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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는데 팥 칼국수 어때요?"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쏟아졌습니다. 아내가 미리 예매해 온 영화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그냥 쉽게 이르는 말)을 가까운 영화관에서 조조로 감상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하는 말이었습니다.

 

"팥 칼국수? 그거 좋지. 그런데 그거 만들어 먹으려면 당신이 귀찮지 않겠어?"

 

'불감청이언정고소원'이라고 했던가. 얼마나 반가운 말인데 그걸 어찌 사양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맛보았던 그 고소하고 달콤한 팥 칼국수라니, 갑자기 입안에 사르르 떠도는 감미로운 맛이 새삼스럽게 입맛을 자극했지요.

 

집에 돌아와 보니 붉은 팥은 이미 물에 담가 불려 놓았더군요. 아내는 미리 점심으로 팥 칼국수를 생각해 두었던 모양입니다. 곧 팥을 압력밥솥에 넣고 삶았습니다. 팥이 익는 동안 밀가루 반죽을 해서 둥글넓적하게 밀어 칼로 썰어 국수를 만들었지요.

 

물론 저도 한 몫 거들었지요. 이 나이에 아내 혼자 만들어 주는 걸 받아먹기만 할 수는 없잖아요. 늘그막의 백수남편들 모두 저와 같지 않나요? 아내가 곰국 끓이면 눈치를 살핀다는데요, 하하하. 그래서 반죽하는 것도 도와주고 방망이로 미는 것도 도와줬지요.

 

삶아낸 팥을 물에 담가 껍질을 벗겨낸 다음 손으로 잘 으깨어 조리용 철사얼망으로 걸러냅니다. 냄비에 적당히 물을 부어 섞어 간을 맞춘 다음 다시 끓입니다. 팥 국물이 펄펄 끓고 있을 때 칼국수를 넣고 다시 한 번 더 끓여내면 고소하고 달콤한 팥 칼국수가 완성됩니다.

 

참 이런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쉽게 끓여 먹는 방법도 있다고 하네요. 첫째 팥을 삶은 다음 껍질을 벗겨낼 필요 없이 그냥 믹서에 넣고 잘 갈아서 바로 끓이는 방법입니다. 둘째 칼국수 만드는 것이 귀찮으면 만들어 놓고 파는 칼국수를 사다가 바로 끓여먹는 방법이지요.

 

이렇게 끓인 팥 칼국수를 먹을 때는 많은 반찬이 필요없습니다. 열무물김치 하나만 놓고 먹어도 맛이 그만이니까요. 뜨거운 팥 칼국수와 시원한 열무물김치, 절묘한 어울림 아닙니까? 팥 칼국수가 입안에서 뜨거울 때는 열무 물김치 한 숟갈로 식혀가며 뚝딱 한 그릇,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팥 칼국수로 점심 한 끼 거뜬히 해치웠지요.

 

아내는 본래 손이 큰 편이어서 둘만 먹을 수 있는 적은 양은 절대 만들지 못합니다. 몇 그릇 더 만들어 앞집과 위층 할머니. 그리고 아래 층 또래 아주머니랑 네 집이 함께 나눠 먹었지요. 비오는 날 점심으론 팥 칼국수가 그만입니다. 내일 점심에 한 번 만들어 드셔보세요.


#이승철#팥 칼국수#열무물김치#불감청이언정고소원#점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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