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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어지는 숲길입니다
 걷고 싶어지는 숲길입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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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군포에서 지역신문 기자 일을 4년 반쯤 했습니다. 덕분에 군포시를 손바닥의 손금 들여다보듯 잘 알고 있었지요. 군포시 전체를 안 가본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샅샅이 훑고 다녔기 때문이랍니다.

군포는 그리 내세울 만한 유명문화재도 별로 없고 특산물도 없는 작은 규모의 도시입니다. 인구도 30만 명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도농 복합도시로 산본신도시 등의 도심지역과 대야미 등의 농촌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7일, 대야미역에서 갈치저수지를 거쳐 수리산 임도를 걸었습니다. 걸린 시간은 두 시간 반 남짓. 오랜만에 대야미에 가니 예전 생각이 많이 납니다. 설날이 지나면 꼭 척사(윷놀이)대회가 열렸는데 취재를 핑계 삼아 구경을 가곤 했지요.

신나는 윷판이 벌어지면 참으로 신명납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지면서 윷판이 무르익어 가면 조껍데기로 만든 막걸리가 통째로 나오고 삶은 돼지고기가 안주로 등장합니다. 윷판에는 끼지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셨지요. 그 때 그 분들 죄다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대야미역 앞은 예전과 달리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가 시원스럽게 뚫려 있었습니다. 역 부근에는 두어 동의 나 홀로 아파트만 들어서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습니다. 다른 쪽에서는 아파트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대야미역 주변을 대충 살펴봤으니 이제 본격적인 도보여행을 시작해야겠지요. 이 날도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과 같이 걸었습니다. 이들과 같이 걸으면 함께 어울려 걷는 즐거움을 깊이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대야미에서 추억에 잠기다

밭에 씨를 뿌리는 할머니.
 밭에 씨를 뿌리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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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사랑 카페입니다
 그림사랑 카페입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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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대초등학교 쪽을 향해 걷습니다. 도로는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으나, 농촌지역답게 도로 옆은 밭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머릿수건을 쓰고, 보라색 플라스틱 슬리퍼를 신고 허리를 구부린 채 씨를 뿌리고 있습니다. 봄은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이니 씨를 뿌려야 제격이겠지요. 걷는 길에 밭일에 나선 분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10분쯤 걸으니 길 건너 쪽에 그림 같은 집이 하나 보입니다. '그림사랑' 카페입니다. 겉에서 보면 건물만 보이지만 안쪽에 잘 꾸며진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에는 여러 개의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고, 잘 자란 나무며 꽃들이 있습니다.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정원을 내다보는 재미가 쏠쏠한 카페입니다. 예전에 아주 많이 드나들었던 곳이라서 잘 압니다. 쥔장도 좋은 분이지요.

둔대초등학교 앞을 지납니다. 예전에 둔대초등학교 운동회날은 동네잔치 하는 날이었는데 지금도 그런지 궁금합니다.

죽암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정비해놓았습니다. 물이 별로 없고 좋지 않은 냄새가 풍겨옵니다. 그래도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으니 보기에는 좋습니다.

사람구경하는 개들
 사람구경하는 개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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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무리지어 멀어져 가고 저는 뒤에 홀로 남아 주변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걷습니다. 철망을 쳐놓은 곳에 개가 여러 마리 있는 것이 보입니다. 개들은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걸어가자 무슨 일이라도 났나 싶어 한 자리에 모여 목을 빼고 쳐다봅니다. 농촌동네 개들은 사람들이 지나가면 경계심을 나타내면서 목청껏 짖기 바쁜데 어찌된 게 이 동네 개들을 깽 소리 한 번 안 내고 구경만 하고 있네요.

"와, 사람이다!" 사람 구경에 나선 개들

와, 보리밭이다! 푸른 보리밭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어쩌면 저리 푸른지, 마음까지 푸르게 물드는 것 같습니다.

갈치저수지와 반월저수지의 갈림길이 나옵니다. 군포에는 두 개의 저수지가 있지요. 반월저수지와 갈치저수지. 제 기억으로는 반월저수지가 더 큽니다. 주변에는 음식점과 카페가 여럿 있지요.

보리밭입니다.
 보리밭입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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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안에 못자리를 내놓은 것이 보입니다. 마을 안 쪽으로 들어가면 논이 있을 텐데 길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기와지붕이 있는 집이 보입니다. 담벼락 옆에 연탄재가 쌓여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 조금 걸으니 길 건너 쪽 야산에 있는 무덤들이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명당은 무덤들이 죄다 차지했다고 해서 '삼천리 묘지강산'이라고 불러야 한다던 말이 떠오릅니다. 산 사람들의 집보다 죽은 사람들의 집이 더 오래간다죠?

파밭을 지나갑니다. 파 꽃이 피었습니다. 송전탑들이 죽 늘어선 것이 보입니다. 대야미 지역에는 송전탑이 많습니다.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자파가 인체에 아주 해롭답니다. 해서 군포에서는 오래전부터 송전탑을 지중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했지요.

갈치저수지입니다
 갈치저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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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갈치저수지가 보입니다. 물이 별로 없군요. 한쪽에 술병과 깡통을 비롯한 쓰레기가 버려져 있습니다. 놀았으면 쓰레기는 가져가야 하는데 양심까지 버리고 갔네요.

정난종 선생의 묘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나옵니다. 정난종 선생은 훈구파(勳舊派)의 중진으로 성리학에 밝았으며 서예에도 뛰어났고, 1467년 황해도관찰사로서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정난종 선생의 묘역 가는 길이 아니라 반대쪽 길로 접어들어 걷습니다. 보리밭이 또 보입니다. 보리밭 구경 실컷 합니다.

40분쯤 걸으니 수리산 임도(林道) 입구가 보입니다.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게 입구를 막아놨습니다. 사람들과 자전거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흙길입니다. 내딛는 걸음이 저절로 가벼워집니다. 임도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에 철쭉이 피어 있습니다.

하지만 철쭉은 이미 지기 시작했지요. 철따라 피어난 꽃이 철따라 지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철을 알고 피었다가 지는가, 싶어서지요. 가끔은 제 철을 모르고 피어나는 꽃도 있긴 하지만.

천천히 넓은 산길을 걸어갑니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 바싹 마른 채 길 옆에 쌓여 있습니다. 그 사이를 뚫고 제비꽃이 여기저기 피었습니다. 보랏빛 제비꽃은 언제 봐도 참 곱습니다. 자연의 빛깔은 시린 눈을 말끔하게 씻어주고 더불어 마음까지 씻어주지요.

자연의 빛깔은 시린 눈을 씻어준다

소나무 숲입니다.
 소나무 숲입니다.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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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이 펼쳐집니다. 곧게 자란 소나무들입니다. 소나무라도 다 같은 소나무가 아니라지만 문외한인지라 그냥 소나무려니 하면서 지나갑니다.

수리산역까지 2890m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수리산역 쪽으로 내려갈 예정입니다.

이제부터는 좁은 숲길이 펼쳐집니다. 양쪽으로 나무가 우거져 있습니다. 날씨는 맑고 부는 바람은 무척이나 시원합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칠 때마다 바람이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립니다. 허파에 깨끗한 공기가 가득 차는 것 같습니다. 아, 정말 좋다.

수리산 숲길은 참으로 걷기 좋습니다. 아주 잘 만들어진 흙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산길이지만 등산로와는 다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긴 군포 사람들, 수리산이 좋다는 것 잘 압니다.

산불감시초소 앞을 지납니다. 산불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모자라지요. 순식간에 잘 자란 나무들을 집어 삼키니까요.

자박자박 걷다보니 벌써 내려가는 길이랍니다. 저쪽에 철쭉 동산이 보입니다. 철쭉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지기 시작한 철쭉은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꽃이 한창 피어났을 때는 아마도 장관이었을 것입니다.

시간을 확인하니 두 시간 반 남짓 걸었습니다. 걸은 거리는 10km 정도지요. 그런데 걷기 좋은 흙길을 걸어서 그런지 삼십 분 정도밖에 안 걸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짚어 걷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이 길을 걸으러 오리라, 다짐했답니다.

덧붙이는 글 | [걸은 길] 대야미역 - 둔대초등학교 앞 - 갈치저수지 - 덕고개 - 수리산 임도 - 철쭉공원
[걸은 거리] 10km



태그:#수리산, #도보여행, #갈치저수지, #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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