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의 요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감자란(감자난초)은 전국 산지 숲 속 그늘에 살고 있습니다. 귀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만날 수 있는 꽃은 아닙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들꽃에 푹 빠져 살면서도 실제로 눈맞춤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뿌리를 본 적은 없지만 뿌리부분이 감자를 닮아 '감자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작은 뿌리를 멧돼지가 먹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멧돼지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파헤친 곳에 덩그러니 줄기만 쓰러져 있는 것들도 만났습니다. 아마도 멧돼지의 먹잇감 근처에 있다가 봉변을 당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그것이 생계의 수단이 되고, 생계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나 대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면 금상첨화겠지요.
좋아하는 일과 생계를 위한 일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본래는 신나야할 노동이 힘겨운 일로 변질되었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상황들이 복잡하게 전개되면서 한달 가까이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취임 100일을 맞은 정부의 지지도가 심하게는 10%대까지 추락한 현실에서 너무도 오랜만에 꽃산행다운 꽃산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큰 죄를 진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이런 시국에 꽃산행을 한 것도, 꽃에 대한 글을 쓰는 것도 손가락질을 받을 일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런 기분, 몇 개월간 벼르고 벼르던 꽃산행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껴야 하고, 만난 들꽃 이야기를 쓰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이런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 휴가철에 비닐하우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토마토를 거두다 밖에 나와 휴식을 취하며 도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도로에는 피서가는 차량들이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나는 뼈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저렇게 놀러다니는 것들이 많냐?'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저 행렬 속에는 일년 내내 열심히 일하고 오늘 막 휴가를 맞은 사람도 있겠지' 생각하니 마음이 누그러듭니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을 하니 화가났던 것이고, 너 중심적인 생각을 하니 아무일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나름대로 어지러운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대로 꽃산행을 떠난 것에 대해 이렇게 자위를 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생각끝에 '지금 여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기로 했습니다. '지금 여기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면 결국 다른 곳에서도 내일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만나는 풀꽃 하나하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걷습니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니 작은 감사들이 모이고 모여 큰 행복을 만들어 줍니다. 무슨 마법에 걸린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과 동떨어진 별세계나 유토피아를 살아가기 때문에 기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세상의 근심과 걱정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것도 삶의 지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숲 속의 요정'이 마법을 부린 듯했습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이 되자 숲 속 여기저기서 감자란이 인사를 합니다. 여기저기서 '안녕!'하고 인사를 합니다. 마음이 불편했을 때에는 잘 보이지 않더니만 마음을 편안하게 하니 여기저기 보이는 것입니다.
저에겐 이것이 숲의 신비, 들꽃의 신비입니다. 이런 행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그런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 조차도 '이런 판국에 꽃타령이야!'하지 않을만한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시 속세, 여전히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곳에 세상 근심과 걱정을 다 내려놓고 오지 못했나 봅니다. 아니면, 세상이 근심걱정을 강요하는가 봅니다.
간혹 다 내려놓고 훌쩍 세상과 잠시 이별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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