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아름다운재단'과 공동 기획한 '나홀로 입학생에게 친구를'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학교 및 마을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나홀로 입학생을 위한 소원우체통 지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나홀로 입학생'이 다니는 학교와 마을 주민들의 '소원'을 취재해 이를 공동체 회복을 위한 인프라 지원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외국에서 시집온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경비를 지원하거나, 마을회관에 공용 컴퓨터와 인터넷통신망을 갖춰줄 수도 있다.
오마이뉴스와 아름다운재단은 매월 '나홀로…' 기획의 취재 사례 가운데서 '소원우체통' 지원 대상 공동체를 선정해 연내에 10여 곳에 대해 지원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편집자말] |
강원도 고성군 흘리분교 아이들과 어른들의 한결 같은 첫 번째 '소원'은 2년 전에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알프스스키장이 재개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소원은 도회지 아이들처럼 학원에 다니는 것이다.
대도시 아이들의 태반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 만큼 사교육 부담이 크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학원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어른들은 사교육비 때문에 가계가 휘청거릴 지경인데, 산골학교의 아이들과 학부모에게는 학원에 다니는 것이 '꿈'이다.
그도 그럴 것이 100여 세대가 사는 흘리에는 그 흔한 영어학원도 없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태권도 학원, 컴퓨터 학원도 없다. 그러니 학교는 마을의 유일한 놀이터이자 공동체다.
그러나 두 가지 소원은 모두 개인 사업자의 몫이다. 초등학생이 10명뿐인 마을에 영어 학원 문을 열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행히 전교생이 스키 특기자인 흘리분교 학생들의 동계훈련장이자 이 학교 학부모들의 일터인 '알프스스키장'이 올해는 재개장할 것이라는 낭보가 들린다. 또 도회지처럼 원어민 영어학원은 없지만 버금가는 실력을 가진 군인 아저씨한테서 영어수업도 받는다.
학원은 없지만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은 다양
정규 교육과정 이후에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이른바 '방과후학교'는 지난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었다. 정부는 특히 취약지역과 농산어촌 지역에 방과후학교에 대한 지원을 집중해 지역·계층간 교육격차를 줄여나감으로써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에 주력해 왔다.
이 산촌학교도 다양한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선 1·2학년 통합반 담임인 이동탁 선생이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모니카 연주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지난해 10월 피망체험축제에서도 하모니카를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또 매주 목요일에는 외부 강사를 초빙해 국악 사물놀이를 배운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는 인근 군부대에 근무하는 영어강사가 학교를 방문해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한 학기에 두 번 정도는 간성읍에 있는 본교(광산초교)로 내려가 지난해에 건립한 본교 도서관에서 합동 독서수업을 하고 식사를 함께 한다. 예전에는 1주일에 한 번은 내려가서 본교생들과 합동수업을 했는데 지금은 학기에 두 번으로 줄였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보니 서로들 서먹서먹해 하고 시설이 더 나은 곳에서 공부하는 본교생들에 대해 위화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아 아이들 의견을 청취해 합동수업을 줄였다고 한다. 그 대신 운동회는 본교생들과 함께 한다.
흘리분교의 '나홀로 입학생'인 신재응군의 엄마 신승희(31)씨는 재응이를 분교에 보내기 전만 해도 걱정이 태산 같았으나 지금은 학교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대만족이다. 재응이도 지금은 혼자뿐이라서 외롭지만 나중에 커서는 자신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자란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느려터진 학교 PC보다 마을회관 PC 애용
재응이는 이번 스승의 날(15일)에 누나·형들과 함께 2000~3000원씩 돈을 모아 선생님께 드릴 꽃화분과 과자를 사서 학교에서 과자 파티를 했다. 신씨는 "스승의 날이라며 내게 돈을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면서 "스스로 용돈을 모은 것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재응이는 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박지성 같은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장래희망을 딱히 정할 수가 없단다. 신씨는 코흘리개 재응이가 스승의 날에 기특한 짓을 한 것과 장래희망이 많아진 것도 다 아이의 정서를 함양해주는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과후학교'는 학교가 아닌 마을회관의 '정보화마을'에서 컴퓨터게임을 하는 것이다. 학교에도 컴퓨터가 5대 있지만 대개의 교육용 PC가 대개 그렇듯이 '속도가 느려터져' 아이들은 마을회관에 있는 5대의 PC를 더 선호한다.
문제는 마을회관 PC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사용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학년별로 요일을 정해서 사용한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정했다는데 학년별 PC 사용일은 '1·2학년은 월요일, 3·4학년은 수요일, 5·6학년은 매일'이다. 아마도 5·6학년생이 '중간보스'인 4학년 남학생을 시켜서 정한 것 같다.
아이들이 컴퓨터와 게임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려면 또 다른 약간의 제약이 있다. 아이들은 공용망인 '흘리 정보화광장'에서 의무적으로 '댓글'을 달아야 한다. 1학년은 1개, 2학년은 2개 이런 식으로 '흘리 정보화마을' 초기화면에서 댓글을 달아야 입장이 허용된다. 그런 뒤에는 PC로 게임을 하든, 만화를 보든 '자유'다. 물론 시간 제한(2시간)은 있다.
이 마을 토박이로 흘리 정보화마을 '프로그램 관리자'이자 아이들의 '감시자'인 전정현(58)씨가 정해 놓은 규칙이다. 이미 지난 99년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컴퓨터 교육을 해온 전씨는 "흘리 주민들은 모두 이메일을 주고 받을 줄 안다"면서 "그 덕분에 2000년에 새농촌 우수마을로 선정되었다"고 자랑했다. 현재 61 가구가 흘리 정보화마을에 참여하고 있다.
세 번째 소원은 흘리분교의 '병설유치원' 개설
흘리 주민들의 세 번째 소원은 흘리분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되는 것이다.
'나홀로 입학생'인 재응이도 인제의 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 출신이다. 재응이뿐이 아니다. '같은 반 누나들'인 김나원·김가을·차현경양을 포함해 전교생이 같은 어린이집을 나온 동문이다. 현재도 흘리의 미취학 아동 4명이 승합차로 인제의 어린이집에 다닌다.
재응이 아빠 신득수(40)씨는 고성에서 태어난 재응이가 인제의 유치원에 다니는 것이 불만이다. 진부령 끝자락에 위치한 흘리가 인제군 경계에 있어 간성읍보다 인제 쪽이 더 가깝기 때문이다. 재응이 엄마는 한달에 22만원이나 하는 어린이집 보육비가 부담스럽다. 그래서 두 사람은 한 목소리로 흘리분교에 병설유치원이 개설되기를 바랐다.
공기 좋고 안전한 학교의 시설을 활용해 병설유치원을 개설하면 아이들이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차를 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 병설유치원은 사설 어린이집보다 보육비도 한결 저렴하다. 또 병설유치원은 학교시설을 활용하기 때문에 미취학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자연스레 학교 적응훈련을 할 수 있다.
교사 1명만 배치하면 이처럼 안전하고 저렴하고 훌륭한 병설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다. 흘리분교로서도 병설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이 학급과 교사의 수를 유지할 수 있어 좋다.
읍사무소의 미취학 연령 인구통계에 따르면, 현재 흘리 마을에는 6~7세 아동이 한 명도 없다. 그 밑으로 4~5세 아동만 각 2명씩이다. 2년간 입학생이 없으니 규정상 흘리분교는 당장 내년부터 학급(3→2학급)과 교사(3→2명) 수가 줄어든다. 수업도 복식수업에서 3복식수업으로 바뀐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언니, 오빠의 손을 잡고 다니게 되니 통학길이 위험한 대도시에서처럼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된다. 재응이 엄마는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서 학교에서 '신장군'으로 통하는 재응이가 통학길에 4살짜리 여동생을 병설유치원에 데리고 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백두대간, 진부령, 스키마을, 한강 500리 발원지….
이것이 진부령 끝자락에 자리 잡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의 산촌마을 흘리를 떠올리게 하는 전통적인 '키워드' 들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키워드를 보탠다면 '정보화마을'이다.
농산어촌에 집중된 '방과후학교'가 도·농간 교육격차를 줄여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한 방안이라면, '정보화마을' 역시 도·농간 정보격차를 줄여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한 방안이다.
흘리 토박이인 전정현(58)씨는 흘리 정보화마을을 선도하고 있다. 공용망인 '흘리 정보화광장'의 프로그램 관리자인 전씨는 지난 99년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을 해왔다. 그리고 2000년에는 새농촌 우수마을로 선정되었고, 2004년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정보화마을을 구축했다.
정부는 마을당 평균 2억원 정도를 투자해 전국에 338개 정보화마을을 구축했다. 흘리 정보화마을은 강원도 내 46개 정보화마을 중 하나다. 흘리 정보화마을에는 흘 1·2·3리의 100여 세대 가운데 61세대가 가입해 있다. 정보화마을은 시·도에서 관리하지만 행정안전부 소속이다.
공용 PC 5개가 설치된 마을회관 한쪽에는 '정보화만이 살 길이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흘리는 지금, 스키마을에서 정보화마을로 진화중이다.
그런데 전씨는 도·농간 정보격차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된 이 사업에 대해 갈수록 효율성과 수익성을 따지는 세태에 대해 불만이다. 국회에서도 투자 대비 수익성을 따지면서 "전국 정보화마을이 게임방으로 전락했다"고 질타한다. 특히 효율성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흐름이 더 강화되고 있다.
"한창 바쁜 농사철에 관청에서 산나물축제니 피망축제니 하면서 주민들에게 참석을 강권하는 등, 좋은 취지로 시작된 정보화마을이 '체험마을'로 변질되고 있다"고 전씨는 불만을 토로했다.
아이들의 방과후 컴퓨터 사용을 지도하는 역할도 하는 전씨는 "일부에서 '정보화마을이 게임방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하지만, 아이들이 방과후 부모가 없는 집에서 숨어서 불건전한 사이트를 찾는 것보다 마을회관의 정보화광장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100번 낫다"면서 "이것마저 없으면 아이들이 방과후 어디서 무엇을 할지 상상해보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