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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크리스탈워터스표 신토불이 채소, 우유, 계란, 피칸, 꿀 등등 맥스의 정원에서 난 먹을 것에 둘러싸여 있는 나.
호주 크리스탈워터스표 신토불이채소, 우유, 계란, 피칸, 꿀 등등 맥스의 정원에서 난 먹을 것에 둘러싸여 있는 나. ⓒ 정성천

실험명(가제) : 마을에서 나는 음식만을 먹기 실험 (소금과 식용유만은 예외)
피실험자 : 신혜정
실험의 원 목적 : 재미를 도모
실험 기간 : 일주일
실험 시작 일자 : 2008.06.17.(화)

실험일지

실험 첫날 2008.06.17  
실험 첫날 2008.06.17  ⓒ 신혜정

아침: 다채+양송이버섯+계란 볶음 
점심: 오렌지+치즈+피칸+야채 샐러드
저녁: 브로콜리+콜리플라워+시금치+쪽파+우유 스프

모든 야채류는 우리가 물주고 거름 주고 가꾼 것들로, 맥스의 정원에서 나왔다. 피칸은 걸어가면 10분 거리에 있는 맥스의 피칸나무에서 수확한 것들이고, 계란은 이제는 서로 잘 노는 9마리 닭들로부터 온다.

치즈는 인터넷에서 요리법 보고 내가 만들었다. #비에게서 짠 우유를 끓이다가 베리굿맨네서 난 레몬을 짜서 즙을 넣으면 덩어리가 동동 뜨는데 그게 치즈란다. 씹다보면 가끔씩 신기하게도 치즈 맛이 난다.

실험 둘째날 2008.06.18.  
실험 둘째날 2008.06.18.  ⓒ 신혜정

아침: 삶은 다채+브로콜리에 꿀 한 숟갈
점심: 브라질리언 체리+오렌지+피칸+꿀+야채 샐러드
저녁: 다채+버섯+우유+계란찜

꿀은 우리가 6월에 맥스의 벌들에게서 직접 가져와 채집한 꿀이다. 브라질리언 체리라고 시고도 단 과일은 겨울인데도 한창 철이다(호주는 지금 겨울이지만 낮에는 어김없이 햇살이 뜨으겁다). 우리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나무에 조랑조랑 매달려 기다리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열매가 여문다.

실험 셋째날 2008.06.19.  
실험 셋째날 2008.06.19.  ⓒ 신혜정

아침: 쪽파+다채+계란국
점심: 브라질리언체리시럽+치즈+피칸+야채 샐러드
저녁: 삶은콩+피칸+꿀+야채 샐러드 / 콜리플라워+시금치+버섯+삶은콩 국

뭔가 다른 걸 실험은 해보고 싶은데 뭘 할지 알 수 없어서 될대로 되봐라 하는 심정으로 브라질리언체리들을 모아 씨 빼고 그저 끓였다. 다 끓인 후 꿀을 두 숟갈 정도 넣으니 시럽이 됐다. 맛이 좋다. 신기하다. 콩은 맥스의 정원에서 자라는 것 껍질 벗겨 삶으니 진짜 콩이다. 콩밥에 있을 법한 질감과 맛이다.  

실험 넷째날 2008.06.20.  
실험 넷째날 2008.06.20.  ⓒ 신혜정

아침: 삶은 브로콜리+콜리플라워+다채에 피칸과 꿀 추가
점심: 치즈+꿀+야채 샐러드 / 찐 청경채
저녁: 브라질리언체리시럽+야채 샐러드 / 볶은 청경채+쪽파 위에 계란을 얹어 오븐에 구움

음식 종류가 제한되어 있으니 다양한 요리법을 시도하게 된다. 오늘 오후에 요리하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선가 감자 냄새가 났다. 감자가 먹고 싶지만 철이 아니다. 

실험 다섯째날 2008.06.21  
실험 다섯째날 2008.06.21  ⓒ 신혜정

아침: 버섯+콜리플라워+쪽파 국
점심: 쇠고기+브로콜리+청경채 볶음
저녁: 구운 버섯 / 상추 / 점심 남은 거

어제 두 끼를 연속으로 샐러드를 먹었더니 샐러드가 이제 질린다. 냉동실에 있던 쇠고기를 쓰기로 했다. 맥스의 소에게서 났던 고기다.

실험 여섯째날 2008.06.22.  
실험 여섯째날 2008.06.22.  ⓒ 신혜정

아침: 피칸+오렌지+레몬차
점심: 쇠고기+버섯+쪽파+계란 떡갈비 / 상추
저녁: 다함께 만찬
오렌지+치즈+피칸 샐러드 / 브로콜리+콜리플라워+쪽파+콩 국 / 버섯+다채+우유 계란찜

오렌지가 심하게 맛있다. 모양은 전혀 호감가지 않게 생긴 것이 맛은 왜 이렇게 좋아. 슈퍼에서 마주쳤다면 절대 구입하지는 않았을 모양인데 진짜 맛있다. 맥스의 오렌지 나무는 귤과 함께 우리 집에서 30초 거리에 있다.

맥스랑 트루디가 신 과일을 좋아해서인지 때가 겨울이라서 그런지 내가 먹을 수 있는 과일이 거의 이 둘 뿐이라 실험 기간 동안 간식으로 아주 질리게 귤과 오렌지를 먹어대고 있다.

오늘은 같이 사는 알리샤·성천이·브렌단을 위해 아예 큰 식사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시도해본 음식 중 베스트를 엄선해 마련한 저녁식사. 간식으로는 레몬차와 피칸에 꿀까지 준비했다. 아, 나 몰랐는데 아무래도 요리 잘하는 것 같아.

실험 마지막날 2008.06.23.  
실험 마지막날 2008.06.23.  ⓒ 신혜정

아침: 버섯+콩+브로콜리+콜리플라워 볶음
점심: 브로콜리+쪽파+어제 남은 떡갈비  부신 거 볶음
저녁: 실험 종료. 월요일 저녁은 트루디가 차리는, 다함께 같이 하는 식사라 포기할 수 없었음.

와. 끝났다. 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종합 소감

크리스탈워터스표 신토불이 실험. '그냥 왠지 한 번 해보고 싶다!'라는 큰 포부를 안고 시작한건데 할 만하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것 치고는 장점이 무지 많다. 그 중에 세 가지 큰 장점 뽑아 소개한다.

구멍 뽕뽕 요것이 다채. 슈퍼에서 봤다면 사지 않았겠지. 하지만 때론 보기 안 좋은 떡이 먹기 좋을 수도 있다. 채소나 과일 모양을 그럴듯하게 하게 하기 위해 농약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구멍 뽕뽕요것이 다채. 슈퍼에서 봤다면 사지 않았겠지. 하지만 때론 보기 안 좋은 떡이 먹기 좋을 수도 있다. 채소나 과일 모양을 그럴듯하게 하게 하기 위해 농약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 정성천


2. 멀리에서부터 재료 배달해올 필요가 없다

내가 실험 기간 동안 먹은 음식 재료는 주로 내가 집에서부터 1-2분 걸어가면 구해올 수 있었고, 길어봤자 20분 걸어가면 닿을 수 있었다(소금과 식용유만 빼고. 이 둘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말은 몇백리 몇천리 떨어진 외국에서부터 재료를 배달해올 필요가 없다는 얘기고, 이는 고로 그 기나긴 배달에 드는 연료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또한 그 배달 과정에 음식이 상하지 않게 온갖 방부제며 농약을 바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기사를 읽어 할 말이 많다. 내가 한국에서 식사할 때를 생각해보자. 중국산 양파, 당근, 마늘, 생강 등은 대부분 중국에서 910㎞를 이동해온 것이다. 호주산 쇠고기는 여기에서 8330㎞을 날아가야 하고, 미국산 오렌지는 9600㎞를 이동해온다. 오렌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려면 생산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건 물론 우리나라의 상황만이 아니다.

영국은 외국으로부터 우유를 대량 수입하고 있는 동시에 거의 비슷한 양의 우유를 수출하고 있단다. 미국은 덴마크 설탕쿠키를 수입하고 덴마크는 미국 설탕쿠키를 수입한다. 그런가하면 하와이는 해마다 약 4만2000마리의 소를 배에 태워 3500㎞ 떨어진 캘리포니아로 보낸다. 소는 캘리포니아에서 포장되어 다시 하와이로 돌아온다. 만일 미국 캘리포니아의 부두가 파업, 기상 악화 등으로 마비되면 당장 하와이의 쇠고기 판매점에는 비상이 걸린다.

지금 이 순간도 음식은 전지구적인 대이동을 벌이고 있다. 이것의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화석연료의 낭비다. 캘리포니아에서 재배돼 영국으로 보내지는 상추는 에너지로 환산하면 자기보다 127배나 많은 화석연료를 소모시킨단다. 

3. 쓸데없는 식탐이 줄어든다

식욕이 한창일 때는 흙도 주워먹었던 나  
식욕이 한창일 때는 흙도 주워먹었던 나  ⓒ Alicia Marvin

먹을 수 있는 음식 종류가 한정 없었을 때는 요거도 먹고 싶고 조거도 먹고 싶고 점심 먹고 나면 간식 먹고 싶고 했는데 종류가 확 제한되니 불필요한 식탐들이 사라진다. 필요한 만큼 수확해서 요리하고 먹는다. 이것이 진정 다이어트의 길이었던가.



몇년 전에 캐나다에서 캐나다판 신토불이 '100마일 다이어트'라는 바람이 시작됐단다. 100마일(161㎞) 내에서 나는 음식만을 먹는 운동. 그 아이디어를 생각했던 두 사람은 1년 동안 그 실험을 해서 책도 쓰고 돈도 벌고 그 운동은 뉴욕까지 퍼져나갔다는 뉴스를 나는 음식 실험을 시작하고 나서야 접했다. 나는 안타까움에 무릎을 쳤다. 이거 기간만 좀 오래 잡았으면 나도 책 썼겠구만!

나는 크리스탈워터스 반경 2~3㎞ 내에서 나는 음식만을 먹었다. 거의 대부분은 반경 10m 내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음식자급'과 '손자손녀들 오면 식사 제공'을 중요시 여기는 맥스가 풍요롭게 작물을 재배하고 가꾼 덕이다. 그래서 실험이라지만 사려면 보통 작물보다 비싼 유기농 작물로 배를 채울 수 있었다.

호주에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서울 집에 가서도 해보고 싶다. 집 마당에 비록 얇디얇은 텃밭이더라도 몇 개 작물을 좀 심고 물주고 돌보고. 가끔 퇴비는 음식물쓰레기 삭힌 거 주고. 장을 보러 나선다면 음식은 되도록이면 가까운 곳에서 난 것, 되도록이면 한국에서 난 것을 사고.

몇천원 비싸다면 다시 생각해봐야겠지만 몇백원 비싸다면 눈 딱 감고 사야지. 지역 먹거리를 사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니 일석 몇조더냐. 어쨌든 결론, 뭣도 모르고 시작한 실험이지만 참으로 장하게 성공. 게다가 할 만 하고, 장점들을 쭉 보니 진짜 할 만 했구만!

<호외>

우리방 천장에 뱀이 왔어요  
우리방 천장에 뱀이 왔어요  ⓒ Alicia Marvin

똥싸고 갔어요  
똥싸고 갔어요  ⓒ 정성천

알리샤와 나는 얘가 똥을 어디다 또 쌀지 몰라 공포에 떨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박스기사 <세가지 큰 장점> 중 2번 ' 멀리에서부터 재료 배달해올 필요가 없다'의 대부분의 정보는 브라이언 핼웨일의 <로컬푸드> 책에 대한 프레시안 2006년 10월 23일자 기사 "우리는 '카길이 지배하는 세계'를 거부한다"를 일부 인용했습니다.



#크리스탈워터스#생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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