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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절강성 도로 항주~상해, 김태수가 말을 달려 간 길, 지금은 고속도로가 나 있다.
▲ 중국 절강성 도로 항주~상해, 김태수가 말을 달려 간 길, 지금은 고속도로가 나 있다.
ⓒ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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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김태수는 민씨 형제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볼 줄 알았다. 형제에게는 똑같이 귀인의 기품이 있었다. 형은 박식하고 교양이 있어 보였다. 그리고 동생은 아직 소년의 모습이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자세히 보면 겸손하면서도 뭔가 강한 의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형제는 착한 인상을 지니고 있는 점이 김태수의 마음을 끌었다. 아무리 보아도 무역이나 장사를 하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지금 묵고 계신 데는 어디신지요?”
민제호가 김태수에게 물었다. 서호에 반한 김태수는 며칠 전 숙소를 아예 호숫가로 옮겼다. 김태수는 자기가 묵고 있는 객사의 주소를 알려 주었다. 

“알아 봐 놓을 테니, 며칠 내로 다시 한 번 들르시지요.”
“그 전이라도 형제분께서 서호로 바람이라도 쏘이러 오시면 제가 영접하겠습니다.”

형제는 김태수를 문 앞까지 배웅했다. 멀어지는 김태수의 뒷모습을 보며 민제호가 중얼거렸다.

“배를 혼자서 임대해 타고 황해를 건너 왔다고 하더니 말은 러시아 것을 타고 다니는구나.”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 땅은 산동성과 강소성과 절강성이었다. 이 세 성은 중국 동북부 해안에 차례대로 있었다. 가장 북쪽에 있는 통일신라의 면적과 비슷한 산동성은 셋 중에서도 한국과 제일 가까웠다. 산동성 아래가 강소성이고 강소성의 남단에 상해가 있었다. 그리고 강소성의 아래가 절강성인데 항주는 절강성의 북단에 있어 상해와의 거리는 아주 가까웠다.

한국에서 상해나 항주로 가는 길은 신의주를 통한 육로가 있고 진남포, 또는 인천 등을 통하는 해로가 있었다. 해로를 통해 가야 거리가 단축되고 또 단축되는 만큼 경비도 적게 먹혔다. 진남포와 인천에는 중국의 정크선이 드나들었다. 상해로 망명하는 사람들은 주로 두 항구에서 정크선을 타고 중국 령 이도(裡島)나 연대(엔타이)로 갔다가 거기서 기회를 보아 상해로 밀항했다.

그런데 김태수는 배 한 척을 독채로 세내어 단신으로 입국했다고 했다. 거기다가 최고급 말까지 타고 다니는 것을 보았으니, 민제호로서는 현실감이 없었고 또 그만큼 김태수의 정체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민필호의 의견은 달랐다. 민필호는 그의 얼굴에서 진실성과 비애감을 보았다고 했다. 분명히 그는 18호를 사랑하고 있는 남자일 거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는 인생의 승부를 걸고 18호를 찾아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러다가 민필호는 갑자기 최도애의 얼굴을 떠올렸다. 민필호는 그녀의 눈빛과 살결과 체취가 불현듯이 그리워졌다.

“필호야!”
“부르셨습니까?
“너 사귀던 아가씨는 어떻게 하고 왔냐?”

민제호는 동생의 심리를 빤히 보기나 한다는 듯이 물었다.

“두고 왔습니다.”
“물건처럼 말하는구나. 그럼 나중에 집으러 갈 거냐?”
“아닙니다. 생각 없습니다.”
“생각이 없는 거냐, 아니면 의지가 없는 거냐?”
“의지가 없는 겁니다.”

필호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주전자를 들어 잔에 찻물을 부었다.

“형님은 어떤 겁니까?”
“나한테 물은 거냐?”
“예. 고국에 계시는 형수 말입니다.”
“의지는 있지만 생각이 없다.”
“저랑 반대시군요”
“너는 여자와 남자의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
“제가 형님께 질문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그래라.”
“방금 형님께서 저에게 하신 질문, 형님은 답을 알고 하신 겁니까?”

제호는 찻잔으로 손을 가져갔다.

“…모르고 한 거다.”
“저도 잘 모릅니다.”
“같이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러지요.”

형제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정의 내리려 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누가 그 이상한 것의 총체를 간명한 언어로 포착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고 장황히 말한다고 해서 사랑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도 아니었다.

“필호야, 개념을 일반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려울 때는 지정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사랑이 나타내는 증세나 징후 같은 것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어떤 증상이 나타납니까?”
“첫째로 일체감이다. 같이 되고 싶은 마음 말이다. 같이 될 수가 없으니 같이 있기라도 하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없을 때도 마치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할 때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 동화된다고 하는 것 아니겠냐?”

“다음에는 뭐가 있습니까?”
“희생정신이다. 자기보다는 그 사람을 위해 살고 싶은 마음 말이다. 우리가 좋은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혼자 있는 사람은 좋은 데에도 가고 싶지 않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지 않은 법이다.”

“형님은 그런 상대를 만나셨습니까?”
“물론이다. 안 만났다. 너는 만났니?”
“저도 물론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일체감과 희생정신 중에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을 한다. 어느 한쪽이 많으면 다른 한쪽은 반비례로 줄어든다. 그런데 진정한 사랑은 그 두 개가 반비례하지 않는다. 둘 다 고정된 상수로 비례한다. 신규식 선생을 봐라. 그 분이 조국을 대하시는 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 분은 조국에 대한 일체감과 희생정신 두 가지를 똑같이 갖추고 있다.”

필호는 형의 말을 듣고 보니 자기가 최도애를 생각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호야! 남녀가 사랑하려면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폭풍의 언덕이라는 서양 소설이 있다. 히스크립과 캐더린이라는 남녀 악질 둘이서 사랑하는 연애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둘의 사랑은 정말 사랑답다. 왜냐 하면 두 사람은 같은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랑은 두 사람의 영혼이 같아야 만들어진다.“

해후

산동반도에는 작지만 유서 깊은 두 지역이 있었다. 한 곳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밀항할 때 경유지로 삼았던 연대(옌타이)이고 다른 한 곳은 마호타이 해협에 있는 봉래(펑라이)였다. 항주에서 황강에 오른 김태수는 이 두 곳을 향해 말을 몰고 있었다. 그는 사정없이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는 이 두 곳 중의 한 곳에서 백주원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제국주의에 도전하는 인간들의 야망에 찬 삶과 매혹적인 사랑을 그리는 소설입니다.



#절강성#연태#봉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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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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