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습니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높은 기대를 안고 출발한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뜻을 무시한 자세와 미숙한 국정운영으로 벌써부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있습니다. '영어몰입교육' 논란과 '강부자 내각' 시비에 이어 주특기로 내세웠던 경제정책도 방향감을 잃고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졸속 협상에 의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로 민심은 폭발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출범 100일 밖에 안 되는 정권이 위기에 처한 이유가 무엇인지, 전문가와 시민기자들의 기사를 통해 진단합니다. [편집자말] |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을 듣는 순간, '벌써'와 '아직'이라는 이중적인 감정이 교차하고 있음을 느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때마다 쓰는 '벌써'라는 일상적인 말에 '아직'이라는 감정이 불쑥 솟아오르는 것은 지나온 100일을 그만큼 숨 가쁘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3개월이 3년 같다'는 유행어도 그래서 나왔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 세력은 교육을 너무 쉽게 본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한국교육의 문제점에 대하여 비판 한 마디 못하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교육 분야는 수많은 말의 홍수 속에서 쓸 만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편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교육은 알면 알수록 이러쿵저러쿵 말하기가 두려워지는 분야이다. 이것이 조변석개한다는 교육 정책이 정답을 못 찾고 개정에 개정을 거듭하는 주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섣부른 교육 정책의 정답 찾기를 인수위 시절부터 해나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이 정답을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아마 국민들도 자신들의 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수위는 정부 조직 개편을 구상할 당시 교육부 폐지론을 들고 나오면 교육 정책에 불만을 갖는 많은 국민들이 박수를 쳐줄 것으로 여긴 것 같다. 그래서 '인재과학부'라는, 공교육을 총괄하는 부서의 이름에서 '가르칠 교'자를 빼내려는 망발에 가까운 발상이 나왔을 것이다. 또 인수위원장이 '어륀지'라는 말을 직접 해, 이명박 정부의 설익은 정책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조어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친절까지 보여주었다.
정부의 '단세포적 무모함'에 혀를 내두르다
정권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고 나서는 국민들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답지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바로 '시장주의'였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계속되어 온 좌회전(?)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교육 핸들을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꺾기 시작한 셈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에 경쟁이 부족하여 많은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오진을 한 것이다. '경쟁'이 부족하여 생긴 교육계 병폐에 '시장주의'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학생들 학력을 정확히 파악한다는 명분으로 일제고사가 부활되었다.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으면 학생들의 실력을 파악할 수 없다'는 논리는 교육을 한참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일 것이다. 학교에서 치르는 정기고사로 학생들 실력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은 현장 교육에 대한 중대한 모독이었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도 그런 연장선에서 나온 조치이다. 이미 평준화로 대표되는 지난 정권의 3불정책에 대해 현 정부가 가차 없이 메스를 댈 것이란 예측은 공공연히 나돌았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평준화를 깨려는 구체적인 정부 차원의 계획안이다.
좋게 말해 정부는 '평준화를 넘어 다양화'로 가고 싶어 한다. 무슨 엄청난 계획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모두가 특목고를 원하니 모든 학교를 특수한 학교로 만들어주겠다는 발상이다. 이념적인 입장을 떠나서라도 그런 안이한 발상으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단세포적인 사고의 무모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사교육이 부족한 농어촌에는 기숙형 공립고등학교를 세워 밤새 학생을 붙잡아 놓고 공부시키고, '좀 산다'하는 지방 도시에는 돈이 많이 드는 자립형사립고 대신에 설립조건을 완화한 자율형 사립고를 세우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외되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위해 '마이스터고'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여준 것이 교육 정책의 전부이다.
이렇게 특성화 고등학교를 곳곳에 세워주면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요자로서 다양한 학교 선택권을 가지고 최대의 교육 효용을 누릴 것이며, 학교와 교사는 공급자로서 최선의 서비스를 다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경쟁하고 이를 통해 공교육의 질이 높아져 사교육이 억제될 것이란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자율화'가 아니라 '학원화'라고 해라자유시장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우익 이념가가 만들어낸 완전경쟁시장적 유토피아가 대한민국 공교육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그들은 지금 교육에서 자신들의 사고로 만들어낸 이상향을 실현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우회전의 정점은 4·15 학교 자율화 조치였을 것이다. 학교 자율화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나 학생의 자율화와는 개념상 거리가 너무 먼 조치들이었다. 0교시가 부활하고 학교 보충수업에 학원이 들어올 길을 터주고, 사설모의고사를 무제한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미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최장 시간의 학습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 달이 멀다하고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각종 모의고사를 보고 있는데, 이것도 부족해서 최소한의 규제마저 자율화라는 명목 하에 다 풀어줘 버린 것이다.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는 4·15 조치를 '학교 학원화 정책'이라고 부르고 있다.
극단의 이념은 사실을 왜곡되게 바라보게 하고, 신념을 현실화시키려고 무리수를 두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담당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가진 이념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단순히 빨간색 선글라스를 껴서 지난 정권의 정책들을 좌파 정책으로 덧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학교 현장의 모습을 일그러진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어린 아이의 심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학교를 바라보았으면 한다. 이것이 경쟁이 부족해서, 학습 시간이 부족해서, 일제 고사가 부족해서 생긴 병폐인지 한번 냉철하게 바라보기 바란다.
지금 현실의 학교는 이런 것들은 전혀 부족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넘쳐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아는 데에는 별다른 교육학 이론이 필요하지 않다. 공부가 힘들어 자살하는 우리 아이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여기에 경쟁을 더 부추기겠다니 얼마나 사고가 비틀어지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비틀어진 마음 바로잡고 교육을 보라
가장 큰 문제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교육을 바라보기에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 관련 인사들이 모두 우편향 일색이라는 것이다. 교육은 그 어떤 분야보다 균형잡힌 시각이 중요한 법인데 청와대에, 장관에 자문위원까지 모두가 우편향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청와대 이주호 교육문화수석은 미국 코넬대학 경제학 박사이다. 다시 말해 미국식 주류 경제학으로 무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김도연 교과부 장관은 대표적인 본고사 부활론자였다.
여기에 정책자문을 받겠다고 모아놓은 이명박 정부 제1기 교육정책자문위원회에는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교육과시민사회 등 오랫동안 활동을 해온 중견 시민사회단체들은 모두 배제하고, 활동 상황이 일천한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등이 빈 자리를 채웠다.
코드인사를 했다고 비난했던 참여정부에서도 보수단체 등이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정책 결정은커녕 최소한의 자문까지도 다른 목소리는 듣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여기에 교과부 장관은 경제교과서와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고 말해,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할 교과서의 이데올로기적 접근마저 시도하는 우를 범하였다. 이런 사례는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우편향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닫은 귀는 자기시정의 기회를 잃게 만든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과 행태를 보고 있자면 이런 경구가 딱 들어맞는다.
우편향 일색인 교육관료, '바꾸자'
얼마 전에 교과부 관료들이 모교에 나랏돈을 갖다 바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세금으로 촌지를 쌈짓돈 나눠주듯이 한 사례는 이 정권의 자기 교정 능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한 쪽의 이야기만 듣다보면 이런 무리수를 아무런 생각 없이 저지르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더 늦기 전에 교육 분야의 우편향을 시정해야 한다. 여러 시야를 가진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교육 정책의 난맥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올 것이다. 시정의 방법은 인사 쇄신이다. 현재 쇠고기 촛불 문화제로 기사가 가려 있어서 그렇지 교과부 관료들의 행태는 바로 장관이 해임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사태였다.
이번 기회에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급격한 우회전이 문제가 되었다고 해서 당장 좌회전을 하라는 뜻은 아니다. 어차피 국정 쇄신책으로 인사 개편을 해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화되어 가고 있다. 이래저래 교육계 주요 인사들이 시장주의적 성향이라면, 교과부 장관 한 명 정도는 중립적 인사를 기용한다고 해도 정권의 정체성에 큰 타격을 주지도 않을 것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설익고 사고가 단편적이며, 이념적으로 편향되어 왔다. 교육은 쇠고기 파동처럼 당장에 부작용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한번 부작용이 시작되면 길고 끈질기며 오래가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분야보다 여러 목소리를 듣는 자세가 필요한 분야가 교육 분야다.
중립적인 인사로 교과부 장관을 교체하기 바란다. 이미 교과서 좌편향 발언에서 세금 촌지까지 교체 사유는 충분이 누적되어 있는 상황이다. 또한 정부의 우편향을 시정하고 여러 목소리를 교육계로 모으기 위해서라도 교과부 장관의 경질은 불가피하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초장에 다시 잡아야 한다. 교육이란 길은 한 번 잘못 들기 시작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정도와 멀어지는 경향성을 보인다. 지금이 시장주의로 경도된 우편향 교육정책을 시정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다. 이명박 정부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