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심장으로 두 바퀴를 굴려가며 두 눈으로 바라본 세상이 무료하다면 여행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설렘과 자연을 보는 기쁨과 적절한 시련이 잘 버무려져야만 흥미가 배가된다. 그렇기에 뻔한 상황이 연출되어 너도나도 편하게 박제된 추억을 사서 돌아오는 패키지 여행은 영 입맛에 맞지 않는다. 꼭 자전거가 아니더라도 배낭 하나 둘러메고 바람따라 흘러가는 여행의 참맛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소소한 것들에도 큰 감명을 받는 데 있다.
시골 구석에 신식 일렉기타라니…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보약처럼 애지중지 하는 게 있다. 콜라다. 이 콜라를 끊지 못하는 한 세계일주 끝마치기도 전에 몸에 큰 탈이 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얼마나 좋아하느냐 하면 여행 중에는 하루에 355ml 기준으로 5캔씩은 꼬박 털어내야만 목 좀 축였구나 생각할 정도다. 이미 출발 전에 충치 치료를 받았고 또 중간에 시카고에서도 그새 생긴 충치를 치료할 정도니 말 다했다. 하지만 이제 몸도 생각해야 할 때인지라 멕시코에 들어와서는 전략을 바꿨다. 가능한 한 레몬에이드나 과일 주스를 많이 마시자는 것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수퍼에서 1.5l 짜리 아구아(멕시칸들은 과일 맛이 나는 연한 주스 형태를 그냥 물이라고 부르면서 마신다)를 늘 챙겨놓고 다닌다. 생수 외에도 힘을 내려면 단 것이 있어야 하기에 아구아를 구입하러 작은 수퍼에 들어갔다. 그런데 시끄러운 소음이 강렬한 비트의 리듬을 타고 가게 안을 요란스럽게 어지럽혔다. 가게 일을 보던 남자아이가 일렉기타를 연습하고 있던 것이다. 에릭(Eric)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녀석의 나이는 보기답지 않게 불과 열 두 살. 이 시골 구석에서 클래식이나 낡아 빠진 어쿠스틱 기타도 아닌 신식 일렉기타를 소유하고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호기심이다. 비록 동네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산 중턱에 위치해 보잘 것 없었지만 녀석의 패션이나 마인드 만큼은 도시 아이들 못지않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데도 혼자서 악보를 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의 연주 음악을 틀어놓고 하나하나 음을 따는 모습이 열정으로 가득하다.
"혼자서 연습하는 거니?" "네, 이게 제 취미거든요."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 "아직 그럴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하게 된다면 그 땐 고민해 봐야겠죠." 아이를 위한다고 해도 일렉기타라면 일반 가정에서는 결코 함부로 구입할 수 없는 악기다. 부대 장비까지 구입한다면 기종에 따라 성인의 한 달 월급을 훌쩍 넘기는 고가인 것이다. 그런데 시골의 작은 수퍼에 일렉기타를 치는 당돌한 소년이 있으니, 훗날 개천에서 용났다는 얘기가 전해지도록 그의 음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꽃을 피우길 기대해 본다. 수퍼에서 아구아를 구입하고 다시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과달라하라로 가는 길. 오르막길을 밀치며 몰아쉬는 거친 숨이 바람에 쓸려 나갈 만큼 힘이 든다. 눈에 보이는 모든 바위들이 온통 까맣다 하지만 고글 안의 눈빛을 가다듬고 조금 더 근육세포들을 조여낸 다음 다시금 힘차게 페달을 굴려 나간다. 그런데 안장 위에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풍경을 바라보자니 검은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것이 보였다. 눈에 보이는 모든 바위들이 온통 까맣다니. 대관절 어찌된 영문일까?
기이한 이 장면에서 세 가지를 추정해 보았다. 첫째는 누가 바위에 검은 칠을 해놓았다는 가설. 하지만 수백 만개에 이르는 바위에 일일이 색상균형을 맞추어 색칠하기란 불가능. 두 번째, 헬기로 검은 액체를 뿌렸다는 추측. 바로 도리질을 했다. 정상이 아니지 않고서야 이런 일 하기는 역시 불가능. 셋째, 바위가 불에 탔다? 하지만 바위는 연소체가 아니다. 그런데 정답은 의외로 세 번째와 그래도 좀 더 가까웠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바로 화산암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신기한 건 이 까만 바위들이 직경 2km도 채 되지 않은 곳에만 존재하고 나머지 주변은 으레 볼 수 있는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산이 고작 2km영역에만 미칠 정도로 작은 폭발을 일으켰을까. 지구과학 시간에 칠판을 보며 우주의 섭리보단 인생의 진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까닭에 이 답에 대해선 스스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다만 역시 자연의 신비를 노래할 수 밖에.
의문은 풀지 못했지만 꼭 답을 알아야만 명쾌해지고 더 풍성해지는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비밀스럽게 묻어두고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에 기이한 장면을 추억하는 데서 행복을 찾을 수도 있을 테니.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는 나지 않는다. 분명 바위들의 정체에 관한 무언가 과학적인 제반 근거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스쳐가는 생경스런 자연 풍경에 가끔씩은 감탄을 해 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꼭 별자리를 알아야만 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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