥 - 마을은 이런 미로같은 골목으로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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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온통 흙색인데 집안은 이렇게 파랗다니! 포도와 마늘과 파를 집 안에서 키우고 있었다.
▲ 사막 마을, 잔닥 - 마을은 온통 흙색인데 집안은 이렇게 파랗다니! 포도와 마늘과 파를 집 안에서 키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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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만 나열하며 말을 걸다

우리를 정원으로 안내한, 이 집안의 아들인 듯한 남자가 꽃 한 송이를 꺾어 우리에게 내밀었다. 이 이름모를 분홍색의 꽃을 받아들자 짙은 꽃향기가 코를 간질였다. 너무도 낭만적인 장면이다. 이란 사람들은 다분히 낭만적인 구석이 있다. 노래의 리듬보다는 노래의 가사에 더 의미를 두고, 일상생활에서도 늘 시의 구절을 인용하길 즐겨 하는 사람들이다.

이란 여행 초기, 시라즈(Shiraz)를 여행 당시 길에서 한 젊은이에게 길을 물었던 적이 있다. 길을 알려주다 말고, 갑자기 '잠시만'이라고 말하며 수첩을 꺼내 방금 떠오른 시상을 종이에 적은 후 친절하게 나머지 길을 알려 주었었던 잘 생긴 이란 젊은이가 문득 떠올랐다.

DJ DOC의 노래를 CD에 구워 선물하자 바로 노랫말을 궁금해 했던 이스파한에서 만났던 미나 가족, 후일 터키와의 국경도시 타브리즈에서 만났던 하니 가족에게서도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냥 집 구경만 한 후, 사진만 찍고 나오려니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영어/페르시아어 교재를 꺼내, 친구 만들기 부분을 펼쳤고 하고 싶은 말들을 골라, 일일이 손으로 짚으며 가리켰다.

"제 소개를 할게요. 국이구요. 이쪽은 영. 자전거. 테헤란, 무릎, 아파요. 어젯밤. 식당. 잤어요. 이란, 처음. 좋아요. 즐거워요. 고마워요."

단어들만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으며 주욱 나열했을 뿐이었지만, 손짓 발짓 다해가며 애를 쓴 보람이 있었던지 잔뜩 긴장해 있던 그들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

“맘눈(고마워요). 코다하페스(안녕)”

인사를 나누고 그 집을 나와 또 한참을 걸었다. 밖에서 볼 땐 온통 황토색, 진흙 색 밖에 보이지 않던 잔닥이라 불리는 마을.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 보니, 새로운 세상이 이 안에 있었다. 어디선가 아이들 소리가 들려와 우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분명히 학교일 것이다.

이번 사막 자전거 여행을 통해, 두 번이나 현지 시골 학교에서 잠을 얻어 잤기에 이란의 학교는 너무나도 친숙한 셈이다. 여자 초등학교였다. 우리를 발견하자 조그마한 운동장에서 뛰놀던,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여자 아이들은 예상대로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치며 물러섰다. 결국 국이는 학교 밖에서 기다리고 영아 혼자서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제일 자신 있게 하는 페르시아어는 다름 아닌 "인자케시 잉글리쉬 바라데 (영어 할 줄 아는 사람 있나요?)"이다.

잔닥에서 만난 현지학교 선생님들.
▲ 사막 마을, 잔닥 - 잔닥에서 만난 현지학교 선생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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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못하면 아이들이 더 좋아할 걸요?"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잠시 후, 선생님들이 몰려왔고, 영어는 안 통했지만, 우리는 둘 다 교무실로 안내되어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는 페르시아/영어 교재를 이용해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의사소통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 마을 현지인 집에서 1~2일 머물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거의 의사 전달을 했다고 생각했을 무렵, 어디선가 남자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이 나타났다. 이 영어 선생님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다른 여자 선생님들이 다섯 명이나 지켜보는 가운데, 이 자존심 강한 시골의 남자 영어 선생님은 긴장감으로 목소리까지 떨려오기 시작했다.

'음, 잘못하다간 이 영어 선생님의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르겠다.'

최대한 천천히 대화를 시도했고, 가끔씩 그분이 하는 말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라도 알아듣는 척 하며 대화를 매끄럽게 풀어나갔다. 이 선생님의 영어 실력이 뛰어나 보이게끔 자존심을 살려 주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일까? 이 선생님은 신이 났고, 이 마을 대장격인 사람 집에서 머물게 해주겠다며 아예 수업을 빼먹고 우리를 마을 여기저기로 데리고 다니며 안내를 해주기 시작했다.

"아니, 아이들이 기다리잖아요. 죄송해서 어쩌죠?"
"아니, 아이들이 오히려 좋아할 겁니다."

학교 다닐 때 생각이 언뜻 났다. 세계 어느 나라건 아이들은 아이들일 뿐이다. 우연히 수업을 빼먹을 구실이 생기면 너무도 좋아하곤 했던 우리의 학창시절, 영아와 나는 서로 마주보며 빙긋 웃었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던, 이 사막의 시골마을이 이렇듯 아름다운 곳일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끼리 다녔으면 결코 이렇게 자세히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기저기 마을 소개를 끝낸 후, 우릴 큰 길에 있는 식당까지 데려다 준, 이 영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작별의 인사를 했다.

"아니, 그럼, 아까 이 마을 대장 집에서 묶게 해준다는 말은…."
"아마도 식당에서 묵는 게, 훨씬 나을 거예요. 그 식당과 주유소를 하는 사람이 이 마을의 대장이거든요."

아까 의사 전달 과정에서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은 걸까? 어쨌든 정말 친절한 선생님이었다. 내일 우리가 가야할 거리는 140km. 새벽  일찍 떠날 예정이다. 영아의 무릎에 문제만 없으면 내일은 진짜 사막을 건너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을 영어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 둘러 보던중 만난 잔닥 풍경.  지붕위에 구멍뚤린 것들은 바람을 잡아 집안으로 내려주는 천연 에어컨의 역할을 한다고 함.
▲ 사막 마을, 잔닥 - 이 마을 영어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마을을 둘러 보던중 만난 잔닥 풍경. 지붕위에 구멍뚤린 것들은 바람을 잡아 집안으로 내려주는 천연 에어컨의 역할을 한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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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태그:#자전거 여행, #자전거 세계여행, #국이랑 영아, #세계여행, #이란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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