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로 9개월을 고생하시다 지난 2월에 돌아가신 아버님 묘소 일부가 훼손됐다는 어머님 전화를 받고 조부님 기일에 맞춰 전남 순천시 해룡면 고향집을 찾았다.
모내기가 한창인 농번기다. 일손을 도우라고 농번기에 맞춰 봄방학을 해서 모심는 논에 따라다니며 못줄을 잡아주는 등 일손을 돕고 못밥을 얻어 먹던 기억과 함께 농촌 인구의 노령화와 기계화 바람으로 이양기로 모내기를 하고 있어 아쉬움이 교차한다.
조부님 제사음식을 장만하는데 어머님이 "아이! 둘째야! 식당방 가스레인지 공기통에 바람이 안나가는 갑다. 니 아부지 사고 나기 전에 새가 공기 통 안에 집을 지은 것 같담시로 새죽으니 환기통 쓰지 마라! 하더니 새가 진짜로 집을 지었는가?" 하신다.
어머님 말씀을 듣고 가스레인지에서 악취를 배출하는 공기통의 연통을 꺼내보니 새 집이 있지를 않은가? 새가 떠난 지 오래된 듯하지만 분명 새끼를 쳐서 부화해 나간 흔적이 확실하다.
추정컨대 이 새가 둥지를 틀 무렵인 작년 5월 12일에 아버님 교통사고가 났고, 금년 2월까지 두 분 모두가 집을 비워두고 병원에 계셨으니 가스레인지를 켤 일이 없었으므로 배기통 안에서 뜨거운 바람이나 고약한 냄새가 전혀 배출되지 않았다.
이 기막힌 찬스에 새끼를 낳아 길러 날아갔을 새 가족을 생각하니 딱새 부부의 입주 시기와 새 집 터는 신의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이 새들을 살리기 위해 아버님 교통사고가 났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새가 드나든다고 배기통까지 쓰지 못하게 하시는 아버님 였는데? 교통사고가 나게 했을 리가 있겠는가? 새의 모습을 물었더니 "붉은색 나는 참새만한 이쁜 새 있제?" 하신다.
다음날 아침 이양기 소리에 일찍 잠을 깨어 논에 나가 모내기 구경을 하는 데 딱새 두 마리가 벌레를 물고 전깃줄에 앉아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심상찮아 보인다 싶어 담장 뒤로 몸을 숨겼다.
금세 모내기가 막 끝난 논 귀퉁이에 서 있는 전주의 농사용전기계량기에서 삐져나온 전깃줄에 앉아 잠시 주위를 살펴보더니, 함 밑에 난 구멍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벌레를 놓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살며시 접근해 함을 열어보니 함 안에 둥지를 틀고 새끼 다섯 마리를 까서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집과의 직선 거리는 30m 정도 밖에 안 되니 혹시 우리 집에 살던 그 새인가?
어머님께 새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작년 우리집 환기통에 드나든 새하고 같이 생겼다"고 하신다. 우리집 배기통에 살던 딱새가 이번에는 이곳으로 이사하여 집을 지었는가? 고압전기가 들어와 농사용 펌프를 사용할 때 전기 배선도 꽂고, 스위치, 휴즈와 계량기가 있어 많은 전자파가 발생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여기서 새끼를 까서 기르고 있으니 이 새끼 새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을지. 장애는 없는지. 어미가 되어 번식은 가능할는지. 걱정스러워진다.
올 겨울에 내려올 때는 새 집을 만들어와 주변에 달아줘야겠다며 어린 새 5마리가 아무 탈없이 자라서 푸른 창공을 맘껏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새의 이름이 딱새인지 정확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