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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민 8년차, 접시를 닦다

 

그날 저녁 식사는 묵고 있는 MIJE호텔의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떨떠름하게 식판에 음식을 덜어다 놓고 테이블에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 내 앞에서, 주방에서 접시를 닦던 푸짐하게 생긴 흑인 한 명이 갑자기 포즈를 취하면서 말을 걸어온다.

 

"사진 찍어줘서 고마워요. 프랑스가 마음에 드나요?"

"글쎄요... 여기 온 지 이틀째라서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마음에 들어요. 거리는 아름답고, 음식도 맛있어요. 파리는 매력적인 도시예요."

 

"매력적인 도시라.. 그렇지 않아요. 파리에 온 지 이틀 됐다구요? 나는 여기온 지 8년 됐어요."

"...고향이 어디예요?"

 

"감비아."

 

소싯적 사회 수업시간에 보라는 교과서는 안 보고 사회과부도 꽤나 팠던, 옆에 앉은 짝이랑 나라 이름 대기내기에 이골이 난 경력을 가진 나지만, 감비아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다. '잠비아'를 말하는건 아닐까.

 

"잠비아요?"

"아니에요. 감비아와 잠비아는 다른 나라예요. 감비아는 세네갈의 아래쪽에 있는 나라예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나중에서야 사진을 정리하다 말고 포털 사이트에 물어본 결과, 감비아는 GDP의 대부분을 땅콩 수출에 의존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전형적인 작은 후진국이었다. 이래서야 '아! 나이지리아 가까이에 있는 나라'하는 식으로 짐짓 아는 척이라도 해 줄 수가 없다.

 

"..."

"열심히 일해도, 돈은 조금 밖에 못 벌어요. 여기서는 살아가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사람들도 친절한 걸요."

"아니요... 나는 돈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내게는 친절하지 않아요..."

 

머리 속으로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우리나라로 건너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이 사람도 평생을 땅콩이나 까야 하는 신세에 지쳐 모진 고생을 다 해가며 자유, 평등, 박애의 나라 프랑스로 왔겠지.

 

흔히들 '똘레랑스'로 대변되는 '관용'의 종주국 프랑스에서는 인종차별 금지를 법률로 제정해 놓았을 정도로 이민자들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 불거진 실상은 별로 그렇지도 않다.

 

과거 값싼 노동력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와 이슬람권으로부터 이민자들을 대거 수용했지만, 산업 구조가 바뀌고 제조업이 쇠퇴하게 되면서 이민자들은 찬밥신세가 되었다. 이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보이지 않는 차별과 강압대우, 적극적이지 못한 융화정책에 대한 반발이 쌓이고 쌓이다 결국 터지게 된 폭동이 2005년 가을에 벌어진 소요 사태다.

 

사족이지만, 소요와 소호를 헷갈린 나는 멍청하게도 런던 중심부에 있는 낭만적인 식당가인 소호거리를 거닐며 괜히 뜨악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굳이 소요 사태를 언급할 것도 없이 내 경우만 봐도 그렇다. 글라스고를 떠나 파리 브베공항으로 입국했을 때, 공항 직원인지 경찰인지로부터 여하간 딱딱하게 생긴 사람들에게 가방을 열고 짐검사를 받은 이는 오직 나 한명뿐이었다. 그 비행기에 탔던 유색인종 또한 나 한명뿐이었다. 프랑스가 그렇게도 강조하던 '똘레랑스'와는 거리가 있는 일이다.

 

8년을 뒹굴며 갖게 된 직업이 여태 이런 싸구려 청소년 호텔 지하식당의 접시닦이 신세라니, 그나마 이 접시닦는 일을 하기 위해 지난 8년 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자존심과 젊음을 팔았어야 했을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카메라 앞이라고 지은 익살스러운 표정 속에는 그의 처연한 눈동자가 보인다. 딱히 해줄 말이 없다. 온몸에서 꿈틀꿈틀 돋아나는 닭살을 꾹 참아내며, 뻔한 위로를 할 수밖에.

 

"한국도 전쟁통에 집, 공장, 학교가 죄다 박살이 났지만, 워낙 부지런히 일해서 50년 만에 뚝딱 일어섰어요. 그래서 저처럼 젊은세대가 이렇게 여행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될 수 있었어요.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오. 이제 일하러 가야 해요. 식사 맛있게 해요."

 

즐거워야 할 식사시간인데도 마음이 가볍지가 않다. 불현듯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닭꼬치와 샌드위치를 팔던 청각 장애인 아랍계 아저씨가 떠오른다. 그럭저럭 싼 값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닭꼬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저씨 나름대로 사연이 많을 것 같다. 말도 못하면서 포장마차를 하기 위해 한국까지 온 것은 아닐테고, 아마도 다른 일로 한국에 왔다가 말을 못하게 되어 여차저차 하다 보니 그렇게 포장마차를 차리게 되었을 텐데. 거기까지의 인생 역경만 해도 웬만한 영화 분량의 사연이 있을 텐데.

 

나는 그저 '양념 조금만 더 발라주세요'라는 의미 전달도 손짓 발짓을 사정 없이 동원해야 한다며 그저 불편해 하기만 했다. 굳이 남의 나라 인종문제가 어쩌니 저쩌니 심오한 척 할 것 없이, 내가 사는 곳의 소외된 이들에게 약간의 관심을 가져줄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포크를 든다.

 

그저 맛있으면 행복하다.

 

이런 구내식당에 뭐가 특별한게 있으랴. 특별한것은 전혀 없다. 파스타에 꽁치, 미트볼, 쌀밥, 버섯과 샐러드. 프랑스식 백반이랄까. 하지만 맛은 굉장하다. 소요 사태니 포장마차 아저씨니 뭐니 다 잊어 버렸다.

 

꽁치 가시는 입 안에서 발라내려고 혀를 움직이는 사이에 스르륵 녹아내린다. 파스타는 입천장에 착착 감기고 샐러드를 씹으니 와그작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최고다. 이것이 진짜 프랑스 음식이로구나. 굳이 샹젤리제의 레스토랑까지 나갈 거 없겠구나.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된장찌개에 쌀밥을 푹 퍼다 삶은 호박 잎파리에 쌈 싸서 꾸역꾸역 집어 삼켜야만 느낄 수 있는 그런 포만감을 유럽에서 느낄 수 있다니. 배낭족이란 그저 배 부르면 기분 좋다. MIJE 만세!! 빠리 최고다!!

 

기념 삼아 요리사들의 사진을 좀 찍어 가고 싶은데, 일단 외모는 정통 프랑스 쉐프처럼 생긴 요리사들이 영어를 단 한 마디도 못 알아 듣는 것이 안타깝다.

 

음식들을 가리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는 "푸드 쎄씨봉~ 드 뽀또 유~!!"라고 말하며 카메라를 들이대니 웃으며 포즈를 취해 준다. 까짓 거 불어도 별거 아니다.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알아듣게 만들면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마구 솟아난다. 쎄씨봉이라는 말을 어디에서 들었길래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영어는 제3국의 언어일진데...

 

의기양양한 발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침대에 누군가가 뒤돌아서서 짐을 풀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알지도 못하는 불어를 써 먹어 볼 기회다.

 

"봉쥬르~"라는 호기 있는 인사에 돌아본 건, 금발의 코쟁이가 아니라 의외의 동양인 아저씨였다. 보통 한국인이라면 한국인과 중국인, 일본인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의 국적을 알아차릴 수 있지만, 이 아저씨는 그렇지 않다. 중국인이라기에는 행색이 너무나 깔끔하고, 그렇다고 일본인치고는 얼굴에 기름이 흐르는 모양이 어색하다. 한국인으로 보자니 또 뭔가가 어수룩하다.

 

"어?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세요?"

"... 노... 노... 아임..."

 

'쎄씨봉'과 '봉주르'를 제대로 써먹은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 거침 없이 일본어 작렬.

 

"데와, 니혼진 데스까?" (그럼 일본인입니까?)

".... 아... 아임 차이니즈."

 

이미 상하이를 경유하며 중국에서 1박을 한 경험이 있다. 중국인이라는 말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단 한마디 중국어를 날려준다. 이 한마디면 상하이 시내에서 내게 말을 걸어 오던 모든 중국인이 찍소리 않고 사라져 갔었다.

 

"아, 워시 한궈런." (저는 한국인입니다.)

 

'오! 중국말 할 줄 아세요?'라는 의미인 것이 확실한 "오! 둥빵둥빵둥빵..."이 빠른 속도로 날아들고, 그 때서야 제정신을 차린 나는 "중국어 몰라요"라는 영어 대답으로 궁색한 수습을 마쳤다. 더듬더듬 간신히 이어가는 영어, 거의 못하는 일본어, 두어 마디 빼고는 전혀 모르는 프랑스어와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5개국어를 1분 만에 쏟아내게 될 줄이야... 외국어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지만, 아무리봐도 이번 경우는 자신감만 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에딘버러에서, 내게는 고상한 액센트의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가 프랑스인에게는 프랑스어로 울랄라 불랄라 호들갑스런 설명을 해주고, 스페인인에게는 '에스빠뇰?'이라 묻고는 스페인어를 두다다 쏘아 대던 인포 직원이 너무나도 멋져 보여서 이렇게 억지로라도 흉내를 한번 내보고 싶었다.

 

할 줄 아는 건 한번씩 다 해봤으니, 어쨌거나 이 정도면 성공한 셈이라며 속으로 뿌듯해 한다. 중국과 한국이라는 지척에서 살아온 아저씨와 나는 저 머나먼 영국의 언어로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더듬대는 영어 실력이 엇비슷한데다가 사용하는 카메라 기종도 같고, 물론 근본이야 다르겠지만 우연히 'Lee'라는 성씨도 같아 순식간에 친해져 버린 우리는. 서로를 '아우'를 뜻하는 중국어인 "샤오", 그리고 한국어 "형님"이라 부르면서 의기투합하여 함께 바토무슈를 타고 세느강 야경을 보러 나서게 된다.

 

 미안해요 형님. 카메라를 바꿔가며 서로 찍어 주다보니 저한테 남은 형님 사진이 한장도 없네요.
미안해요 형님. 카메라를 바꿔가며 서로 찍어 주다보니 저한테 남은 형님 사진이 한장도 없네요. ⓒ 이중현

그러고 보니 둘 사이에 영어가 오가는 것도 참 웃긴 일이다. 구약성서에 이르기를 태초의 오만했던 인간들은 신과 맞먹기 위해 하늘로 맞닿을 만한 높은 탑, 바벨탑을 지었댄다. 격노한 신은 천사를 시켜 탑을 무너뜨리고, 인간들에게는 여러 개의 언어를 갖게 하여 서로 융화되지 못하게 하는 벌을 내렸단다.

 

하지만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은 알렉산더, 진시황, 카이사르, 칭기즈칸, 나폴레옹 같은 영웅을 등장시켜서 나뉘어진 세계를 다시 통합시키려고 노력하더니, 기어이 대영제국과 미국이라는 깡패를 등에 업고 영어를 전세계 공용어로 만들어 신이 내린 벌을 사실상 극복해 버렸다.

 

하지만 영어의 공용화는 혼란의 극복이 아니라 재앙의 시작일 수도 있다. 자고로 언어라는 것은 그 시대와 지역의 고유한 정치·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일진데, 말이 바뀌면 생각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변하는 법. 단순히 표현의 일치가 아니라 인위적이고 획일적인 영어식 사고가 강요된다면, 사회가 오히려 퇴보할 수도 있다.

 

이것이 어릴 때부터 조기 어학 연수다 뭐다 죽어라 영어공부를 시키는 환경 속에서도 국어가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나 높은 이유이고, 리 형님과 내가 나누는 언어가 영어인 것이 아쉬운 이유이다.

 

결국 각각의 고유한 문화를 지켜 나가면서도 세계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영어는 영어대로, 우리말은 우리말대로, 또 다른 외국어는 그 외국어대로 하염 없는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바벨탑을 쌓아 올린 대가는 잔혹하다.

 

한자 공부 합시다~

 

다 같은 라틴어에 뿌리를 둔 서구 국가들끼리는 언어체계가 유사해서 외국어를 금방금방 익혀 버린다고 한다. 심지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같은 경우는 두 나라 사람이 서로 자국말로 대화를 나눠도 의미가 얼추 통하는 수준이라고.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나는 한국말을 쓰고 이 형님은 중국말을 쓰더라도 어렵사리나마 서로의 말 뜻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더라도, 제3국 언어인 영어가 아니라 중국어나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쪽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경을 바다가 가로막고 있어 왕래가 잦을 수가 없었던 한·중·일의 언어는 서구인들의 말글들처럼 그렇게 가깝지는 않다. 스페니시들에게는 영어가 어려운 언어가 아니겠지만 내게는 중국어가 그저 '둥빵둥빵'이다. 폼이 우습게 느껴지더라도 그나마 할 줄 아는 영어를 쓸 수 밖에 없다.

 

"유럽의 물에는 석회가 함유되어 있어서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건 좋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저씨는 전자사전에서 찾은 '석회'라는 영어단어를 알아 보지 못한다. "워터 인 유럽 콘테인... 콘테인..."이라며 답답해 하다가 문득, 서로 판이하게 다른 동아시아의 언어를 이어 주는 열쇠를 발견했다.

 

열쇠는 바로 '한자'다. 전자사전의 국어사전에 뜬 '石灰'라는 한자를 아저씨에게 보여주니 "아하~ 서카이! 예스. 예스. 워터 인 유롭 콘테인드 서카이. 쏘 위 니투 바이 내추럴 워터!"하며 그 때서야 알은척을 한다.

 

언젠가 한비야 누님의 책에서도 본 적이 있는 내용이 얼핏 떠오른다. 한국을 포함하여 중국, 일본, 대만, 베트남, 싱가포르 등 세계 인구의 무려 1/3이 '한자문화권'에 속해 있다. 일본어나 중국어, 광둥어에 아무리 젬병인 사람이라도 1800자 정도의 상용한자만 죄 알고 있다면, 한자 글귀를 보는 순간 의미 파악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진다. 국제화의 동반자인 동시에 경쟁자인 이들과 함께 부대끼기 위해서는 영어를 술술 내뿜 듯, 한자도 좔좔 외울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이 있고, 한자를 깨치기 어려워한 백성들을 위해 대왕님께서 친히 만드신 이 한글만으로도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문화생활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말의 대부분은 사실 한자어이고, 한글로는 구분할 수 없는 동음이의어가 많으니, 한자를 앎으로써 우리말을 더욱 풍요롭게 쓸 수도 있다.

 

한자가 격동의 동북아시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력한 옵션인 것은 경유지인 상하이에서 겨우 하루를 보냈으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는 중국어라고는 아까 이야기한 중국인을 쫓아내는 중국어 '워시 한궈런' 뿐이었지만, 空港, 豫園, 化粧室이라고 쓰인 한자를 보여 주면서 길 안내는 충분히 받았다.

 

그리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가 한자만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도 중국어 간체로 된 메뉴를 낯익어 보인답시고 내 마음대로 '난자완스'로 읽고 고대로 옮겨 '그려'서 주문했다가 한끼 식사를 실패하는 무식한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자.두.반 (으로 읽는거랜다).
사.자.두.반 (으로 읽는거랜다). ⓒ 이중현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께 보여드렸더니 "이걸 어떻게 난자완스로 읽냐 글씨는 또 이게 뭐냐"라며 혀를 끌끌 차신다. 뭐라고 어떻게 변명할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이다. 난 끝까지 이게 중국식 정통난자완스려니하는 생각이었다.
정말이다. 난 끝까지 이게 중국식 정통난자완스려니하는 생각이었다. ⓒ 이중현

 

"한문은 너무 낡았잖아요. 저 이제 한문보다 영어공부 할래요!!"라는 당돌한 외침으로 매주 오시던 장원한자 선생님을 내쫓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과, 일주일에 한 시간뿐이던 한문수업시간에 그저 꾸벅꾸벅 졸기만 하거나, 기껏 깨어있더라도 열심히 스타크래프트 전략을 연구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는 순간이다.

 

파리에서의 둘째날은 그렇게, 조금 엉뚱하게도 한자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끝이 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slrclub, 쁘리띠님의 떠나볼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가짜시인#유럽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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