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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딜리셔스 샌드위치>
 <딜리셔스 샌드위치>
ⓒ 웅진윙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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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처럼 먹어보고 싶었어."

2년 전 뉴욕으로 날아갔던 여자 후배는 '왜 뉴욕에 가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영화로도 제작된 미국 인기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주인공 캐리에 푹 빠져 지내던 후배였다. 그는 뉴욕에서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예금잔고를 탈탈 털어 주저 없이 떠났다. 여행일정에는 드라마 속 거리를 돌아보는 투어부터 주인공들이 먹던 브런치 시식까지. 드라마의, 드라마에 의한, 드라마를 위한 여행이었다.

바야흐로 문화가 비즈니스를 지배하는 시대가 왔다. 젊은이들은 드라마를 쫓아 뉴욕으로 날아가고, 할리우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열광한다. MP3 시장의 후발주자로 출발한 애플이 라이프스타일을 변화시키는 문화적 상품을 만들었고 시애틀 항구의 작은 커피집은  커피에 문화를 보태 세계적인 '다방', 스타벅스가 되었다.

문화를 뺀 여행은 상상할 수 없고 문화가 없는 상품은 돈이 되지 않는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우선 <딜리셔스 샌드위치>(유병률 지음, 웅진윙스 펴냄)를 한 입 깨물어 보자.

<서른살 경제학>으로 어려운 경제학 서적을 쉽게 풀어냈던 유병률 한국일보 경제부 기자가 이번에는 컬쳐비즈를 강조한 <딜리셔스 샌드위치>를 썼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껴 점점 굳어져가는 '샌드위치 한국'이 누구나 탐내는 맛있는 샌드위치가 되려면 문화적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국가와 기업, 국민 모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저자는 뉴욕 연수 기간 동안 느낀 문화산업의 중요성과 위력을 <딜리셔스 샌드위치>로 요리했다.

문화는 살아가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

컬쳐비즈의 전형은 뉴욕에서 찾을 수 있다. 뉴욕은 전략적으로 문화를 키워 세계적인 관심과 부를 불러 들였기 때문이다. 뉴욕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추상화가 잭슨 폴록의 등장으로 기업들의 후원과 부유층의 기부가 시작되었고, 정부도 외국 전시를 지원하는 전담기구를 만들었다.

돈줄만 쥐고 있던 금융도시 뉴욕이 예술이 꽃피는 문화도시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맨해튼 남쪽 소호에서 지금의 첼시까지 이어지는 갤러리가 자리 잡게 되고 전 세계 예술가와 관광객들이 뉴욕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저자는 "추상표현주의로 시작된 뉴욕의 문화는 거대한 돈을 불러들였고, 이 돈은 다시 수많은 예술가와 스타를 불러들였다"며 "예술의 출발은 돈이지만 예술은 미다스의 손처럼 경제를 만든다"고 강조했다.

뉴욕의 공연문화도 철저히 비즈니스와 연결되어 있다. 뉴욕주립극장은 요일에 따라, 좌석에 따라 달라지는 가격이 24가지다.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 모으겠다는 계산이다. 단순히 VIP석, R석, S석, A석, B석으로 구분된 우리나라 공연장과는 딴판이다.

기업도 제품의 기능이나 서비스의 질보다는 상품에 담겨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나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 소비자들이 기능적인 제품보다 문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 예가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튠이다.

"사람들이 제품의 기능이나 품질 등 제품 자체에 내재된 스톡을 비교해서 애플을 고른 게 아닙니다. 바로 애플만이 제공할 수 있는 플로, 음악을 생활화 활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한 것입니다."

문화기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등장하는 애플, 구글, 할리데이비슨.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예술적인 광고나 트렌드를 담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애플이나 구글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포커스가 빗나간 탓이다.

저자는 이미지나 제품을 문화로 포장하기 위해 과시용 마케팅보다 직원들의 창의력을 자극하는 '문화적인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직원들이 유연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것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

"문화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에서 문화적인 마인드를 가진 직원들이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제품과 서비스가 결국 회사를 문화적인 기업으로 만들어간다는 얘기지요. 기업 이미지나 제품을 문화적으로 포장하는 노력과 탁월한 문화마케팅이 비결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국가와 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도 문화적인 마인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앞 세대와 뒷 세대에 끼인 20대, 샌드위치 세대의 숨통이 트일 공간도 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키워드는 문화경쟁력이다.

그렇다면 일주일의 한번씩 꼬박꼬박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찾으면 개인의 문화경쟁력이 높아질까. 그렇지 않다. 문화를 배운다는 것은 그림이나 공연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꼭 뉴욕으로 날아가야 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문화는 살아가고,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문화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질적인 것’ ‘자신이 경험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에 대해 포용력과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미술관이나 공연장이 문화를 담보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언제나 받아 들일 수 있는 유연함이 문화적 마인드의 고갱이다. 문화적 가치가 중요하게 된 것도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회가 건강하고 발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인 상품을 만들고 문화적인 도시를 만들려면 먼저 문화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뉴욕의 눈부신 성장도 이질적인 개인들이 모여 만든 것이지 않나. 다양한 나라, 다양한 인종의 문화가 결합해 창조한 문화가 숨 쉬는 곳이 바로 뉴욕이다.

캐리가 되기 위해 뉴욕까지 날아가는 시대.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이 딱딱하게 굳은 샌드위치가 될지 신선하고 맛있는 샌드위치가 될지는 앞으로 '문화적 마인드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달려있다.

덧붙이는 글 | 저의 블로그(blog.ohmynews.com/gkfnzl)에도 실렸습니다.



딜리셔스 샌드위치 -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기자가 뉴욕에서 보내온 컬처비즈에세이

유병률 지음, 웅진윙스(2008)


#딜리셔스 샌드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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