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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초에 초등학교 1학년이 되는 어린이 가운데 짝꿍이 없는 '나홀로 입학생'은 전국적으로 130여 명에 이른다(잠정 집계). 이들이 다니게 될 대다수의 학교는 농·어촌 학교다. 사라져가는 농촌공동체를 아프게 대변하는 '나홀로 입학생'은 농·어촌의 '마지막 잎새'다. 지난 2000년 창간돼 올해로 만 여덟살이 된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여덟살의 '나홀로 입학생'의 벗이 되고자 한다. 시민기자, 독자와 함께 그들이 어떻게 '더불어 함께'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한다. 또한 이 기획을 통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함께 하는 마을' '더불어 함께'의 소중함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말]

나홀로 입학생.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겐 그 모습이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입학식엔 혼자 주인공이 되는 건가? 또 선생님과 1대 1 수업이니 완전 과외네. 이런 엉뚱한 생각만 떠오른다.

내 고향은 경북 포항. 공업 도시라 시골 풍경을 모르고 자랐다.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인근 농어촌 지역이 나오지만 피서철에나 한 번씩 들릴 뿐이다. 내 고향에도 나홀로 입학생이 있었다. 바로 포항 시가지에서 42㎞ 남짓 떨어진 상·하옥 마을.

낯선 곳인데다 찾아갈 방편도 마땅치 않아 결국 어머니를 꼬셨다. 물론 차 때문이 아니라 시골 분들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이렇게 해서 급하게 '모자 합동 취재팀'이 꾸려졌다.

로또 확률로 20여년 만에 만난 유치원 선생님

좁고 가파른 산비탈을 지나 꼬불꼬불 산길을 거쳐 드디어 도착한 상옥분교. 학생 수가 줄어들자 1999년 상옥초등학교에서 죽장초등학교 상옥분교로 격하됐다. 작년 학생 수는 18명. 올해 3명이 졸업하고 1명이 입학했다. 더하기 빼기해 보면 2명이 줄어든 셈이다. 

"나도 여기 23회 졸업했어요. 71년도쯤, 그때는 전교생이 400~500명 됐죠. 한 가구당 애들이 5명씩 됐으니까 학생 수가 많았죠. 이젠 농업만으로는 소득이 안 되니까 젊은 사람들도 없고…. 학생 수가 많이 줄었지."

상옥분교에서 학생들 통학을 담당하는 윤용호(52) 기사의 말이다. 상옥마을도 예전엔 제법 큰 동네였는데, 지금은 농협도 없어지고 우체국도 없어졌다.

윤용호씨에게 나홀로 입학생 이름과 연락처를 물었지만 살고 있는 집 위치만 대략 알려준다. 나홀로 입학생은 하옥마을에 살고 있었다. 못 찾을까 봐 걱정하는 나와 달리 어머니는 느긋했다. "그저 입학생이 어디 사느냐고 물으면 된다". 시골은 한 가족이라 금세 찾는다는 것. 다행이 어머니 말대로 별 다른 어려움 없이 오늘의 주인공이 사는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계세요? 아무도 안 계십니까?"

연락도 안 하고 왔는데 인터뷰에 응해 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어~어~어, 이게 웬일이고? 여 왜 왔노? 나 있는 줄 알고 왔어? 아! 창욱이?"

으잉? 이건 웬 뜬금없는 상황? 낯익은 얼굴의 아주머니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마구 말을 쏟아낸다. 게다가 내 이름까지 알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는 별 말 없이 그저 "하하하" 웃기만 하신다.

네 남매는 하옥마을의 연예인이자 VIP

박옥희(46) 선생님.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바로 나의 유치원 선생님이셨다. 하늘 같은 선생님을 몰라본 나, 반성한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다 있다. 이 산골까지 와서 20여년 만에 만났으니, 이거 로또 확률 아닌가? 박옥희 선생님이 바로 나홀로 입학생 박준경 어린이의 어머니셨다.

결국 나홀로 입학생은 제쳐두고 아줌마들의 수다가 시작됐다. 지난 세월에 대한 이야기가 장장 2시간 동안 계속됐다. 어머니와 선생님은 4년 전 마주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 얼굴은 몰라보고 어머니를 알아보신 거다. 어머니를 꼬셔서 오길 정말 잘했다. 이 대반전 앞에 오늘의 주인공인 나홀로 입학생 준경이는 조연, 아니 '스태프'로 전락했다. "곶감 내와라" 등등 잔심부름까지 도맡은 것.

 왼쪽부터 오늘의 주인공 셋째 준경이, 막내 예경이, 키 큰 둘째 유경이. 첫째 현경이는 부끄러운지 끝끝내 사진찍기를 거부했다.
왼쪽부터 오늘의 주인공 셋째 준경이, 막내 예경이, 키 큰 둘째 유경이. 첫째 현경이는 부끄러운지 끝끝내 사진찍기를 거부했다. ⓒ 이창욱

박 선생님이 이 곳 하옥마을에 둥지를 튼 것은 2006년 6월경. 남편 분이 몸이 좋지 않아 시부모님까지 모두 모시고 이곳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모두 넷. 첫째 현경이(6학년·13), 둘째 유경이(4학년·11), 셋째 준경이(1학년·8), 넷째 예경이(유치원생·7)다. 아이들도 모두 상옥분교로 전학을 왔다. 당시 유치원을 다닐 나이였던 준경이와 예경이는 귀하신 몸 대접을 받았다.

"6월에 이사온다고 했는데, 학교 병설유치원에서 2, 3월부터 전화가 막 오는 거예요. 준경이랑 예경이 유치원 등록만 해 놓으라고. 유치원 없어질까 봐 그랬는지..."

뿐만 아니라 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도 독차지하고 있다.

"얼마나 좋아들 하시는지, 동네의 보물이라고 하죠. 가끔 바나나 한 박스 가지고 근처 어르신께 돌리는데 너무 반가워하세요. 아이들 데리고 가면 항상 이쁘다고, 착하다고 좋아들 하시죠."

나이든 어르신만 남은 농촌에서 아이들은 큰 웃음을 주는 연예인이다. 그래서 어딜 가나 VIP 손님이다. 그래도 준경이가 혼자 학교에 입학하니 맘이 좋지만은 않다. 그래도 다행히 나홀로 입학식을 하지는 않았고 근처 본교에 가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했다.

"짠하죠. 친구나 또래가 중요할 땐데 혼자니까. 자식 네 명, 많이 낳았다 생각했는데, 여기 오니까 잘했다 싶어요. 일어나면 애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어요. 첫째 현경이가 문제내주고 밑에는 풀고, 공부도 놀이처럼 해서 좋구요."

역시, 아이들은 어떻게든 큰다.

저녁 6시면 잠자는 웰빙 생활... "또래 친구 있었으면"

"혼자 입학했는데 어때?"
"좋아요."
"왜?"
"그냥요."
"친구 없는데 안 심심해?"
"네. 형들도 있으니까... 혼자 놀아도 재미있고."

낯선 사람이어서일까. 준경이의 대답이 짧다. 동생 셋을 챙겨야 하는 현경이는 어떨까.

"네 남매가 같이 다니는 건 어때?"
"(고개를 흔들며) 싫어요. 그냥요."

아이들의 답은 예상을 한참 빗나갔다. 나홀로 입학생이라 쓸쓸해 할 것이라는 것은 어른들의 생각이었나 보다. 친구가 없어서 쓸쓸하겠지만 아래, 위 학년 또래만 있으면 걱정이 없다. 물론 첫째 현경이는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게 못마땅한 눈치지만 준경이·예경이는 놀아줄 사람이 있으니 마냥 즐겁기만 하다.

ⓒ 이창욱

첫째 현경이와 둘째 유경이는 도시 학교를 다니다 조그만 시골 학교로 전학 왔다.

"도시 학교가 좋아? 여기 학교가 좋아?"
"전 여기가 좋아요. 조용해서 좋고, 학교가 가족 같아서 좋고, 재밌고. 또 선생님도 잘 가르쳐주시고. (현경이)"
"전 친구가 없어서... 큰 학교가 좋아요. 작년엔 6학년 언니들이랑 같이 수업했는데요. 이제 중학교 가서 없어요. (유경이)"

박옥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숨겨진 사연이 있단다. 상옥분교는 학생 수가 적어 복식수업을 하는데 1/4학년, 2/5학년, 3/6학년이 함께 공부한다. 현경이는 같은 학년에 여자친구가 1명 있고 유경이는 여자라고는 달랑 혼자란다. 같은 성별의 또래 친구가 없다는 거, 아이들에게는 가장 큰 불만이다.

상옥마을의 보물 네 남매의 일상은 어떨까.

"숙제하고 밥 먹고 자요. 6시 되면 자요."

산속은 빨리 어두워지기 때문에 일찍 잠이 든단다. 그래도 6시라니, 너무했다. 이 아이들이 '1박2일'이나 '무한도전'을 알까. 박옥희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텔레비전은 많이 안 본단다. 또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자도 안 먹는단다. 제대로 웰빙이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인데 시골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고 있었다.

하옥마을의 보배는 잘 자라고 있었다

 작년 상옥 꿈나무들의 사진(유치원생 포함). 가장 위 동그라미에 현경이, 순서대로 아래 유경이, 준경이 , 예경이.
작년 상옥 꿈나무들의 사진(유치원생 포함). 가장 위 동그라미에 현경이, 순서대로 아래 유경이, 준경이 , 예경이. ⓒ 이창욱
산에 오면 내가 가장 걱정하는 걸 물어봤다.

"야생동물 만난 적 없어? 무섭진 않아?"
"사슴 봤어요, 1마리. 너구리도 봤구요. 개가 너구리한테 막 짖었었요. 별로 안 무서워요."

야생동물이 무섭지 않다니, 큰 개만 봐도 무서워하는 내겐 다른 세상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몇 시간을 앉아 있었더니 아이들이 지루했나 보다. 녀석들이 슬슬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린다.

나도 아이들을 따라 나갔다. 밖에 나온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났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강아지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낳았다!"

닭장에 들어갔던 준경이가 보물을 발견한 듯이 뛰어온다. 뭔가를 쥐고, 번쩍 손을 들며 의기양양 뛰어오는 준경이. 그 조그마한 손에는 따뜻한 달걀 한 알이 들어있었다. 뒷마당에 있는 닭이 알을 낳은 것. 닭장 어딘가 숨어 있는 달걀을 찾아내는 건 준경이의 취미이자 의무다.

동무도 없는 산골에서 살지만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의 꿈을 키워가고 있었다. 현경이는 한식 요리사, 유경이는 화가, 준경이는 경찰관, 그리고 예경이는 '대통령 부인'이 꿈이다. 예경이의 독특한 대답에 대통령 부인이 뭔지 아느냐고 물어도 그저 웃기만 한다. 언젠가 아버지가 "예경이는 대통령 부인해라"고 한 말을 기억하는 거란다. 하옥마을의 보배는 그렇게 자라나고 있었다.


#나홀로 입학생#농촌#상옥분교#박준경#입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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