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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정면으로 직시

 

.. 또한 식민지하의 사실을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합병’이라는 애매한 말을 만들어 냈다 ..  <한국사입문>(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이현무 옮김, 백산서당,1985) 117쪽

 

 ‘식민지하(-下)의 사실(事實)’은 ‘식민지라는 사실’이나 ‘식민지에서 일어나는 일’로 다듬어 줍니다. ‘회피(回避)하기 위(爲)해’는 ‘돌아가려고’나 ‘감추려고’로 다듬습니다.

 

 ┌ 정면(正面)

 │  (1) 똑바로 마주 보이는 면

 │   -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도서관이다 / 불빛이 정면에 오고 있어서

 │  (2) 사물에서, 앞쪽으로 향한 면

 │   - 건물 정면에 간판을 달다 / 건물 정면에 달린 둥근 전기 시계

 │  (3) 에두르지 아니하고 직접 마주 대함

 │   - 정면 공략 / 정면 돌파 / 정면으로 도전하다 / 정면으로 대립하다

 ├ 직시(直視)

 │  (1) 정신을 집중하여 어떤 대상을 똑바로 봄

 │  (2) 사물의 진실을 바로 봄

 │  (3) 병으로 눈알을 굴리지 못하고 앞만 봄

 │

 ├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을

 │→ 똑바로 보기를

 │→ 곧바로 보기를

 │→ 있는 그대로 보기를

 └ …

 

 ‘정면’이란 ‘앞쪽’이고 ‘직시’란 ‘앞을 보는’ 일입니다. 그러니 “정면으로 직시한다”를 쓰면 겹말이에요. 이때에는 뒷말과 아울러 “똑바로 못 보게 하려고”나 “있는 그대로 못 보게 하려고”로 손보면 한결 낫습니다.

 

 가만히 보면, 처음부터 ‘앞쪽’이나 ‘앞을 보다(바로 보다)’ 같은 말을 썼다면 겹말이 안 되었지 싶습니다. 한자말이라고 해도 쓸 만한 말은 써야 좋으나, 굳이 안 써도 되는 한자말, 또는 안 써야 할 만한 한자말, 나아가 토박이말로도 넉넉하지만 자꾸자꾸 쓰고 있는 한자말 때문에 겹말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ㄴ. 푸른 녹음

 

.. 푸른 녹음이 이 나라의 산이며 언덕이며를 온통 범벅칠하기 시작한 6월에도 여전히 나는 먹고살 궁리만을 앞세우느라 ..  <한길역사기행 (1)>(김경미, 한길사,1986.12) 179쪽

 

 “범벅칠하기 시작(始作)한”은 “범벅칠하고 있는”이나 “범벅칠하는”으로 다듬습니다. ‘궁리(窮理)’를 그대로 두는 일이 나쁘지는 않다고 느끼지만, ‘생각’이라고만 해 주어도 넉넉하다고 봅니다. “이 나라의 산이며”는 “이 나라 산이며”로 다듬어 줍니다.

 

 ┌ 녹음(綠陰) : 푸른 잎이 우거진 나무나 수풀. 또는 그 나무의 그늘

 │   - 녹음의 계절 / 녹음이 우거지다 / 녹음이 짙다

 │

 ├ 푸른 녹음이

 │→ 푸른 숲이

 │→ 푸른 물결이

 │→ 푸른 잎사귀가

 └ …

 

 ‘푸를 綠’과 ‘그늘 陰’이라는 한자를 더해서 지은 ‘녹음’입니다. 말 그대로 ‘푸른 그늘’이에요. 그늘빛이란 어디에서나 검지만, 나뭇잎이 싱그럽게 푸를 때면, 이 그늘빛을 ‘푸르다’고 느낄 수 있기에 이런 낱말을 짓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러나 중국사람들한테나, 또는 일본사람들한테나 ‘綠陰’입니다. 우리들 한국사람한테는 ‘푸름’이에요. ‘푸른 그늘’이기도 하며 ‘푸른 잎’이나 ‘푸른 물결’입니다.

 

ㄷ. 결과의 산물

 

..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 나라 영한사전 편찬의 역사를 살펴보면 필연적으로 그러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결과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  <영한사전 비판>(이재호, 궁리,2005) 35쪽

 

 “영한사전 편찬(編纂)의 역사(歷史)”는 “영한사전을 만들어 온 역사”나 “영한사전을 엮어 온 발자취”로 손질합니다. ‘필연적(必然的)으로’와 ‘당연(當然)한’은 겹치기입니다. 또한 ‘그러할 수밖에 없다’도 ‘필연적’과 겹입니다. ‘필연적으로’는 덜어내거나 ‘꼭’으로 고쳐 줍니다. ‘당연한’도 덜어냅니다.

 

 ┌ 결과(結果)

 │  (1) 열매를 맺음

 │  (2) 어떤 원인으로 결말이 생김

 │   - 연구 결과 / 결과가 나오다 / 이 경기의 승리는 노력의 결과이다

 ├ 산물(産物)

 │  (1) 일정한 곳에서 생산되어 나오는 물건

 │   - 이 고장의 대표적 산물은 배이다

 │  (2) 어떤 것에 의하여 생겨나는 사물이나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노력의 산물 / 행운은 우연한 요행의 산물이지만

 │

 ├ 당연한 결과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1)→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2)→ 마땅한 노릇인지도 모른다

 │(2)→ 마땅한 소리인지도 모른다

 └ …

 

 토박이말과 한자말이 겹치기로 쓰이는 일만 있는 줄 알았더니, 쓰임새가 같은 한자말을 토씨 ‘-의’를 사이에 넣고 쓰는 일도 있군요. ‘결과’와 ‘산물’은 어떻게 다를까요. 보기글을 보면 ‘그러할 수밖에 없다’는 말과 ‘필연적으로’와 ‘당연한’이 보이는데, 이 세 가지 말은 또 어떻게 다를까요?

 

 저로서는 도무지 눈뜨고 볼 수 없는 얄궂은 보기글입니다. 통째로 다듬어 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우리 나라에서 영한사전을 엮어 온 발자취를 살펴보면 마땅한 노릇이다”라든지 “이제까지 우리 나라에서 영한사전을 엮은 모습을 살피면 그럴 수밖에 없다”라든지 “우리 나라에서 영한사전을 이렇게 엮어 왔으니 자연스러운 모습일밖에”쯤으로.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겹말#우리말#우리 말#겹치기#중복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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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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