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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당 일대 아파트촌.
 분당 일대 아파트촌.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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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집 사는 것이 돈 버는 길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 시작부터 내 집 마련에 많은 에너지를 집중했습니다. 그 덕으로 6년 전에 25평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자주 들은 이야기가 자산을 늘려가는 방법으로 집을 조금씩 평수를 늘려가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도 아이가 태어나 슬슬 집이 좁게 여겨지고 집에 빚이 껴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평수를 넓히기 위해 30평형대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빚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갖고 있는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약금을 제외하고 중도금을 모두 빚으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입주할 때 지금 사는 집을 팔면 그간의 대출을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직장에서 부서발령이 다른 지역으로 나는 바람에 이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사를 해야하는데 거주하고 있는 집도, 분양받아 중도금을 치르고 있는 집도 팔리지 않습니다. 그저 집을 늘리려고 했던 것뿐인데 집에 꼼짝없이 돈이 묶이게 되었습니다.

주위에서는 좀 더 버텨보면 여러 호재가 있으니 다시 오를 것이라며 조급하게 굴지 말라고 합니다. 당장은 주말부부로 지내면서 시간을 두고 보면 어차피 기존 주택이나 새로 분양받은 주택 중 둘 중 하나는 올라서 차익을 실현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런데 불안해서 자주 들어가는 부동산 사이트에서는 분위기가 영 좋지 않습니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대해 계약금까지 포기해가며 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미분양이었는데 괜히 잘 모르는 채 계약하고선 중도금까지 두 차례 부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단지 주택을 확장하려던 단순한 계획이었을 뿐인데 얼어붙은 주택시장으로 인해 순식간에 하나도 없던 부채가 1억원 이상 생겼다. 거기에 잔금까지 치르게 되면 고스란히 2억의 부채를 끌어안게 되는 사례이다. 억울한 심정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사례자가 새로 분양받은 지역은 지방이라고 해도 지금도 부동산 사이트에서 관련 기사를 조회해 보면 한동안 개발 호재가 있는 투자가치가 유망한 곳이었다. 20평형대 아파트에 살다가 30평형대로 옮기면서 거주 평수도 넓히고 소문이 자자한 개발 호재에 기대 투자차익도 챙겨보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막연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집을 사는 공식대로라면 헌 집이 팔리고 새 집을 사야 한다. 집도 팔리지 않았는데 새 집을 계약하면 자금흐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사례자는 헌 집이 팔리지 않으리라고 추호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소문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매물도 없었기 때문에 급하게 팔고 분양을 받으면 추가 상승의 기회를 차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근무지가 바뀔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예측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본인이 적극적으로 서울 발령을 자원했다.

그런데도 새 아파트 분양을 추진하면서 '근무지 변경'이라는 재무사건 변동을 고려하지 않았다. 이유는 해당 아파트가 분양권 전매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프리미엄을 받고 팔면 그만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것이다.

막연한 욕심이 빚어낸 '묻지마 계약'

막연한 기대심은 미분양으로 배신을 당했다. 프리미엄을 기대한 '묻지마' 계약은 사례자에 국한되지 않은 듯하다. 계약금 포기 매물이 쏟아지는 것은 투자자의 상당수가 실수요자가 아닌 계약금만 투자하려는 단기 투자수요·투기수요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투자나 투기 수요로 채워진 분양시장이 한번 얼어붙으면 다시 살아나기 어렵다. 그만큼 투자 호재가 사라져 새로운 투자 수요를 창출하지 못해 떨이 매물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례자는 주택확장이라는 단순한 '전략'일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이면에 기대심에 부푼 욕심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런 욕심으로 사례자 개인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욕심은 부동산만이 부자가 되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이 팽배한 사회적 흐름이 부추긴 것이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믿음으로 여전히 부동산 재테크 책은 시중에 인기리에 발간되고 있으며 포털 사이트, 신문 재테크 면에 부동산 재테크 기사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사례자는 별수 없이 손실을 감수하고 현실적인 매각을 추진해야 한다. 여전히 '좀 더 버티면'이라는 생각으로 순식간에 빚을 2억으로 만들고 주말부부까지 감수한다면 금융비용과 생활비 초과 지출로 극단적인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과감히 손실을 감수하고 매각을 실현시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부동산 '광풍', 위험한 결말로 가는 중?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 연합뉴스 최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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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미국에서 발간된 <맞벌이의 함정>이라는 책에서는 미국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이 사교육비와 주택비용으로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의 중산층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학군이 좋고 범죄가 적은 교외지역으로 몰리면서 해당 지역의 주택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부담스런 주택가격임에도 그들은 20년 이상의 장기 모기지 대출을 얻어 과감히 투자를 했다. 부부가 맞벌이를 통해 벌 수 있는 돈에 모기지 대출 상환원리금과 자녀 사교육비 등의 고정비를 맞추어놓고 무리한 가계 지출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 무리한 가계 수지는 가정의 재무 사건이 변동하게 될 경우 충격을 흡수할 쿠션이 전혀 없는 수준이라며 심각한 문제제기를 던진다. 저자는 가계 유동성을 쿠션에 비유하면서 만에 하나 소득이 감소하고 주택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서거나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이어지게 될 경우 파산에 이르는 중산층이 크게 늘어날 것을 경고 했다.

그 책이 출간된 지 3년 만에 미국 경제는 결국 심각한 유동성 위기, 신용경색으로 이어지는 서브프라임 사태를 맞게 되었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 금융회사들이 과도하게 부채를 내주고 그 채권을 파생상품으로 엮어 내다팔면서 신용경색 위기까지 맞게 되었다. 그러나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집값이 오르리라는 지나친 믿음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에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리한 부채를 내 주었을까?

조금의 틈도 없는 가계 수지에 대한 염려는 뒤로 한 채 경기 호황에 대한 지나친 낙관과 그로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믿음이 지나쳤던 것이다. 파생상품으로 위험을 분산하고 있다는 금융기법에 대한 자만도 현실을 냉철히 분석하지 못하게 하는데 한 몫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금융기법이 발달한다 해도 경제 주체의 기본인 가정에서 수입과 지출의 불균형을 이겨내지 못해 터지는 것은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한도의 빚을 거의 다 끌어다 쓰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서브프라임 계층이 부채 상환이 감당이 안 돼 던지는 매물을 소화해 낼 수요는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급하게 집을 내놓아도 사는 사람이 없다. 이자가 연체되고 모기지 회사와 투자은행들은 채권 회수가 안 되면서 급격히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고 급기야는 큰 손실로 파산에 이르고 있다.

'부동산 불패'라는 믿음? 이젠 버려야 할 때

우리나라의 상황이 바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의 직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심각하게 염려할 때이다. 가계부채는 740조를 넘어서 국민 일인당 1500만원 이상의 빚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집으로 인해 부채 1억 이상을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매월 부채 상환원리금만 80만~90만원 돈을 지출하는 것이다. 거기에 사교육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영어 유치원 하나만 보내도 100만원이 넘는 돈을 써야 한다. 주거비용과 사교육비로만 200만원  가량의 돈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셈이다. 저축은커녕 가계 수지에 숨 쉴 틈이 없다.

당연히 빚을 더 내서 집을 사겠다는 수요가 크게 창출되기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이 추가로 오를 것이란 기대심이 있다. 기대심이 반영되어 당장 빚 갚는 것이 부담스러워도 버티는 가정이 많다. 매물도 없고 수요도 없는 거래 실종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간간히 그간 상승대열에서 소외되어 왔던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조차 기대심이 반영되어 매물자체가 적고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다는 이유로 수요가 일시적으로 몰리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불어 새 정부 들어 들썩이는 교육정책에 대한 불안함이 전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전국의 특목고 진학률 1위라는 지역적 특성이 강남 엄마들의 관심을 집값에 끌어 들이고 있는 특수한 현상도 있다. 전국적으로 미분양 아파트가 IMF때보다 많은 수준임을 감안해 보면 집을 살 여력이 되는 사람이 적어 수요가 실종하고 있음을 의심해 봐야 한다. 수요자의 주머니 사정, 빚을 갚을 현금 흐름과 무관하게 자산 가격이 끝도 없이 오를 것이란 믿음은 상당히 무리한 것이다.

짧은 기간에 지나치게 오른 집값은 집을 사야하고, 사고 싶은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을 이미 뛰어 넘었다. 빚도 끌어낼 만큼 끌어쓰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오르래야 오를 수 없는 한계에 달한 것이다.

부동산 거품, 언제까지 믿을 수 있나

그렇다면 만일 상승에 대한 기대심이 꺼진다면 어떻게 될까?

2억의 집을 사기 위해 1억의 부채를 갚고 있는데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고 고스란히 빚을 갚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어차피 살기 위해 산 집이니 천천히 부채 갚으면서 집값은 생각 않고 살겠다고 할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적어도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미국처럼 집값의 100%까지 빚을 내 주는 최첨단 선진(?) 금융 환경은 아니었다. 정부의 금융규제로 갚을 여력을 크게 뛰어넘는 빚을 낸 사람은 그리 맞지 않다. 버겁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빚을 갚아나갈 정도는 되는 가정이 많다.

전매 제한으로 적은 자금으로 단기 투자 수익만을 노리는 투기, 빚으로 계약금만 마련해 투자해 빠지는 레버리지 투자도 제한했다. 주택가격에 거품이 껴 있기는 하지만 가구의 소득에 큰 변동이 생기지 않는 한 폭락이라는 극단적인 위험으로 치달을 분위기는 아닐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세계 경제가 불안하게 움직이면서 경기 하강, 물가 상승이라는 악재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빚을 갚아나갈 수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 가계도 위험에 대처할 쿠션이 없는 재무구조이다. 만에 하나 경기 하강으로 기업이 다시 구조조정에 나서고 물가 상승이 멈추지 않는다면 대단히 극단적인 위험에 노출될 가정이 적지 않은 아슬아슬한 현실이다.

당장의 가계 재무구조를 냉철하게 평가해 봐야 할 시점이다. 거기에 여전히 부동산이라는 믿음이 껴 있다면 낙관이 지나친 사람임이 분명하다.


#부동산 투기#서브프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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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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