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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의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지난 3일 충남 청양의 수정초등학교에 나홀로 입학한 고은영양. 은영이를 만날 약속을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로 생각되는 여자분이 전화를 받는다. 그런데 목소리가 낯설지 않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혹시 야스요씨 아니세요?"

이럴 수가, 내가 알고 있는 그 야스요씨 맞단다. 야스요씨는 몇 년 전 야학 봉사활동을 할 때 만난 일본어 원어민 선생님이었다. 야스요씨의 따님인 은영이가 바로 내가 찾던 '나홀로 입학생'이었다.

은영이네 집은 '콩밭 매는 아낙네'로 유명한 칠갑산 고갯마루에 있다. 행정구역상 대치리로 되어 있지만 '한티'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한'은 '크다'는 뜻의 순 우리말이고 '티'는 '치(峙)'의 옛 음으로 한티는 '큰고개'라는 뜻이다. 지금은 터널이 뚫려 큰 고개를 넘을 일이 없는 큰고개 마을 한티에는 스무 가구 남짓한 사람들이 올망졸망 모여살 뿐이다.

앞니 빠진 꼬마 숙녀, 나홀로 입학생이 되다

 여덟살 은영이. 웃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여덟살 은영이. 웃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 유신준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아빠 고유진(43)씨가 문간까지 나와서 맞아준다. 집으로 들어가니 동생 수영이(6)는 장난감놀이에 정신이 없고 예쁘장하게 생긴 주인공 은영이는 수줍은 듯 엄마 뒤로 숨어버린다.

"은영이 좋아하는 게 뭐야?"
"......"

말이 없다. 새로운 얼굴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은영이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평소에는 말도 잘하더니 왜 얌전해졌어?"

보다 못한 엄마 야스요씨가 끼어들었지만 고집스럽게 꼭 다문 은영이의 입을 열기에는 역부족이다. 말 붙이기는커녕 웃는 모습을 찍으려고 별짓을 다했지만 허사다. 들어 보니 웃지 않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이를 가는 나이라서 앞니가 훤하단다. 꼬마 숙녀, 절대로 웃을 수 없는 사정이 있었던 거다.

지척에 학교를 두고 읍내학교 가는 사연

은영이 엄마 이름에서 눈치챘을 테지만 은영이네는 이른바 '다문화 가정'이다. 야스요(香西康代, 41)씨는 신의 뜻을 따라 용감하게 한국 농촌으로 시집을 왔다. 지난 2005년에 귀화 절차까지 마쳐 이젠 어엿한 한국인이다. 생활은 그리 넉넉하지 않지만 어린이집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위안삼아 하루하루 소박하게 살아간다.

"은영이가 커서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간호사라든가 남에게 봉사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지만 종교를 가진 분이라 생각하는 게 남다르다. 은영이네 집에서 수정초등학교까지는 거리가 제법 된다. 게다가 큰길가라 통학하는 게 가장 신경 쓰인다. 

입학생이 은영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입학 전 예비 소집일에야 알았단다. 동네에도 초등학생이 몇 집 있지만 대부분 읍내 학교로 보낸다. 이곳 학교는 교육 수준이 떨어질 거라는 막연한 염려 때문에 읍내 학교로 보낸다는 것. 

주변에서는 야스요씨에게 왜 은영이를 읍내 학교로 보내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야스요씨는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자기들은 될 수 있는 한 주어진 제도 속에서 버텨볼 생각이란다. 혼자 입학한 은영이는 6학년 언니들과 같이 공부를 한다.

은영이네 학교는 언제까지 문을 열까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 운동장 놀이터.
아이들이 사라진 학교 운동장 놀이터. ⓒ 유신준

은영이네 집에 오기 전에 들렀던 수정초등학교는 고개를 들면 어디나 낮은 산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산골학교였다.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고 교정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 대신 이른 봄의 적막한 햇살만 감돌았다.

얼마 전 수정초등학교는 7명의 졸업생과 함께 56회 졸업식을 치렀다. 7명이 졸업을 했지만 입학생은 단 한명뿐이다.

"교직원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학생 수가 점점 줄어서 걱정입니다. 또 이곳 아이들은 가정 형편상 할머니, 할아버지와 생활하는 조손가정이 많습니다. 그만큼 마음 써야할 일도 많지요."

봉필환 교장 선생님의 말이다. 1947년 주정분교라는 이름으로 처음 교문을 열고 올해로 개교 61주년을 맞았다. 한창 잘 나가던 70년대 초 무렵에는 전교생이 540명을 기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 졸업식을 치르기 전 학생수는 27명까지 떨어졌다. 30여년 만에 학생수가 1/20으로 줄어버린 것이다. 이제 수정초등학교는 10여 명의 선생님에 학생도 스무명 남짓한 초미니 학교다.

어쨌든 은영이는 수정초등학교의 1학년 새내기가 됐다. 입학은 했지만 효율과 경제 논리에서 학생수 27명의 학교가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은영이의 학교를 우리는 지켜줄 수 있을까.

[취재후기] 나홀로 입학생은 농촌문제의 축소판
여덟 살 은영이의 나홀로 입학생 문제를 가만히 살피다 보면 우리 농촌 문제가 고구마 줄거리처럼 주렁주렁 따라 나온다. 농어촌 교육의 핵심적인 문제인 인구와 학생수 감소, 그로 인한 소규모 학교의 통폐합, 복식학급의 증가, 교육의 질 저하, 지역 주민들의 자녀교육 불만족, 자녀의 도시전학이 다시 인구감소를 부르고... 악순환의 고리다.

농촌 지역사회 공동체가 붕괴되는 것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농촌의 과소화, 공동화를 염려해 지난 기간 막대한 자본을 투입한 농촌은 이미 황폐화되고 있다. 농촌학교가 순차적으로 통폐합되면서 폐교가 늘어나고 폐교는 농촌 황폐화 상징이 됐다.

정부는 1981년부터 소규모 초등학교 통폐합 기준을 마련하여 추진해 왔다. 농촌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은 교육과정의 정상적 운영과 교육재정의 효율적 사용이 목적이다. 통폐합정책은 겉으로 나타난 학생수 감소에 따른 대증처방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치료해야 한다. 근본적인 학생수 감소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농촌의 학교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농촌에 살고 싶어도 자식 교육 때문에 도시로 나간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국가는 충분한 교육재정을 우리 농촌에 보장해 주어야 한다.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삶의 여건이 취약한 농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정책을 도시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한다. 경제논리로는 비효율적일지 몰라도 농촌교육만큼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것이 국가가 수행해야 할 적극적인 교육 평등정책이며 농촌을 살리는 길이다.



#나홀로입학생#수정초등학교#고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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