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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 후아라스Hauarz-카라스Caraz-케뇬 델 파토 Canon del Pato-후아양카Huallanca-싼타Santa-투루힐로 Trujillo-파얀 Pajan

위험 뒤의 환희

터널을 35개 지나야 한단다. 비포장이지만 차량이 거의 없어 자전거로 달리기에 별 무리가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 주어서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35개의 터널이 있지만 모두 짧은 터널이고 한 3개 정도가 긴 터널이라고 했다.

카라스를 벗어나 15km를 달리니 금방 비포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로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아서 주위의 자연경관을 감상하며 아름답고 황홀한, 신비한, 위험한 Pato 협곡에 들어서니 또 한 번 그림 속의 내가 상상이 된다.

 황홀하고 신비한 Pato 협곡이 시작된다
황홀하고 신비한 Pato 협곡이 시작된다 ⓒ 김문숙

그 협곡을 자전거로 달리다니 스릴과 모험의 연속이다. 비포장이고 재미있다. 터널 첫 번째, 두 번째 짧고 재미있다. 어떻게 시멘트도 아니고 이렇게 터널을 만들었을까? 터널을 만든 사람들이 지혜롭고, 아무 사고 없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고 뭐 잡스러운 생각이 좀 들긴 한다. 

 꼭 그림 속을 지나는 느낌
꼭 그림 속을 지나는 느낌 ⓒ 김문숙

 터널을 통과하자 스릴만끽!
터널을 통과하자 스릴만끽! ⓒ 김문숙

세 번째 터널을 지나니 자전거 여행객들이 휴식을 하고 있었다. 이태리에서 페루로 여행 온 10명의 단체 관광객인데 협곡까지 차로 올라온 후 곳곳에서 사진만 찍고 아스팔트를 자전거로 달린다고 한다. 우리더러 자전거에 짐을 달고 여행하는 것이 너무 대단하다며 사진 찍고 자전거 관찰하고 난리다. 부럽기보다는 본인들은  못하지만 대리만족 뭐 그런 건가 보다.

 이태리에서 여행 온 자전거 MTB팀의 격려를 받으면서
이태리에서 여행 온 자전거 MTB팀의 격려를 받으면서 ⓒ 김문숙

터널 옆에는 협곡을 가로 지르는 아슬아슬한 나무 다리도 있고 스릴 만점이다. 다들 다리에서 사진 찍고 정신이 없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참 사람들은 이상하다.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경험하려는 욕심이 있으니 말이다. 일행과 기념 촬영을 마치고 우리 갈 길을 떠났다.

 협곡의 아슬아슬한  나무다리
협곡의 아슬아슬한 나무다리 ⓒ 김문숙

4번째, 5번째 터널도 짧았건만 6번째 터널은 너무 길었다. 갑자기 자전거가 터널에서 흔들리고 앞이 깜깜한 것이 잘 보이질 않았다.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차가 오고 앞에서도 차가 오고 먼지가 뿌옇다.

터널 안의 길은 1차선이다. 차량이 두 대가 다닐 수 없는 길이다. 정신이 바짝 든다. 자전거 뒤에 불은 있지만 먼지 땜에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정신 나간 운전사가 과속을 해 올까봐 안 그래도 걱정을 좀 했건만 터널 속에서  이렇게 전쟁을 치를 줄이야!

반대차가 후진을 한다. 난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달려지지 않는다. 뒤에서 차가 크락션을 울리든 말든 에릭은 나더러 자전거를 끌고 가라고 한다. 끌 수 밖에는 별 수가 없다. 잘못 달리다가 터널에서 넘어지면 더 끝장이다.

 터널 통과를 무척이나 즐기는 에릭
터널 통과를 무척이나 즐기는 에릭 ⓒ 김문숙

왜 그리 터널이 긴지. 한 300m가 3km의 느낌이었다. 겨우 터널을 빠져 나오니 온몸이 더 후들거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흥분하지 않고 끌고 나왔더니 참은 눈물이 무서움과 두려움에 앞을 가리지 않는다. 한참 울고 나니 꼭 분이 풀린 듯한 느낌이다.

7번째 터널은 다행이도 짧다. 짧은 터널은 건너편에서 오는 차량도 볼 수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고 끌기에도 별 여러움이 없지만 또 긴 터널이 나타나고 온 신경이 곤두선다. 협곡을 보고 있으면 내가 꼭 떨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다.

비포장이라 그리고 내리막이라 브레이크를 잘 잡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그마한 돌덩이가 날 낭떠러지로 몰아낼 수도 있다. 엄지 손가락과 어깨에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아픔이 몰려 온다. 처음에는 터널을 세었지만 나중에는 셀 힘조차 없다. 아주 다행인 것은 그 이후부터는 두 번인가 차량이 오고 정말로 차량은 거의 없었다. 그 와중에 차까지 있었더라면 정말로 죽음을 자초하는 터널 투어였을 테다.

어느덧 35개의 터널을 다 통과 했다. 만세가 아니라 무모한 도전이 끝났다. 엉엉 대성 통곡을 하면서 괜찮다는 정보를 준 사람들이 미울 뿐이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버스랑 다른 교통 수단을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고초를 모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자전거 여행객도 위험도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나의 심정은 아무도 모른다.

 협곡으로 떨어지지 말고 앞으로 가서 기다려!
협곡으로 떨어지지 말고 앞으로 가서 기다려! ⓒ 김문숙

죽음을 연상케 한 터널 투어.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그때는 그리 힘들었건만 자전거로 여행을 하니까 내 생전 그런 비포장의 터널을 지나면서 터널의 신비(?)랄까 그런 것을 접하지 않았을까? 하는 미친 생각이 잠깐 든다. 하지만 정말로 두 번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터널이여 앞으로도 안녕!

 35개의 터널을 통과하고 도착한 후아양카 마을
35개의 터널을 통과하고 도착한 후아양카 마을 ⓒ 김문숙

경찰의 경호를 받으면서

"아름다움도 느끼는 사람만이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안타까운 사람이다."

가끔  여행을 하면서 똑같은 것이 반복되거나 지겨울 때 이 구절을 생각한다. 사람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아름답게 보려고 하면 아름다움이 보인다. Pan Amerika 팬 아메리카 도로, 며칠째 사막의 연속이다. 트럭과 버스들의 질주, 모래바람과 가끔씩 사납게 달겨드는 개들뿐이다. 오히려 사막에 사람들이 있으면 겁이 덜컥 난다. 슬슬 사막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으려고 할 때가 온 듯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과 바람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과 바람 ⓒ 김문숙

차량이 없을 땐 사막의 고요와 신비가 더 많이 느껴지는데 북쪽의 시멘트 단지 때문인지 질주하는 트럭이 무리를 지어 올 때는 날 금방 사막의 모래 위에 던져 내는 듯하다. 다행인 것은 비상도로의 사정이 좋지 않아 조금 더디긴 하지만 심적으로 안정되게 달리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변화 없이 도로만 달리는 것은 하루 이틀 하면 질린다. 오히려 몸이 조금 혹사하더라도 산 속으로 달리면서 오르락 내리락 사람들도 만나는 등 변화와 굴곡이 있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좋다. Pajan이라고 Trujillo에서 63km 북쪽에 위치한 마을에 도착했을 때다.

 투루힐로 도시의 대성당
투루힐로 도시의 대성당 ⓒ 김문숙

투루힐로에서 이곳까지는 평지고 사막이라 예상한 것보다 빨리 도착했다. 오후 3시다. 이곳에서부터 다음 도시까지는 60km 더 가야 한다. 빨리 달린다고 해도 저녁에나 도착할 수 있고 그리고 맞바람이다.

내 엉덩이는 이제 딱딱해져서 더 이상 못달린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길거리에서 남자들이 체비체(Cheviche)라는 음식과 술을 마시면서 우리를 보고 반갑다고 소리를 지르고 야유를 보내는데 조금 역겹다.

체비체 생선, 문어, 오징어, 조개 등을 레몬에 재워둔 후 특이한 향이 나는 굴란드라 잎을 넣고 양념한 요리인데 양파, 옥수수, 고구마 삶은 것 등을 곁들여 준다. 페루인 들에게는 우리나라 김치와 같은 음식임. 지역마다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나고 사막쪽이나 해변 가에서 즐겨 먹는다.
체비체생선, 문어, 오징어, 조개 등을 레몬에 재워둔 후 특이한 향이 나는 굴란드라 잎을 넣고 양념한 요리인데 양파, 옥수수, 고구마 삶은 것 등을 곁들여 준다. 페루인 들에게는 우리나라 김치와 같은 음식임. 지역마다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나고 사막쪽이나 해변 가에서 즐겨 먹는다. ⓒ 김문숙

순간 이곳은 조금 억센 곳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제발 편안한 숙소가 있어야 하는데 싶은 마음과 아니면 없길 바랐다. 없으면 경찰서나 성당에 가서 캠핑을 하면 되지만 어정쩡한 숙소가 있으면 핑계가 없기 때문이다. 마을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경찰이 우리에게 오라는 손짓을 한다.

"안녕하세요, 이 마을은 무척 위험합니다. 한 달 전에 관광객이 완전히 털렸거든요."
"예? 이곳에서요?"
역시 느낌이 좋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건만 역시나. 덜덜덜 가슴이 좀 벌렁거린다.
"조금 기다리시면 저희가 숙소를 잡아 줄테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그런데 경찰은 너무 이것저것 사생활에 대해서 묻는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소요되니까 순간 경찰도 남미에서는 믿지 말라고 했는데 은근히 걱정이 좀 된다. 마침 동료 경찰이 와서 우리더러 경찰차를 따라 오라고 한다.

경찰차를 따라 가니 소리지르던 마을의 남자들이 겁을 먹었는지? 아니면 무슨 일인지? 신기해서인지 우리를 그냥 원숭이 쳐다보듯이 본다. 우리가 만난 경찰은 도로 경찰 Carretera Policia이고 두 경찰은 우리를 마을의 경찰 Comisario에 데려다 주었다. 인수인계를 한다는 것이다.

 마을 경찰에게 인수 인계
마을 경찰에게 인수 인계 ⓒ 김문숙

마을 경찰은 더 반가워 한다. 안 그래도 할 일이 없었는데 과제가 생긴 모양이다. 남자 경찰들과 에릭은 경찰서에서 자전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한 여 경찰에게 나랑 숙소를 점검하라고 한다. 그 조그마한 마을에 호스텔은 두 개나 있었다.

여 경찰은 "왜 하필 자전거로 힘들게 여행하냐?"고 이해가 안 간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이렇게 자전거로 여행을 하니 경찰의 경호를 받는 경험도 하는 것 아니냐고 하니, 그래도 본인은 죽어도 꿈에서나 해 볼 일이라고 한다.

숙소에 여 경찰과 들어가서 방을 점검하니 숙소에서 일하는 사람이 놀란 모양이다. 모든 것을 안전하게 책임지겠단다. 남자 경찰과 여자 경찰과 함께 자전거를 끌고 숙소에 오니 숙소 주인이며 주변의 사람들이 자전거를 방에 집어 넣는데 돕겠다고 난리다.

너무나 따뜻한 환영이라 이 마을에 나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남자 경찰은 나에게 빨리 방문을 닫으라는 신호를 준다. 다른 방의 손님들이 우리 짐을 보고 탐을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되도록이면 자전거에서 짐을 떼는 것도 보여주지 말라고 충고한다. 맞다. 방심한 사이에 물건이 없어질 수도 있고, 아주 쉽게 자전거에 짐을 부착하고 떼어내면 누군가 훔칠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자전거와 짐을 다 넣으니 경찰은 저녁은 어디서 먹고 우리에게 신변의 안전을 특별하게 강조한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경찰서에 꼭 들르라고 한다. 마을을 빠져 나갈 때까지 경호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마을을 들어설 때 약간 이곳에 거친 곳이구나 하는 느낌은 있었지만 관광객이 피해를 입었다고 하니 사실 내 마음이 더 위축되긴 했었다. 그리고 한편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던 경찰을 나도 모르게 의심했던 것이 미안했다.

불신이 불신을 초래한다는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또한 이 마을 사람들이 서로 서로 불신하고 의심하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졌다. 개별적으로 보면 정말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인데 말이다. 아마도 개중에 몇 명이 나쁜 짓을 한 것이 소문이 나서 위험지역으로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사실 프랑크푸르트의 기차역 근처에서 관광객이 털리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데 남미, 게다가 시골에서 털렸다고 하니까 더 많은 유언비어가 도는 경향도 없지 않을까 싶지만 조심해야지!

에릭은 경찰에게 경호를 받으면서 여행을 잠깐이라도 한 것이 무지 재미있었다고 한다. 난 사실 그 지역을 벗어나면서 불안했는데 말이다. 우리를 잘 경호해준 도로의 경찰과 마을 경찰에게 감사할 뿐이다.
                                                                                                  
※ 다음편은 페루 북쪽과 유적지 방문을 들려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김문숙 기자는 2005년부터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페루를 여행후 2007년 6개월의 휴식을 뒤로 하고 현재 페루 북쪽과 에쿠아도르를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다.
저서: 『안데스 넘어 남미를 달린다』나래울



#남미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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