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월요일부터 일해요. 여기 시흥이에요."
"생각보다 빨리 일자리 찾았네. 이제 집에 가라고 할 사람 없겠네요."
"네. 고마워요. 일요일에 놀러 갈게요."
인도네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 샤리풀(21)의 전화였다. 그는 한 달 전쯤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모로 마음 고생을 겪어야 했다.
샤리풀은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 서울의 한 공장에서 일해 왔다. 문제는 그 공장이 용인으로 이전하면서 발생했다. 샤리풀은 형편 때문에 공장 기숙사에서 생활해 왔는데 이전하는 용인 공장에는 아직 기숙사 시설이 마련되지 않았던 것. 하루 아침에 집이 없어진 샤리풀은 회사에 문의했지만 기숙사가 생길 동안 자취를 하든지 회사를 그만두든지 하는 것밖에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샤리풀은 해고를 당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회사의 허락을 받아 근무처변경 신고와 구직등록을 하게 된 샤리풀.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회사 소재지의 고용지원센터에 근무처 변경 신고를 하려 했지만 지원센터에서 거절 당한 것.
"기숙사 없다고 회사 옮길 수 없어요"
샤리풀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담당 직원은 "기숙사가 없다는 이유로 근무처를 변경하려면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샤리풀이 겪었을 일이 눈에 선했다.
다음날 고용지원센터에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은 관련 규정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시행지침에 의하면 근무처를 변경할 수 있는 사유는 회사가 부도나거나 임금체불이 석 달 이상 되거나, 상당한 인권 침해 사실 등이 확인될 때만 가능합니다. 기숙사 문제로는 근무처 변경을 할 수 없습니다. 회사로 돌아가든지 자기 나라로 돌아가든지 해야 합니다."
하지만 같은 법에 의하면 샤리풀은 고용주의 해고로 '외국인 고용 변동신고'가 된 자로 고용지원센터에서 구직 등록을 거부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또 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상에도 '근로조건 저하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기숙사가 없어져 추가 생활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은 근로조건 저하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직원은 노동부 외국인력고용팀에게 물어본 다음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답답해진 나는 누구에게 물어봤는지 물어봤고 해당 직원은 모 감독관의 이름을 댔다. 하지만 해당 감독관에게 확인한 결과 "자신은 그런 전화를 받은 사실이 없고 담당 직원에게 근무처 변경이 가능하다고 말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주노동자 관련 업무가 그렇게 귀찮나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민원인에게 당당히 거짓말을 한 걸로 봐선 자신이 이 업무에 정통하다고 생각하거나 관련 업무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것을 숨기려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에 대해 알레르기성 거부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었다.
해당 직원은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등으로 인한 행정처리가 귀찮게 여겼을 수도 있다. 또 고용주들의 항의가 많았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로 한국 물정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협박'했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이 무슨 협박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3년을 약정하고 고국을 떠났던 샤리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런 말을 함께 들은 동료 이주노동자들은 "야, 이제 집에 가겠네. 잘 됐다. 가서 안부나 전해라"며 농담을 했지만, 그들 역시 맘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샤리풀은 구직 등록을 마쳤고 급하게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봤다.
일하던 회사를 본의 아니게 옮긴다고 협박을 받아야 하는 고단한 삶.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일자리를 찾은 샤리풀에게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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