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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삶은...여행>
 책 <삶은...여행>
ⓒ 북노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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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이라고 하면 강변가요제에서 부른 '담다디'가 떠오른다. 그 후 반짝 활동하다가 세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녀는 일본에서 앨범을 내 꽤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선 댄스 가요 열풍에 밀려 고전하지만 꾸준히 앨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현재 마니아층도 확보한 상태다.

이상은을 '여행가'라고 소개하면 가수로만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낯설 법도 하다. 자신을 '홍대에 사는 사람'으로 칭하면서 뉴욕과 런던에서 장기간 미술을 공부하고 여행을 즐기며 책까지 내는 그녀의 모습은 가수라기보다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 정도로 보인다.

책 <삶은…여행>은 미술과 음악에 관심이 많은 그녀가 베를린을 방문하고 쓴 여행기다. 갈수록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뉴욕에 질린 젊은 예술가들과 화상들이 베를린으로 둥지를 옮기고 있다는 소식에 궁금해하며 이곳을 찾는 이상은.

그녀는 예술 하는 친구들을 반하게 만든 이 도시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루프트한자에 몸을 싣는다.

어디 가든 숲과 호수…'질투나네'

그렇게 기대하며 베를린에 도착했건만 처음 대하는 베를린 사람들은 촌스럽기 그지없다. 우중충한 날씨 탓에 어떤 나라보다 화려한 꽃과 커피, 맥주를 좋아하게 된 독일 사람들. 그들의 표정과 패션은 날씨만큼이나 무뚝뚝하다. 실망감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잘 살펴보면 뭔가 있겠지 하는 기대로 첫날을 보내는 이상은과 그녀의 친구.

한 블록당 서점 수가 세계 2위라는 이 나라는 어딜 보아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고 호텔 주변만 돌아다녀도 서점이 넘쳐난다. 유흥가와 술집이 넘쳐나는 우리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에 저자는 괜한 질투심이 일어 이 도시를 더 잘 알아보고 싶어진다. 영어로 된 안내서 한 권을 사들고 베를린 탐방에 나서는 두 여행자. 그녀들이 알아본 베를린은 참 매력적인 도시였다.

"지난 40년 동안 둘로 나뉜 탓일까. 베를린은 동쪽과 서쪽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그러나 '베를린의 공기'라는 노래가 있듯이 공기가 맑고, 어디를 가든지 숲과 호수를 볼 수 있는 등 친환경적인 도시의 명성은 어디나 같다. 특히 아파트 단지마다 물을 깨끗이 정화시켜 다시 사용하는 시설을 설치하고, 생활 하수는 아파트 근처에 조성된 연못 등으로 유입시키는 등 베를린은 물과 에너지 자원을 절약하고 재순환하는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이 도시에 대해 질투가 날 만도 하다. 우리와 다른 좋은 점을 많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화려함과 요란함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베를린과 같이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하면서도 조용한 움직임을 내포한 도시에 싫증을 낼 수도 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 고요함 속에 깊은 예술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기에 베를린은 독특하다.

가난한 예술가여! 베를린으로 오라

저자는 오늘날 베를린에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저렴한 물가와 예술 기질, 소박함과 거친 느낌 때문이라고 본다. 유명 음악가와 화가, 시인들을 대거 배출한 과거의 영화처럼 현재의 베를린도 예술 기질을 내포한 채 꿈틀거리고 있다. 이런 매력에 반해 가난한 예술인들이 본능적으로 이곳을 찾아 머무르는 것이다.

가난한 예술가를 위한 정부 지원도 활발하다. 예술가들의 창작 공간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시 정책 덕분에 예술가들은 쉽게 작업실을 얻고 전시장을 구한다. 음악가들을 위한 지원도 아낌없다.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에 위치한 음악학교들은 학비가 공짜이며 학생들을 위한 혜택도 다양하다.

이런 환경이라면 당연히 예술가들이 모일 만하지 않은가! 과학과 체육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 우리나라가 과학과 체육 강국으로 발전하듯이 말이다. 예술하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참 살기 힘든 곳이 아닌가 싶다. 비싼 임대료와 재료비, 교습비 등은 순수 예술을 하는 이들의 목을 조인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 갔으니 맥주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저자는 베를린에서 맛본 독일 맥주를 다음과 같이 비교한다.

"한국에서 맛본 맥주는 독일의 오리지널과 비교한다면 미네랄워터에 가까운 듯하다. 우리 맥주가 뒷맛이 좀 더 쓰고, 농도가 흐리다고 할까? 특히 이곳에서 마신 중간 정도의 진한 맛을 전해주는 맥주는 우리의 동동주처럼 걸쭉한 구수함을 자랑했다. 한마디로 맛있다는 얘기."

흐릿하고 어두침침한 공기마저 '낭만'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일상에 얽매인 범인들에게 꿈꾸는 듯한 여행기는 베를린에 대한 환상을 갖게 한다. 흐릿하고 어두침침한 베를린의 공기마저 낭만적으로 느껴지니 말이다. 독일이 많은 예술가를 배출할 수 있던 이유도 이런 흐릿한 날씨가 주는 낭만성 덕분이 아닐까 싶다.

베를린의 유명한 가방 전문 브랜드인 '브리'(bree)를 방문하고는 저자는 이들의 자부심이 어디서 나왔는지 실감한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에 맞서 독일 디자인의 생명력을 고민하는 이 제품의 안내 책자에서는 그들의 열정과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단지 외국 유명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는 우리나라와는 비교되는 부분이 아닐 수없다.

베를린의 삶이 어떠냐는 저자의 질문에 이곳에 오래 거주한 후배는 베를린 사람들이 잘난 척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한다. 잘 사는 독일 다른 지역과는 달리 물가도 싸서 30만 원이면 원룸 하나 구하고 2만 원이면 일주일 생활비가 충족된다는 예술가의 도시.

우리나라보다 더 예술의 풍요로움 속에서 저렴하게 공부하고 싶다면 베를린도 좋을 듯하다. 많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는 한 그들의 넘치는 끼와 재주가 이 도시를 더 풍성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여행 - 이상은 in Berlin

이상은 지음, 북노마드(2008)


태그:#여행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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