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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때만 해도 산에 오르면 어느 산이든 오롯한 길이 나 있었다. 어디든 그 길을 따라 가고 올 수 있었다. 올라간 길로 다시 오든, 다른 길로 내려오든, 오솔길만 따라 가면 되었다. 산등성이든 산골짜기든. 그러나 요샌 아니다.

각시붓꽃 각시붓꽃이 수줍게 오솔길 옆으로 빠꼼 고개를 내민다.
▲ 각시붓꽃 각시붓꽃이 수줍게 오솔길 옆으로 빠꼼 고개를 내민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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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을 방 안에서 흘려보내는 것은 햇살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여 슬금슬금 신앙심이 발동하는 오후 시간에 내 엉덩이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다. 눈 박고 있던 <내 영혼이 따듯했던 날들>을 책상 위에 뒤집어엎어 놓은 채.

뒷산으로 물 한 병 허리에 차고 들어선다. 시작하는 길은 창대하다. 경운기도 넉넉히 오를 길이다. 넓은 길을 따라 오르니 잘 다듬질 된 무덤군이 나를 반긴다. 경주 이씨들이 가지런히 이름표를 달고 누워있다. 무덤을 한 바퀴 돌아 갈 만한 길을 찾아 들어섰다. 산등성이로 낙엽에 묻힌 길들이 어렴풋하게 누웠다.

제비꽃 길숲에서 제비꽃도 반갑다고 인사한다.
▲ 제비꽃 길숲에서 제비꽃도 반갑다고 인사한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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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잡았다 싶던 길은 어느새 잡목과 가시덩굴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청가시덩굴이 길을 막는가 했더니 이번에는 가시나무가 길을 막는다. 고목이 쓰러진 채 길을 턱 막고 누웠다 싶으면 다시 무릎까지 덮는 낙엽들이 길을 막는다.

거미줄을 나무막대기로 휘저어 끊으며 길 없는 길을 만들며 걷는다. 하늘소 한 마리가 죽은 나뭇가지에 붙어있다. 살며시 잡으려고 다가가니 몸을 던져 낙엽 속으로 숨는다. 한 자도 넘는 낙엽을 아무리 휘저어 찾아도 감감 무소식이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만다.

양지꽃 양지꽃은 무덤 위 둔덕으로 한 아름이다.
▲ 양지꽃 양지꽃은 무덤 위 둔덕으로 한 아름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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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처럼 생겼으면 들어선다. 길처럼 생기지 않은 곳은 길을 만들며 간다. 가시덩굴이 막으면 막대기를 주워 후려쳐 길을 낸다. 죽은 나뭇가지들이 내 가는 길을 막으면 등산화로 밟고 뛰어넘는다. 고목이 쓰러져 있으면 고목을 길 삼아 타고 간다. 나의 뒷동산 등산은 대개 이렇다.

그러다 보면 길이 나겠지, 하는 맘이다. 길이 안 나면 계속 길을 만들며 가지, 하는 맘이다. 세상에 어느 길이 처음부터 길이었던가. 가는 사람이 있으니 길이 된 것이지. 그래서 나는 개척교회보다 더 쉬운 길 내기 등산을 한다. 한 시간을 그렇게 길을 내며 걸어도 도무지 내려오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꿀풀꽃 무덤 분봉 위로는 꿀풀이 진한 향기를 뽐낸다.
▲ 꿀풀꽃 무덤 분봉 위로는 꿀풀이 진한 향기를 뽐낸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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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등성이를 타고 가 보면 저 아래쪽으로 희미하게 들판이 보인다. 다시 저 등성이 쪽으로 타고 가보면 공장 굴뚝이 보인다. 내가 사는 집은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골 저 등성이를 헤매다 안 진리 하나, 모든 길은 무덤으로 통한다는 것.

무덤으로 가면 길은 기가 막히게 나타난다. 무덤과 무덤 사이에 길이 있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인도한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만은 아닌 모양이다. 역시 죽고자 해야 산다는 성경의 진리는 이런 데도 어울리는 모양이다.

난 이제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는다. 무덤을 찾는다. 무덤을 찾으면 그 무덤은 날더러 이쪽이 내가 갈 길이라고 가르쳐 준다. 무덤에게 길을 묻다 내가 그 무덤에 들어가는 날 삶이란 걸 이 세상에 놓고 가겠지. 무덤이 되어 다른 산 자들을 인도할 것이려니. 죽음보다 더 분명한 길은 없다.


#길#인생#무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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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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