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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바지락 채취를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대충 허기진 배를 채우시고 모자와 수건을 둘러쓰고 호미를 챙겨서 이모와 고구마 밭을 일구러 가신다고 분주하게 움직이신다.

 

"어머니, 힘드신데 좀 쉬세요."

"야, 밭에 풀 매야지 고구마 심지, 쉴 시간이 어디 있어?”

"그래도 힘드신데 쉬셔야지요."

“지금 이렇게 안 해 놓으면 고구마를 어떻게 심어?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이야!”

 

그렇게 쉬시라고 만류를 해도 억척스럽게 밭을 일구시고 정성을 쏟으시더니 어느 날인가

“야, 오늘 고구마 밭에 고구마 순 500개 심었다”라고 하신다. 그러고는 "가을에 고구마 수확해서 네 동생네하고, 네 처갓집에 좀 보내고 나머지는 겨우내 집에서 우리 아가들하고 먹어야지”라고 하시며 뿌듯해 하신다.

 


 

 

고구마 밭 이른 봄 부터 밭을 일궈가며  열심히 땀흘린 보람
고구마 밭이른 봄 부터 밭을 일궈가며 열심히 땀흘린 보람 ⓒ 김형만

고구마뿐만 아니라 각종 채소들을 틈틈이 시간을 내서 심어 우리 가족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시는 재미로 텃밭을 일구시는 것 같다.
 
우리 어머니와 같이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섬마을 주민은 특성상 논, 밭 농사짓는 일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지만 저마다 크고 작은 텃밭을 가지고 있다. 바다에 다녀와서 틈틈이 일구는 밭이다. 물론 포도를 재배하거나 벼농사를 짓는 가구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텃밭을 일구어 각종 채소를 심어 외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기도 하고 동네 주민들끼리 나누어 먹기도 한다.
 
요즘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게 텃밭을 일구고 난 후 채소 종자나 씨앗을 심었는데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마르자 집에서부터 물을 가지고 가서 밭에다 뿌렸다. 그런데 요즘 비가 자주 오니 수고를 하나 덜어드리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
 
삼겹살을 구어 먹자는 어머니 제안에 삼겹살을 사러 가려고 준비하는데 “야~ 상추는 사오지 마라! 지금 밭에 상추가 넘친다! ”라고 하신다. 삼겹살을 사서 집에 와보니 어느새 밭에 갔다 오셨는지 뒤뜰에서 뜯어온 상추를 다듬고 계셨다. 종류도 여러 가지다. 어머니가 집사람에게 말하신다.
 
“야! 딸내미(우리 어머님이 집 사람을 부를 때 쓰시는 애칭). 상추 봐라. 싱싱하지? 밭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저거 시들기 전에 빨리 먹어야 하는데…. 도시 사람들은 이런 맛 모를 거야! 왜 이런 거 돈 주고 사먹는지….”
 
어머니는 자신이 거두어 놓은 상추를 보시면서 뿌듯해 하셨다. 그날 삼겹살을 다 먹을 때 까지 우리는 어머니의 상추 자랑을 들어야 했다.
 
“이 상추 싱싱하지? 많이 먹어. 빛깔 좀 봐. 상추에 윤기가 흐르네”하시며 즐거워하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선하다.
 
상추 싱싱한 상추 덕에 삼겹살이 더 맛있다.
상추싱싱한 상추 덕에 삼겹살이 더 맛있다. ⓒ 김형만

 
어머니뿐만 아니라 섬마을 어머니들이 대부분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바다에서의 고된 노동이 끝난 후 쉬시지도 않고 밭으로 나가 정성스럽게 텃밭을 가꾸는 마음속에는 가족을 향한 사랑이 배어있는 것 같다.
 
비가 그친 오후에 어머님들의 정성이 담긴 텃밭에 나가보았다. 각종 채소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 한창 꽃을 피우기도 하고, 열매를 내기도 했다.
 
그 모습에서 예전에 느껴보지 못한 자연의 신비를 깨닫는다. 결실을 맺어 가는 모습에 와~ 하는 “탄성”이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흘러나온다.
 
고추 결실을 맺어 가는 고추
고추결실을 맺어 가는 고추 ⓒ 김형만
 
조금의 공간만 있으면 무엇이든 심는다! 집과 집사이 좁은 공간 터에 심어 놓은 고춧대에서 고추가 자라고 있다. 사람 다니는 길만 빼놓고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고추가 먹고 싶을 때 나가서 따오기만 하면 된다.
따로 심어놓은 임자는 있지만 " 나, 고추 몇 개만 따간다 " 소리 한 번 지르면" " 야 니네거 따먹어 "하고 익살스러운 답변이 날라오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따온다. 그게 재미고 맛이다.
 
오이 음~향긋한 오이향이 느껴지네요
오이음~향긋한 오이향이 느껴지네요 ⓒ 김형만
 

오이 넝쿨에서는 오이꽃과 함께 오이가 자라나고 있다. 신선한 오이 향이 나는 것 같다.

 

 

콩 무슨콩일까?
무슨콩일까? ⓒ 김형만
 
 

콩 꽃 밑으로 콩이 자라나고 있다. 강낭콩은 벌써 다 자라서 콩밥이 되어 밥상 위에 올라온다. 그 맛이 단백하여 밥맛을 좋게 한다.


 

옥수수 옥수수야 빨리커라
옥수수옥수수야 빨리커라 ⓒ 김형만

 

수입산 옥수수가 시중에 많이 유통되고 있다. 아무리 깨끗하고 위생적이라고 할지라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 입장에서는 각종 농약을 안심할 수 없기에 아이들에게 간식거리로 먹인다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러나 텃밭에서 키우는 옥수수는 약 한번 뿌리지 않고도 잘 자라주어 아이들에게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어 안심하고 먹여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작년에 흰 수염이 달린 옥수수를 가슴 가득 안고 들어오시면서 “야~ 이것 봐라! 빨리 옥수수 쪄먹어라!” 하시면서 좋아 하시던 어머님 모습이 생각이 난다.
 

토마토 우리 꼬맹이들 간식거리
토마토우리 꼬맹이들 간식거리 ⓒ 김형만


전년도에 뒤뜰에 있는 화분에서 키워 많이 따먹던 기억이 난다. 우리집 꼬맹이들은 유치원에 다녀와서 뒤뜰에 나가 “와, 빨갛게 익었네. 할머니 이거 따먹어도 되요?”하고 묻고는 따먹곤 했다. 아이들 때문에 집에서 키운 토마토는 손도 못 대봤다. 그래도 꼬맹이들이 서로 따먹으며 좋아라 웃던 귀여운 모습이 작년의 일이지만 기억이 난다.
 
올해는 토마토를 심지 못 해 작년과 같은 즐거움은 찾아 볼 수 없지만 친척집이나 지인들의 집에 꼬맹이들을 데리고 가서 따 먹여야 할 것 같다. 텃밭에서 결실을 맺어 가는 땀의 열매들을 보시면서 어머님은 행복하신 것 같다. 고구마 순 자랑은 여전 하시고, 벌써 마음은 고구마를 수확해서 종이 박스 가득히 싸 보낼 동생 집에 가계신 것 같다.
 
어머님은 당신의 손으로 재배를 해서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시고, 먹게 해주시는 기쁨으로 손을 놓지 않으시는 것 같다.
 
집에서 쉬시라 하면 “ 난 안 움직이면 병나 ” 하시며 굳이 밭으로 나가신다. 어머님은 앞으로도 하실 일이 많다. 고추가 다 자라면 따서 말려서 고춧가루를 만들어 동생 집에, 처갓집에 조금씩 보내고, 우리 집 1년 사용할 양을 남기셔야 한다. 또 김장 때 사용할 배추와 무를 심고 가꾸셔야 한다. 그렇다고 김장 때 사용할 배추와 무를 안 사는 것은 아니다. 돈을 주고 사는 양이 준다는 의미다.
 
이렇게 가족의 행복을 키워주는 6월의 텃밭에는 어머니의 땀과 사랑과 정성이 익어가고 있다. 당신이 당신의 손으로 직접 재배를 해서 가족의 식탁에 올려 주고 싶은 마음이 담겨져 있다 보니 행복한 웃음이 넘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우리 어머니만이 아닐 것이다. 텃밭을 일구어 채소를 가꾸는 모든 어머님들의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가족을 챙기시느라 항상 바쁘시고, 가족을 끔찍이도 생각하시는 어머님이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어머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는 마음으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bs U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지킴이#어머니#섬마을#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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