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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다. 밭갈이를 하는 농부의 뒷모습에서도, 갈아엎어진 흙에서도 봄내음이 묻어난다.
봄이다. 밭갈이를 하는 농부의 뒷모습에서도, 갈아엎어진 흙에서도 봄내음이 묻어난다. ⓒ 이돈삼

쉬는 날이다. 일주일만에 맛보는 늦잠이다. 아이들은 벌써 일어나서 보챈다. 며칠 전부터 섬진강변으로 자전거 타러 가자고 약속을 한 터였다. 게으른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피로가 쌓였다는 엄마는 집에서 쉬고, 대신 슬비 친구 혜미가 동행을 했다. 목적지는 전라남도 곡성군 고달면 가정마을.

완연한 봄이다. 도로 양쪽으로 펼쳐진 보리밭이 생기를 더하고 있다. 초목들도 신록의 색깔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아이들은 밖에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표정이다.

그 사이 자동차는 호남고속국도 석곡나들목으로 들어가 오른편에 보성강을 끼고 달린다. 강은 참 기이하다. 하구보다 더 남쪽인 보성에서 발원해 북쪽으로 휘돌아 흐르니 말이다. 강변도로가 한적해서 더 좋다.

해찰을 일삼던 차는 광주를 떠난 지 1시간 30분만에 가정마을에 닿았다. 아이들은 주차도 하기 전에 자전거대여소로 달려간다. 슬비와 혜미는 혼자서 타는 자전거를 골랐다. 예슬이는 아빠와 함께 타는 2인용 앞에 섰다.

 섬진강변을 따라 도는 자전거 하이킹. 금세 마음 속까지 상쾌해진다. 강바람도 정말 달콤하다.
섬진강변을 따라 도는 자전거 하이킹. 금세 마음 속까지 상쾌해진다. 강바람도 정말 달콤하다. ⓒ 이돈삼

 자전거 전용도로는 강변을 따라 이어져 운치를 더해 준다. 슬비와 혜미가 전용도로를 따라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있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강변을 따라 이어져 운치를 더해 준다. 슬비와 혜미가 전용도로를 따라 2인용 자전거를 타고 있다. ⓒ 이돈삼

먼저 자전거에 오른 슬비와 혜미는 경주라도 하는 양 힘차게 페달을 굴린다. 예슬이도 지지 않겠다는 듯 온 힘을 다 한다. 빠르게 한 바퀴 돌고나니 숨이 좀 차오른다. 하지만 금세 마음 속까지 상쾌해진다. 강바람도 달콤하다.

이번에는 페달을 천천히 돌렸다. 강 한쪽은 시야가 확 트인 길이다. 다른 한쪽은 미루나무 가로수가 강변을 따라 이어져 운치를 더해 준다. 강폭은 넓어지기도 하고 좁아지기도 한다. 여울을 지나는가 하면 어느새 강폭을 넓혀 잔잔한 물결을 이루고 있다.

길섶으로 파릇한 싹을 틔운 이름 모를 풀들도 눈에 들어온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도 눈에 띈다. 강물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추억을 낚는 이도 보인다. 섬진강 맑은 물과 주변 풍광도 우리를 인자하게 쳐다보는 것만 같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고. 빠르게 달리면서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KTX를 타고 가는 사람과 완행열차를 타고 가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풍경이 다르다던데,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옛날 강변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줄배. 지금은 관광객들이 부러 찾아 한번씩 타보는 놀이기구가 됐다.
옛날 강변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줄배. 지금은 관광객들이 부러 찾아 한번씩 타보는 놀이기구가 됐다. ⓒ 이돈삼

 평일엔 거의 타는 사람이 없는 줄배. 쉬는 날엔 줄배를 타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줄배를 타보기 위해 나루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평일엔 거의 타는 사람이 없는 줄배. 쉬는 날엔 줄배를 타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줄배를 타보기 위해 나루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보인다. ⓒ 이돈삼

호곡나루터로 자리를 옮겼다. ‘줄배’가 있는 이 나루터는 가정마을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섬진강에 딱 하나 남은 줄배는 운치를 더해준다. 줄배는 옛날 강변마을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사공이 없어도 혼자 배를 타고 오갈 수 있는 줄배는 슬비와 예슬이가 재미있어 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하긴 요즘 세상에 어디에서 이런 경험을 하겠는가? 한 번쯤 배에 올라 줄을 당겨보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옛날 숱한 사연을 실어 나르던 증기기관열차. 그 열차의 힘찬 기적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견딜 수 없는 설렘이다. 섬진강기차마을에서 타볼 수 있다.
옛날 숱한 사연을 실어 나르던 증기기관열차. 그 열차의 힘찬 기적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견딜 수 없는 설렘이다. 섬진강기차마을에서 타볼 수 있다. ⓒ 이돈삼

 증기기관열차는 내부를 옛 모습 그대로 살려 놓았다. 아이들은 체험여행, 어른들에겐 추억여행을 선사한다.
증기기관열차는 내부를 옛 모습 그대로 살려 놓았다. 아이들은 체험여행, 어른들에겐 추억여행을 선사한다. ⓒ 이돈삼

뿌-우-웅…. 증기기관열차를 타고 섬진강변을 바라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옛날 숱한 사연을 실어 나르던 그 열차의 힘찬 기적소리를 듣는 것도 견딜 수 없는 설렘이다.

증기기관열차를 타볼 수 있는 곳은 곡성군 오곡면 옛 곡성역 터에 자리 잡은 ‘섬진강 기차마을’. 옛 모습 그대로여서 더 정겨운 곳이다. 열차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표정이 사뭇 상기돼 있다. 처음이 아닌데도 설레는 모양이다.

싱그러운 봄기운을 가득 안고 힘찬 기적소리를 울리며 역을 빠져나간 증기기관열차는 구불구불한 철길을 돌고 돌아 섬진강을 만난다. 연세 지긋한 분들은 창 밖을 바라보며 추억을 낚는다. 연인들은 색다른 추억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기차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는 손 흔들며 인사하기. 17번국도와 기차와 나란히 달리는 동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손을 흔든다. 도로를 달리던 자동차 안의 사람들도 차창 너머로 끊임없이 손을 흔든다. 아이들도 손 흔들며 인사하는데 재미를 붙인 것 같다. 참 흐뭇한 모습이다.

 섬진강기차마을에서는 증기기관열차 외에도 철로자전거, 하늘자전거를 타볼 수 있다. 토피어리 만들기와 천연염색 체험 등도 가능하다. 슬비와 혜미, 예슬이가 철로자전거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섬진강기차마을에서는 증기기관열차 외에도 철로자전거, 하늘자전거를 타볼 수 있다. 토피어리 만들기와 천연염색 체험 등도 가능하다. 슬비와 혜미, 예슬이가 철로자전거를 타며 즐거워하고 있다. ⓒ 이돈삼

여행의 묘미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감히 속도를 줄이는 것으로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다. 속도를 늦추면 여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풍경도 정겹게 다가온다. 하여 일상에서 잠시 발을 빼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행은 시작된 셈이다.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 섬진강 물길을 따라 증기기관열차와 줄배, 자전거를 타는 것은 ‘느림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길이다. 아이들의 동심도 새록새록 여물고, 그 추억은 또 달콤한 봄날의 기억으로 남는다.

 섬진강기차마을 한켠에 마련된 영화 '아이스깨끼' 세트장. 옛 추억은 이곳에서도 떠올릴 수 있다.
섬진강기차마을 한켠에 마련된 영화 '아이스깨끼' 세트장. 옛 추억은 이곳에서도 떠올릴 수 있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곡성나들목에서 곡성읍을 거쳐 오곡면(구례방면)으로 가면 섬진강기차마을이 있다. 곡성나들목에서 이곳까지는 10㎞. 여기서 구례방면으로 5분 정도 가면 호곡나루터가 있고, 10분 정도 더 가면 자전거 전용도로가 펼쳐져 있다.



#섬진강#줄배#섬진강기차마을#자전거하이킹#슬비와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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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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