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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곽을 연상시키는 거리는 가로등과 어우러져 로맨틱하기만 하다.
▲ 과나후아또 거리 중세 성곽을 연상시키는 거리는 가로등과 어우러져 로맨틱하기만 하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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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지간의 두 집안이 있었다. 이 집안들은 하필 좁은 골목길에 마주해 있었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 없이 서로를 철저하게 배척하고 있었다. 여기 또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밤만 되면 서로 2층 창가에 머리를 내밀고 입맞춤을 하며 달콤한 사랑을 속삭였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사랑마저도 넘지 못할 벽이 있었다. 그은 바로 두 집안의 아들과 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위태로운 사랑 앞에서 일은 기어이 터지고 만다.

어느 날 우연히 딸의 아버지가 두 사람의 사랑을 눈치 채고 만 것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가문의 수치라고!", 딸의 아버지는 심히 노했다. 그리고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는 잔인하게도 딸을 살해하고 그 시신을 아무도 몰래 지하실의 벽에 묻어 버린 것이다.

이 슬프고도 무서운 전설을 간직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골목의 집들 창가에는 이제 아름다운 화분들이 놓여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대다수의 여행자들은 당연하게도 커플이 대세를 이룬다. 마땅한 표지판이 없어 물어물어 찾아갈 정도로 복잡하긴 했지만 길을 잃어도 부담 없는 과나후아토 거리이기에 연인들의 발걸음은 결코 무겁지 않을 것이다.

키스를 부르는 거리... 언젠간 이곳에서 사랑을 속삭이리라

다정스레 포즈를 취하는 연인.
▲ 화분으로 꾸며놓은 2층 창가에 다정스레 포즈를 취하는 연인.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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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맞춤의 골목'에 도착해 보니 정말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멕시코판 신파극이 일어나기에 이만한 최적의 장소가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이곳 입맞춤의 골목 창가에서  젊은 연인들은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사진에 담아가기도 한다. 좁은 계단에서 나처럼 음울하게 독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지만 확실히 2층 창가에서 찍는 커플사진이 사람들의 시선을 더 잡아끈다.

키스를 부르는 거리…. 아마도 지하실의 벽에 묻혀있을 딸의 영혼이 이곳을 찾은 연인들의 사랑을 이뤄주는 메신저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처럼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픔을 다시는 보지 않기 위해. 부러운 장면에는 언제나 불끈대는 나의 미래가 보인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 때는 달빛 창가아래서 사랑을 속삭이리라.

전날, 과나후아토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늘 반복되던 고민을 또 하기 시작했다. 어두워졌으니 근처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시내로 나갈까 아니면 지금 당장 달려 들어갈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멀리 보이는 과나후아토의 전경이 기가 막히게 멋졌던 것이다.

콜로니얼 도시 사방으로 빛나는 오렌지 빛 등의 유혹은 정말이지 맛있게 보일 정도였다. 언덕이 많았지만 넘어갈 때마다 아름다움이 한 걸음씩 다가오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낄 정도였으니 말이다. 목적지가 눈에 보이면 아무리 힘들어도 생기가 돌기 마련.

키스할 핑계를 만들어 내기에 이만한 조건을 갖춘 곳이 또 어디 있을까.
▲ 키스를 부르는 거리 키스할 핑계를 만들어 내기에 이만한 조건을 갖춘 곳이 또 어디 있을까.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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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역시 밤에 오길 잘했다니깐!' 범상치 않은 과나후아토의 미학에 대해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가이드북에도 다른 사람의 여행기에도 충분히 설명되어있지 않은 눈부신 현란함이 내 눈에 들어오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시 전체가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듯한 마을의 작은 고갯마루를 넘고 포석이 깔려진 울퉁불퉁한 길을 자전거로 달리면서 포장도로가 아닌 것에 불평을 가질 이유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관광객 유치 명목으로 무분별한 개발이 자행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였다.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바로 역사요, 또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이 내용을 이루는 슬프고도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 입맞춤의 골목(Callejon del Beso)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이 내용을 이루는 슬프고도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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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지하세계... "'판타스틱' 하네"

과나후아토에서 가장 먼저 만난 건 바로 동화의 나라에서나 나올 법한 지하세계였다. 마치 미로처럼 여기저기 터널이 뚫려 있고 지상과 만나는 통로가 있다. 주로 차들의 운행로로 쓰이고 있지만 이 낭만에 도취되고 싶어 하는 연인들이 종종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길을 걷고 있노라면 마치 딴 세상에서 호사스런 방황을 맛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더 매력적인 사실은 초보행색 자처하며 길을 잃는다 해도 어떤 통로를 통해 밖으로 나가든 과나후아토의 판타스틱한 분위기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상과 지하 두 공간이 어우러져 숨을 쉬는 이곳은 다른 도시에서는 전에 느낄 수 없는 미적 흥분을 안겨주는 최고의 공간임이 분명하다.

어느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도 멋진 과나후아또의 경관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 판타스틱한 지하세계 어느 출입구를 통해 밖으로 나가도 멋진 과나후아또의 경관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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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악단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공원에서 노인들이 악단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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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을 신선처럼 한가로이 내려다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면에서 과나후아또의 전경을 어렵지 않은 방법으로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시내 한 가운데 우뚝 솟은 언덕 위로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언덕 꼭대기에는 독립전쟁 때 정부군이 주둔하는 요새를 향해 횃불을 등에 지고 혼자서 용감하게 돌격한 인디오 투사로 멕시코 독립사에 나오는 영웅 중의 한 명인 '삐삘라 기념상(Mounmento al Pipila)'이 있기도 하다. 좀 더 편하게 오르내리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기는 했지만 젊음을 돈과 바꾸지 않았다.

시내 중심인 라 빠스 광장(Plaza de la Paz)에 우뚝 세워진 웅장한 카떼드랄은 과나후아또 여행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이다.
▲ 밤에 본 카떼드랄 시내 중심인 라 빠스 광장(Plaza de la Paz)에 우뚝 세워진 웅장한 카떼드랄은 과나후아또 여행의 출발지이자 도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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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에 카떼드랄과 그 위로 과나후아또 대학이 보인다. 사진이 담아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그저 아쉬울 뿐.
▲ 과나후아또 야경 중심에 카떼드랄과 그 위로 과나후아또 대학이 보인다. 사진이 담아내지 못하는 아름다움이 그저 아쉬울 뿐.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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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30여분을 돌아 걸어 올라간 삐삘라 기념상에서 최고의 조망을 볼 수 있었다. 한 눈에 들어온 장관에 탄성을 지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메마른 영혼일까. 그런 과나후아토를 하루에 다 둘러보겠다는 욕심은 결코 과나후아토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저 게을리 거리를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흠뻑 이 도시의 매력에 빠지고 말 텐데…. 흔해 빠진 골목이 조도가 낮은 오렌지색 등이 켜지면서 동화의 세계로 탈바꿈 하는 곳, 밤 미사에 터지는 성가 소리가 주위의 분위기와 맞물려 마음이 떨릴 정도로 로맨틱해지는 곳 과나후아토.

온통 아름다움이 넘실대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발아래 펼쳐지고, 그 분위기에 푹 빠지기 위해서는 어깻죽지로부터 날개를 펴 뛰어 들어가야만 했다. 웅장한 건물의 자태와 순간을 영원처럼 즐기는 자들이 북적대는 사이사이 골목마다 나의 청춘을 비벼대고 싶었다. 과나후아토 여행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밑에 건물이 샌디에이고 사원이고 옆 건물이 내부 장식에 금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 식민지 시대 사치의 절정을 이루는 후아레스 극장(Teatro Juarez)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공간은 라 우니온 공원(Jardin de la Union).
▲ 또 다른 야경 밑에 건물이 샌디에이고 사원이고 옆 건물이 내부 장식에 금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 식민지 시대 사치의 절정을 이루는 후아레스 극장(Teatro Juarez)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공간은 라 우니온 공원(Jardin de la Union).
ⓒ 문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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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



태그:#과나후아토, #비전노마드, #자전거, #문종성,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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