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에는 수많은 계곡에 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자주 찾는 등산로에도 물론 유적들이 많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계곡에는 아직도 석탑재나 초석들이 그대로 절터임을 증명하듯 남아 있다. 도난 우려도 상당히 많다. 작은 부재들은 언제 없어질지 모를 일이라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서출지를 지나가는 길 일반적으로 동쪽 유적 중 칠불암을 많이들 찾는다. 그리고 잘 알려진 서출지도 있다. 이곳에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신라 소지왕 10년(488)에 왕이 남산 기슭에 있던 ‘천천정’이라는 정자로 가고 있을 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의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쫓아 가보라’ 한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왕이 신하를 시켜 따라 가보게 하였다. 그러나 신하는 이 못에 와서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까마귀가 간 곳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다가 못 가운데서 한 노인이 나타나 봉투를 건네줘 왕에게 그것을 올렸다. 왕은 봉투 속에 있는 내용에 따라 궁에 돌아와 화살로 거문고집을 쏘니, 왕실에서 향을 올리던 중과 공주가 흉계를 꾸미고 있다가 죽음을 당했다는 전설이다. 이 못에서 글이 나와 계략을 막았다 하여 이름을 서출지(書出池)라 하고, 정월 보름날은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찰밥을 준비해 까마귀에게 제사지내는 풍속이 생겨났다. 현재 정자가 하나 있는데, 조선시대 만든 이요당이다.
쌍탑이 보인다 서출지를 지나가면 불탑사란 근래 절이 있고, 동 서로 서로 마른 형태의 탑이 마주 보고 있는 곳이 있다. 보물 제124호인 남산리 삼층석탑이다. 동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서 쌓아 올린 모전석탑의 양식을 취하고 있고, 서탑은 전형적인 석탑의 양식이다.
동탑은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이 넓게 이중으로 깔려있고, 그 위에 잘 다듬은 돌 여덟개를 한 단처럼 짜 맞추어 기단부를 이루고 있다. 중간에는 석등 부재와 장대석이 있다.
서탑은 기단 한 면을 둘로 나누어 팔부신중을 새겼다. 예전에는 마을길에 있었을 것이다.
복원 작업이 진행 중인 남리절터 쌍탑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남산사라는 절이있고 길가에 현재 복원이 진행중인 남리사지(혹는 전염불사지)이다. 절터에는 현재 동·서의 탑 자리가 남아 있는데 동탑은 조사에서 1층 옥개석이 깨어진 상태로 발견되었고, 서탑 주변에는 탑재들이 파손된 채 넘어져 있으며, 마을에는 사지에서 반출된 석재들이 흩어져 있다. 아직도 주변에는 탑재들이 있고 2008년 2월 불국사역 앞 삼층석탑을 옮겨와 현재 이곳에 복원하려고 진행중에 있다. 찾아가기 어려운 천동골 이제 서서히 산행을 시작하는데 산불조심 기간이라 방명록을 작성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가면 두 번째 계곡이 천동골 입구가 나타난다. 찾기가 만만치 않으나 다행히 요즘은 민묘 옆으로 이정표를 작게 화살표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지나치기 쉬우니 첫 계곡을 지나 '반갑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안내판을 지나 조금 더 가면 간이 화장실이 보이고 조금 더 간 바로 옆 골짜기가 천동골이다. 계곡을 거슬러 한 20여분 한참을 올라가면 특이한 천동탑이 보인다. 천동탑이 보이기 전에 화살표 이무런 문구도 없고 그냥 화살표만 된 곳 위로 올라가면 바로 디딜방아터가 남아 있다. 이곳은 아마도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곳이라 주목되는데 당시 곳인지는 의문이다.
천동탑은 현재 하나는 서 있고 하나는 조금 더 밑에 옆으로 누워 방치되어 있다. 돌기둥에 많은 감실을 파놓은 특이한 형식인데 탑이라 하기에는 뭐 좀 그러하다. 대략 100여개 가량의 감실이 있는데 당시에는 아마 천불천탑을 조성하여 예배하는 것으로 흔히들 이야기 한다. 다른 곳에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라 주목된다. 인적이 아주 드물어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주변은 온통 덩쿨과 잡목들로 우거져 있다.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유적들이 너무나 많은 경주남산 단순히 등산으로 오르지 말고 신라인들의 신앙심을 생각하면서 유적답사를 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이제 서서히 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남산을 찾겠지만 과연 여기를 얼마나 찾을까?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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