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 이 벚꽃은 명품 같아 이것 봐 벚꽃이 뭔가 있어 보이지 않니?"벚꽃에도 품격이 있다? 여학생 한무리가 벚꽃 길을 지나가며 재잘거렸다. 물이 흐르는 천변을 향해 우아하게 뽐내고 있는 벚꽃을 보며 하는 말이다. 벚꽃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짓던 학생들은 핸드폰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다.
이맘 때쯤이면 꼭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인 정읍을 찾아간다. 정읍천변에 축 늘어진 벚꽃을 보기 위해서다. 벚꽃이야 우리나라 어느 곳을 가도 볼 수 있기 때문에 뭐 특별한 게 있을까마는, 이곳 벚꽃은 시민들의 정성과 사랑으로 가꿔져서인지 탐스럽고 푸짐하다. 거기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이들 손에 닿을 수 있도록 늘어져 있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기도 하고 벚꽃에 묻혀 사진을 찍기도 한다.
어딘가 모르게 좀 격이 달라 보이는 벚꽃이 늘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이다. 때문에 해마다 그곳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그곳 천변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벚꽃 가지들이 천변을 향해 늘어질 수 있도록 가꾸어 놓은 정읍 시민들의 노고가 보는 이들을 더욱 더 흐뭇하게 만든다. 천변 주위에는 개나리, 진달래, 명자화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벚꽃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9일이 총선이라서인지 후보자들과 선거운동원들도 천변을 걷고 있었다. 임신 한 임산부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꽃을 구경시켜주려는지 천변을 걷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도 꽃그늘 아래 앉아 맑은 물이 흐르는 천을 바라보며 알콩달콩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만들어 놓은 분수대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햇빛을 받아 무지갯빛으로 부서진다. 축제장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흥겨운 북소리와 함께 흥겹게 춤을 추는 엿장수의 모습도 보이고, 서커스 공연장도 보인다.
천변 공터에는 다양한 먹을거리도 보인다. 꽃길근처를 지나가는 차들 또한 행복한 표정으로 벚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자연은 사람들에게 꽃을 선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행복해 한다.
주말을 이용하여 오랜만에 딸을 데리고 갔다. 그동안 공부 하느라 철이 바뀌어도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던 딸은 내려갈 때부터 남녘에 가면 벚꽃 구경을 할 수 있겠다는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정읍천변을 찾아간 딸은 능수버들처럼 늘어진 벚꽃을 보더니 "이곳 벚꽃은 참 특이하네요. 할아버지 고향에 이렇게 아름다운 벚꽃길이 있는걸 몰랐어요"라며 감탄한다. 늘어진 벚꽃 사이로 포즈를 취해 보라하자 "엄마! 그렇게 하면 촌스러워서 싫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러자 지나가는 행인이 "학생 이곳은 어차피 촌이니까 그렇게 포즈를 취해도 돼"란다.
그 말에 딸과 나는 박장대소 하였다. 나는 "그래 어서 촌스럽게 포즈 취해봐!"하며 셔터를 눌렀다. 사람들의 표정이 참 온화해 보인다. 때가 되면 자연은 아름답게 꽃을 피워 아무런 조건 없이 우리에게 베푼다.
자연은 조급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잊고 쉴 수 있는 여유를 준다.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에 명절이나 되어야 가끔 내려왔던 딸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지라 시간이 나면 자주 찾아와야겠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 꽃비가 내리는 정읍천변을 걸으며 오랜만에 딸과 오붓하게 데이트 하였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께서 한마디 한다. "자매 같아요!" 나는 기뻤지만 딸은 아닌가 보다. 이날 딸과의 데이트는 환상이었다. 정읍천변의 벚꽃이 우리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금강 권역의 동진강 수계에 속해있는 정읍천은 한때 내장산의 각종 위락시설, 음식점, 관광객이 쏟아내는 오·폐수로 오염이 심각했으나, 1990년대 중반부터 계절마다 수질검사를 하고 주민들이 수질개선에 앞장서면서 깨끗한 1급수가 흐르는 강으로 바뀌었다.
요즘 하천변은 깨끗한 환경과 맑은 수질로 인해 도심 속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봄이면 철쭉, 개나리, 벚꽃 등 다양한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정읍천은 국가 하천으로 연장이 3.5km이며 부대시설로는 샘골다리와 청소년 물놀이장, 체육시설 및 자전거도로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 천변 도로에는 1973년도에 식재한 1300여 그루의 벚꽃길이 조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