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776년 1월 하순. 세손의 대리청정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홍인한 때문에 영조가 고심하던 바로 그때, 전 대사헌·이조판서 서명선의 전격적인 홍인한 비판 상소로 정국은 일순간에 급변하고 말았다. 이 상소를 명분으로 영조는 홍인한을 실각시키고 대리청정을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대리청정 의식이 거행된 것은 1776년 1월 30일이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홍인한 못지않게 막강한 강적인 정후겸이 아직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전에는 홍인한-정후겸 투톱체제이던 것이 대리청정 이후로는 정후겸 원톱체제로 변하여 세손의 등극을 극렬히 방해하게 되었다.
그럼, 실제로는 대리청정 구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사픽션 <이산>에서는 양위 문제를 놓고 갈등구도가 전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산>의 제작진이 드라마 초기에 이미 대리청정 카드를 사용해버렸기 때문이다. 오는 2월 25일의 대통령취임일까지 이산의 등극을 미루자니, 실제로는 있지도 않았던 양위문제를 ‘꾸며내서라도’ 세손파 대 반대파의 긴장구도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시 실제 역사로 돌아가서, 위의 원톱체제 하에서 정후겸이 어떤 방법으로 세손의 등극을 방해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때 정후겸이 꺼낸 카드는 ‘상소엔 상소로 맞불을 놓는다’는 전략이었다. 서명선의 상소를 계기로 자파 세력이 타격을 입었으므로 이에 대응하는 맞불 상소를 바쳐 동궁에게 타격을 주자는 전략이었다.
이에는 이, 상소에는 상소로...그런데 누구를 시켜 상소를 올릴 것인가? 세손측이 서명선을 시켜 상소문을 올렸으므로 우리 쪽도 누군가를 시켜 상소문을 올려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세손측을 음해하는 상소를 잘못 올리면 삼족 아니 구족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그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대체 누가 그런 위험을 스스로 감당할 것인가? 이 같은 비상시국에 위험을 무릅쓰고 세손보다도 나에게 충성을 바칠 인물이 있을까? 정후겸은 고심했다.
그때 정후겸의 머릿속을 스친 인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심상운(1732~1776년)이었다. 심상운은 명문가의 혈통을 계승했지만 역적 심익창의 자손이라는 굴레 때문에 출세의 제약을 받고 있었다. 심상운의 조상인 심익창은 환관 박상검과 함께 한때 영조의 등극을 방해했다.
이렇게 영조의 등극을 방해한 심익창의 자손이라는 이유 때문에 출세에 제약을 받던 심상운은 홍봉한의 도움에 힘입어 과거에 급제하고 1774년에는 승지까지 올랐다. 이때가 정조 즉위 2년 전이었다. 그리고 세손이 대리청정을 할 당시에는 그의 직함이 종5품 부사직이었다.
‘심상운은 출세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인물이다. 그런 사람에게 미래를 보장하면 분명히 나에게 충성을 바칠 것이다.’정후겸은 그렇게 계산했다. 그래서 심상운을 끌어들이기로 결심했고, 그의 예측대로 심상운은 정말로 충성을 서약했다. 이제 정후겸은 심상운에게 영조에게 올릴 상소문을 준비하도록 한다.
그럼, 서명선의 상소에 대응하는 심상운의 상소를 통해 정후겸이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세손과 홍국영의 분열이었다. 정후겸은 홍국영을 제거하지 않고는 절대로 세손의 등극을 저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후겸, '정조와 홍국영의 분열' 획책 훗날 정조 즉위 이후에 재판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정후겸은 마음이 매우 다급했다고 한다. 당대의 권력자 홍인한이 서명선의 상소 ‘한 방’에 ‘날아가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품은 것이다.
세손이 등극하면 어차피 나는 죽은 목숨이다. 그런 두려움이 정후겸을 극단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세손의 오른팔인 홍국영부터 제거하려는 작업에 착수했다.
여기서 잠시 드라마 <이산>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기로 한다. <이산>의 예전 방영분에서 정후겸이 세손과 홍국영의 분열을 획책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세손은 대리청정을 하고 있었다. 정후겸 측은 두 사람을 분열시키기 위해 홍국영에게 과잉진압의 오명을 덮어씌우는 데에 성공했다.
그 사실이 영조에게까지 알려져 세손도 대리청정에서 물러나고 홍국영도 권력에서 일시적으로 밀려났다. 홍국영이 똥지게를 진 것도 그때의 일이었다. 물론 실제 상황이 드라마처럼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구도의 상황이 정후겸의 주도 하에 발생했다.
정후겸은 심상운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네가 상소를 한 장 써라. 그 상소문에서 홍국영을 비난하되 실명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말아라. 무엇보다도 세손 옆에 불한당 같은 측근이 있다는 것을 은근히 강조해라. 세손의 측근들이 불한당 같은 짓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알면, 주상 전하의 마음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대리청정이 철회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정후겸의 지시에 따라 심상운은 한 장의 상소문을 쓴다. 출세에 눈먼 심상운은 오로지 정후겸만 믿고 세손측을 음해하는 상소문을 부지런히 써내려 간다.
그의 상소문이 제출된 날짜는 영조 51년 12월 21일 즉 서기 1776년 2월 10일이었다. 세손이 대리청정을 시작한 지 11일 뒤의 일이었다.
그런데 이 심상운의 상소문은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심상운은 자신이 쓴 상소문을 정후겸에게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조정에 먼저 바쳤다고 한다. 상소문을 일단 조정에 바친 다음에 상소문 부본을 정후겸에게 보냈던 것이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심상운의 상소문정후겸이 미리 확인하지 못한 이 상소문. 이 상소문은 정후겸의 의도와는 약간 다른 것이었다. 정후겸은 분명히 “홍국영 같은 불한당이 세손의 주위에 있음을 강조하라”고 했다. 심상운도 그런 내용을 쓰긴 했다. 그런데 심상운은 정후겸이 시키지 않은 일까지 하고 말았다. 그게 무엇일까?
심상운은 세손을 불쾌하게 만드는 내용까지 상소문에 써넣고 말았다. 중국 한나라 때의 고사를 인용하면서 세손을 온실수(溫室樹, 온실의 나무)에 빗대는 내용을 상소문에 집어넣은 것이다. 정후겸은 분명히 “홍국영에 포인트를 주라”고 했는데, 심상운은 그만 세손에게 포인트를 주고 만 것이다.
포인트를 잘못 둔 이 상소문으로 인해 심상운은 물론이고 정후겸까지 도리어 역풍을 맞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은 정조 즉위 후에 심상운을 사형으로 내모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세손과 홍국영의 분열을 노리고 던진 상소문이 도리어 자파를 타격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럼, 그 상소문에는 대체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을까? 세손이 온실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홍국영을 비난하려고 쓴 상소문에 엉뚱하게 “세손은 온실수” 운운이 들어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