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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사관학교 생도교육 과정에는 체육활동 시간이 유난히 많았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고 했으니 다다익선이라 생각했던지 운동시간은 생도 훈육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매주 수요일 오후는 아예 다른 일과가 없이 ‘체육의 날’로 정해져 있었다. 전 생도들이 이곳 저 곳에 흩어져서 승마, 레슬링, 역기, 검도, 유도, 태권도, 축구, 수영 등 자기가 좋아하는 종목을 선택하여 열심히 운동을 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고함소리며 이리저리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 등으로 학교 안은 한층 생동감이 넘쳤다. 

 

처음 군인을 만드는 과정인 기초 군사 훈련기간 중에도 체육 시간은 많았었다. 하지만 다른 군사훈련의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에  흐지부지 적당히 보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중에서도 상대방의 얼굴이며 가슴팍을 마구 쳐야만 하는 권투는 별로 인기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링 위에서 주먹을 날려본 경험이 있다는 정봉화 생도 혼자만 좋아하는 것 같았다. 교관님의 간단한 설명이 끝나면 , 실기 시범은 의례 정 생도가 도맡아서 보여 주었다. 그는 권투과목의 실습 조교나 다름없었다. 멀쑥한 영국 신사 풍의 잘 생긴 그가 껑충 껑충 뛰면서 쭉쭉 팔을 가볍게 내미는 모습은 아주 경쾌하고 멋있었다. 

 

교관 차영남 대위는 작달막한 키에 늘 뭔가에 놀란 듯 큰 눈망울이 겁이 많은 사람 같았다. 누가 봐도 그의 첫 인상은 다른 사람을 치고받는 권투 같은 운동은 못할 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자기 자신하고만 우직하게 싸워야하는 역도 선수 출신이라 했다. 어깨는 떡 벌어졌지만 천진난만, 순진무구한 인상이었다.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중요할 것 같지도 않은 권투 이론을 입에 거품을 뿜으며  열을 다 쏟아 가르쳐 주었다. 애써 표준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하지만 “가만히 서 있으면 못써요 잉! 싸게 싸게 움직여요 잉!” 하는 정겨운 사투리가 그 분의 모습과 잘 어울렸다.

 

1958년 7월의 무더운 여름날 오후, 주름 양철로 만든 임시 체육관 안은 찜통 속이나 다름없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려 내리고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 날은 권투 과목의 마지막 실습 시간이었다. 우리는 클럽을 끼고 2열 횡대로 길게 늘어섰다. 교관님의 호루라기 소리를 신호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생도끼리 상대를 때려 눕혀야 하는 경기다. 툭툭! 퍽퍽 ! 밀치고 밀리며 체육관 안은 삽시간에 살기로 가득 찼다. 기본자세니 기본동작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해 닭싸움하듯, 황소 싸움하듯 서로 밀어제쳐 주먹을 날렸다. 코피가 터지고 억! 소리 지르며, 푹! 푹!  쓰러지는 생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서로 죽일 듯이 기를 쓰며 숨 가쁘게 돌아가던 주먹 싸움도 차 교관님의 “동작 그만!” 하는 긴 호루라기 소리 한 번으로 끝이 났다. 우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눈언저리가 시퍼렇게 멍든 김 생도의 무용담을 들으며 피로를 풀었다.

 

그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상대자인 덩치 우람한 박 생도와 협상을 했다고 한다.  서로 “세게 때리지 말고 가만 가만 가볍게 싸우는 시늉만 내자”고 약속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치고 받는 일에는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합의 주먹이 오가는 동안 이 약속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그만 박 생도의 서툰 주먹이 잘못 나가 김 생도의 콧잔등을 세게 갈겨 친 것이다. 흥분된 열기로 가득 찬 주변의 분위기 때문에 주먹을 자기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대 얻어맞아 얼굴이 금세 벌겋게 달아오른 김 생도가 고개를 치켜든 채 성난 멧돼지 마냥 인정사정없이 파고들어감으로써 두 사람 사이에는 겉잡을 수 없는 진짜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서로가 살기를 세워 온몸을 던져 부닥쳤다. 사생결단 있는 힘을 다하여 치고받고 휘젓다 보니 눈퉁이에 시퍼런 멍이 들고 정신이 휭! 휭! 돌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 생도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웃었다.

 

전쟁의 결정은 정치인들이 한다. 군인은 결정된 전장에 나가 최선을 다해 싸울 뿐이다. 체격이 왜소하여 누가 봐도 주먹으로는 김 생도가 박 생도를 당해 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덤벼드는 데는 박 생도도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게 된 것이다.

 

김 생도는 불리한 신체 조건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더욱 난폭하게 악착같이 공격했을지 모른다. “실수로 잘못했으니 마음을 진정하라”고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속았다.” “무시당했다”고 단정하여 좌우 돌아보고 살필 어유도 없이 분노의 이를 갈며 무작정 파고든 것이다.

 

오늘 북한의 국력이 우리와는 견줄 수 없으리만큼 매우 약하다 해도 앞뒤 가리지 않고 사생결단 달려든다면 승패 이전에 쌍방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된다. 우리의 경제 성과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도 있다. 전쟁만은 절대 피해야 한다.

 

주변의 약자를 겁먹지 않도록 안심시키며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지혜와 힘이 진정한 안보역량이다. 이런 정책이 바로 햇볕정책이었다. 몇 해 전 공해를 통과하는 북한 상선을 향해 즉각 사격을 하지 않았다고 “총은 쏘라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빈정대며 대북 도발을 선동하기에 혈안 되었던 극우 신문들은 상업적 이익만 탐했을 뿐 진정으로 안보를 생각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안보의 궁극적 목적은 평화이기 때문이다.

 

서해 교전에서 전사한 우리 해군 장병들은 민족의 평화를 위해서 그리고 햇볕정책을 지키기 위해서 거룩하고 장렬한 최후를 마쳤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안보#평화#북한#권투#서해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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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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