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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의 참새> 캐드펠 시리즈 7편
▲ <성소의 참새> 캐드펠 시리즈 7편
ⓒ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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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중반 잉글랜드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십자군 전쟁은 끝나지 않은 데다가 국내의 정치상황도 좋지 않았다. 잉글랜드를 통치하던 헨리 1세가 사망한 이후에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친족들 사이의 갈등이 깊어져가고 있었다.

이 상황은 결국 내전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촌 사이인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가 서로 갈라져서 잉글랜드의 왕위를 놓고 기나긴 내전에 돌입한다.

잉글랜드의 성과 들판은 전장으로 변했고, 이때를 틈타서 웨일즈 지역의 영주들이 잉글랜드 접경지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마을과 성은 그 지역의 영주들이 누구를 편드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바뀌었다.

스티븐 왕을 지지하던 영주가 하루 아침에 모드 황후 편으로 돌아서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두 세력의 전력이 비슷했기 때문에 내전은 하루아침에 결판나지 못하고 20여 년 간 지속되었다.

이렇게 암울한 내전시기에 유일한 무풍지대가 있다면 그곳은 바로 수도원이었다. 스티븐 왕도 모드 황후도 모두 그리스도교를 믿는 신자들이었고, 수도원장의 허락이 없다면 제아무리 왕의 군대라도 함부로 수도원에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였던만큼 한 지역에서 수도원은 그만큼 커다란 역할과 비중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수도원은 내전의 열기를 피해서 조용히 미사를 올릴 수 있는 성전이면서, 전장에서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고 보호해주는 병원이었다.

동시에 순례객과 여행자를 받아들이는 숙소이면서, 나이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교이기도 했다. 한 지역의 영주 또는 행정장관이 속세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도원장은 칼과 창의 힘이 닿지 못하는 또다른 형태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잉글랜드 내전 중에 수도원에 은둔한 캐드펠 수사

캐드펠 수사를 창조한 영국작가 엘리스 피터스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혼란기 잉글랜드의 풍경을 묘사하려고 했는지 모른다. 엘리스 피터스의 '캐드펠 시리즈'는 1977년 1편을 시작으로 1994년까지 총 20편이 출간되었다. 모두 12세기 중반의 잉글랜드를 배경으로 한다. 내전의 바람이 잉글랜드 전역에 불던 시기이기도 한다.

캐드펠 수사는 이런 시기에 수도원에 머물던 평범한(?) 수사다. 잉글랜드 시루즈베리 지역의 성베드로-성바울 수도원이 바로 캐드펠이 살고 있는 수도원이다. 캐드펠은 18살에 십자군에 가담했고 33살에 군대를 떠나서 잉글랜드로 돌아온 전력을 가지고 있다.

십자군에 있던 당시 예루살렘 공성전에도 참여했고 이후에는 10여 년 간 배를 타고 지중해를 누비면서 해전을 치렀던 인물이다. 그 이후에 수도사가 되겠다는 서약을 하고 수도원에 은둔하게 된다. 간단하게 말해서 수도원에 들어오기 전에 온갖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사람이 바로 캐드펠 수사다.

캐드펠 시리즈 1편인 <성녀의 유골>에서 캐드펠 수사는 57세의 나이로 등장한다. 캐드펠 수사는 웨일즈 출신의 작고 단단한 체격을 가진 사람이다. 40세가 넘어서 수도원에 들어왔고, 그 이후 15년 동안 수도원 한쪽에 있는 허브밭과 식물표본실을 가꾸면서 지내고 있다. 이 허브밭은 캐드펠의 작은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캐드펠 수사는 이 허브밭에서 젊은 시절에 수집한 수많은 약초와 식물들을 키운다. 그중에는 상처를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약초, 통증을 덜어주고 수면을 유도하는 약초들도 있다. 캐드펠 수사는 이런 약초들을 적절히 사용할줄 알기 때문에 수도원에서도 그리고 시루즈베리 지역에서도 이름난 의사로 인정받고 있다.

캐드펠 수사는 인생의 전반기를 머나먼 동방에서 전투를 하며 보냈고, 이제 인생의 후반기를 수도원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다. 거친 바다를 표류하던 배가 마침내 고요한 항구에 정박하듯이, 캐드펠 수사는 만년에 들어서야 수도원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십자군에 참전했을때는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것이 신의 뜻이든 아니든 그것은 상관없다.

동방에서 캐드펠은 단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군인의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때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지만, 때로는 뜨거운 동방의 사막에서 외치던 함성과 전투의 열기를 아련히 그리워하기도 한다. 물론 자신은 이제 더이상 무기를 들 수 없는 신세다. 수도원에 들어오면서 앞으로는 무기를 손에 잡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내전 중에 발생하는 수많은 잔인한 사건들

<반지의 비밀> 캐드펠 시리즈 11편
▲ <반지의 비밀> 캐드펠 시리즈 1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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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캐드펠 수사는 조용히 수도원에서 도를 닦는 나날을 보낼 수 만도 없다. <성녀의 유골>에서 작품 속의 시기는 1137년이다. 잉글랜드를 두쪽으로 가른 내전이 한창이던 시기다. 이 내전의 파도는 시루즈베리 지역까지 몰려온다.

왕의 군대는 시루즈베리 성으로 몰려와서 투항을 요구한다. 시루즈베리는 웨일즈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다. 가뜩이나 웨일즈와의 분쟁 때문에 신경쓸일이 많던 시루즈베리에 커다란 문제거리가 생긴 것이다.

당시는 중세신분사회였다. 귀족, 영주, 자유민, 농노 등의 계급으로 나뉜 사회다. 이 계급의 구분은 엄격하다. 농노가 자유민을 때리면 손목을 잘라버리던 시절이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내전을 틈타서 도망친 농노도 있고, 패거리를 만들어서 마을을 약탈하고 불지르는 도적떼도 있다.

이런 일들이 모두 시루즈베리 지역에서 하나씩 발생한다. 폭설이 내린 다음날 개울물에서 얼어붙은 처녀의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숯을 굽는 장소에서 불에 탄 시신이 나타나기도 한다. 조용한 수도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여행자는 숲속에서 등에 칼을 맞고 죽어간다. 도적떼가 마을을 습격해서 마을주민들을 죽이고 재물을 휩쓸어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쉽게 개선될 것 같지도 않다. 치안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전이 종식되어야 한다. 하지만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는 대화와 타협을 거부한 채 무력에 의한 승부만을 고집한다. 보다못한 고위성직자들이 차례대로 이들과의 협상을 주선하지만 이것도 소용없다.

왕과 황후의 입장이 너무도 분명한 데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협상을 망치게 하려는 부하들이 그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렇게 내전에 소모되는 비용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다. 그 비용은 사회의 위계질서에 따라 차례로 내려가 결국 농노와 가난한 자유민들에게 끝없는 부담을 강요한다. 이 즈음 잉글랜드의 상황은 계속 절망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결국 시루즈베리에서 살인사건들이 터질때마다 캐드펠 수사가 앞에 나서게 된다. 캐드펠 수사는 한편으로는 부상자를 치료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살인사건을 추적해간다. 십자군에 참전했던 풍부한 경험을 살려서 전쟁터로 변한 현실의 세계에 뛰어든 것이다.

신의 뜻을 헤아리려고 고민하는 캐드펠 수사

이런 캐드펠 수사를 돕는 든든한 지원자가 있다. 시루즈베리의 행정보좌관인 휴 버링가라는 인물이다. 휴 버링가는 두 번째 작품인 <99번째 주검>에서 처음 등장한다. <99번째 주검>에서 캐드펠은 휴 버링가를 보면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휴가 과연 어떤 인물인지 종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휴는 시루즈베리의 행정보좌관을 거쳐 행정장관의 위치에 오른다. 캐드펠보다 30살 가량 적은 나이이지만, 휴는 사려깊고 현명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99번째 주검>에서 처음 만난 이 두사람은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다.

캐드펠은 휴를 믿고 휴도 캐드펠을 의지한다. 휴는 아들을 낳고나서 캐드펠에게 자기 아들의 대부가 되어달라고 부탁할 정도가 된다. 시루즈베리에서 휴가 속세의 권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캐드펠은 주민들을 신앙으로 교화시키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이 힘과 마음을 합친다면 꽤 괜찮은 파트너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캐드펠과 휴의 활약은 1145년까지 이어진다. 20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캐드펠 수사의 참회>에서 캐드펠은 65세의 나이가 되었고 휴는 시루즈베리의 행정장관으로 주민들의 신임을 받고 있다. 잉글랜드의 상황은 아직 좋아질 것 같지 않다. 여전히 내전이 진행 중이고 어느 한쪽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루즈베리의 치안은 안팎으로 안정되어가고 있지만, 여기도 언제 다시 내전에 휩쓸릴지 알수 없는 일이다. 캐드펠은 휴와 함께 수많은 사건들을 해결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문이 생겨나기도 한다.

신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다. 캐드펠 자신도 예외가 아니다. 올바른 일에 대한 의지와 믿음을 가지고 죄를 지었다면 그래서 속세의 법률을 어겼다면, 그것을 과연 죄라고 볼 수 있을까? 신이 그런 일에 대한 판단을 어떻게 할지 우리가 헤아릴 수 있을까?

이런 고민 때문에 캐드펠은 그동안 많은 사건을 해결했지만 그 범인에 대한 처벌방식은 천차만별이었다. 자기만 알고나서 덮어둘 때도 있고, 휴와 상의해서 조용히 모른척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천벌과 기적을 연출(?)해서 동료들을 속이는 일도 있다. 캐드펠은 성직자답게 죄인에 대한 처벌을 속세의 법률보다 하늘의 뜻에 맡겼는 지도 모른다. 캐드펠의 표현처럼, 정의를 구현하는 방법에는 한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성소의 참새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북하우스(1999)


#추리소설#캐드펠 수사#엘리스 피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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