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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할 수 없는' 파멸 겪은 유럽, 어떻게 다시 일어섰나

 

"두 번째 천년기의 마지막에 유럽이 어떤 종류의 장소였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내부의 분열과 불화와 파열을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 대륙의 뿌리 깊은 분열의 현대사가, 그리고 서로 중첩되는 공동체들과 정체성들과 역사들의 부정할 수 없는 잡다함이 어쩔 수 없이 그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살았는지에 관한 유럽인들의 의식은 그들을 분열시킨 것만큼 그들을 결합시킨 것의 의해서도 형성되었다. 그리고 유럽인들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 <포스트워 1945~2005> 중에서

 

대륙도 아니면서 은연중 대륙 행세를 해 온 곳이 있다. 이곳은 사실 대륙이 아니며 진짜 대륙 한쪽에 매달리다시피 한 아(亞)대륙이다. 최대한 양보해도 지구 위를 수놓은 대륙 중 가장 작은 대륙(미국이나 중국의 절반보다 조금 더 큰 정도)에 불과하다. 이 대륙은 아시아대륙 한 쪽에 가만히 붙어 있다.

 

그런데, 이 대륙도 아닌 조그만 대륙에서 20세기, 21세기 '신(新) 제국'에 감히 도전할 상대가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후 현재 46개 나라가 이 작고 작은 대륙 위에서 얽히고설켜 살면서 어렵사리 이루어낸 연합과 화합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면 한이 없을 듯하다.

 

19세기가 다 끝나가도록 아니 20세기에 이르러서 더욱 더 전쟁에 빠져 들었던 이곳 사람들은 희한하게도 그 오랜 싸움 때문에 서로 더욱 잘 알게 됐고, 그만큼 기회만 되면 이리저리 (정략적으로) 연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억조차하기 싫은 대(大) 전쟁을 20세기 초반에 두 번이나 치른 뒤에 이들은 충격과 침묵의 세월을 딛고 일어나 장차 영원한 연합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들은 '전후' 유럽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끔찍한 두 번의 기억과 추억(?)을 반드시 되새김질하고 곱씹어서 분명하게 마무리 지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대륙(다시 말하지만, 실제로 대륙은 아니다)이면서도 가장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왔고 그만큼 할 말이 많은 곳이다. 쓰린 기억과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많은 만큼 지구촌 사람들에게 들려 줄 뼈아픈 조언도 그만큼 많은 것일까. <포스트워 1945~2005>(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플래닛 펴냄, 2008)는 그 복잡다단한 유럽의 속사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에서 제시할 유럽 현대사에 관한 거대한 이론이 내게는 없다. 책을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의 상술도 없으며, 전체를 포괄하는 단일한 이야기의 서술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필자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유럽사에 주제가 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 역사에는 한 가지 이상의 주제가 있다. 마치 여우처럼 유럽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 유럽은 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많은 과거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잘 알고 있기에 (과거를 많이 알아서 생기는) 위험한 '지뢰'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필수불가결한 생존논리를 터득했다. 그리고 좀 더 좋은 쪽으로 그리고 생산적인 쪽으로 그들은 이것을 발전시켜갔다.
 
토니 주트는 이 책에서 그러한 유럽인들의 집요하고도 처절한 노력이 낳은 결과물을 '유럽식 사회모델'이라 불렀다. 그 반대말로 제시된 것은 여전히 모든 이에게 이중 의미로 다가오는 '미국식 생활양식'이다.

 

지은이 토니 주트(1948~ )는 아시아에 붙은 작은 아대륙 유럽 땅이 세상 그 어느 곳보다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낸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죽 펼쳐간다. 그리고 그는 그 많은 이야기를 다시 유럽으로, 유럽으로 또 유럽으로 끌어들였다. 이는 유럽이 자기 얼굴을 통째로 다시 보게 하는 일이었다.

 

전후 유럽('전후'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2차 대전 후'를 말한다)은 어느 순간 다시 그 오랜 침묵을 깨고 생존전략에서 비롯된 연합을 꿈꾸었다. 그 오래고 질긴 유럽사를 토니 주트가 때론 묵직하게 때론 박진감 있게 서술해간다. 20세기 역사 자체는 너무도 암울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할 말이 많은 유럽을 대신해 토니 주트는 말한다. 그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라도 유럽은 (21세기에 들려 줄 20세기 이야기 중)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여우 같다고.

 

토니 주트, 그는 '전후' 현대 유럽에서 무엇을 보려 했나

 

유럽은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오래도록 '독일 문제'라는 진흙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독일 문제를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홀로코스트'라는 또 다른 문제가 늘 따라다녔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독일 문제, 그리고 거꾸로 된 판박이 같은 홀로코스트라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조건을 수없이 통과해야만 그제서야 조금씩 밖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불편하기 짝이 없는 문제 때문에 유럽인들은 차라리 침묵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 침묵이란 '새 유럽' 만들기에 수시로 걸림돌이 되는 '독일 문제'에 대한 침묵이기도 했고 한편으론 자기 자신들이 지닌 문제(자기들 내부에서 벌어진 '전후'의 상흔과 내홍)에 대한 이상한 침묵이기도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히틀러와 스탈린이 깨끗이 쓸어 버린 적막한 유럽 땅에서 20세기 민족주의와 국민국가가 탄생과 변화를 거듭하고 충돌하며 각종 '유럽 문제'를 만들어냈을 때 이에 대한 침묵이기도 했다.

 

토니 주트는 바로 이러한 전후 유럽이 속 깊숙이 끌어안고 있는 전쟁의 상흔에 어떤 사연들이 숨어있는지를 철저하게 파헤쳤다. 그 과정에서 20세기 새로운 유럽 본능으로 자리 잡은 유럽 연합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초일류 강대국이 된 미국 정책과 생활방식에 맞서) 어떤 특징을 형성해 왔는지를 탐구했다.

 

우리가 이 책에서 1945년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책 제목(Postwar 1945~2005: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에 들어있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1차 대전 후 유럽이 여전히 19세기 유럽 판도를 크게 뒤흔들지 못한 반면 2차 대전 후 유럽은 싹쓸이 당하듯 그야말로 재탄생을 하게 됐다. 1945년은 바로 1차 대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아니 비교 자체를 거부하는 2차 대전 고유의 '전후 문제'를 담고 있다. 이런 의미를 담고 있는 1945년은 그대로 '전후 유럽'의 상징이 되곤 한다.

 

2차 대전 후 유럽은 이전과는 다른 유럽 문제를 끌어안아야만 했다. 1차 대전이 현대 신무기의 첫 국제 경연장(!?)이면서 제국 시대 유산을 그다지 심각하게 건드리지 못한 반면,  2차 대전 후 유럽은 제국 냄새 가득한 지난 날에서 완전히 뒤집어지고 거기에다 '동-서 유럽' 문제와 '냉전 시대' 문제를 오랜 기간 끌어안아야만 했다. 흥미로운 건, 1, 2차 대전 모두에서 가해자요, 패배자였던 독일이 냉전 시대가 몰고 온 이념 대치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의 보호를 받고 심지어 적잖은 지원을 받으며 차근차근 성장해갔다는 사실이다. 

 

유럽은 어느덧 세계 위에 선 유럽에서 세계 속 유럽으로 재규정되기 시작했다. 그만큼 유럽은 더더욱 유럽 안으로 관심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는 각자 사정에 따라 유럽 안 소식을 선별해 다뤘던 유럽 각국이 전후에는 그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들 모두의 문제요, 함께 해결해나가야 할 공동 관심사로 여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 전후 유럽은 진정 유럽다운 유럽이 될 이유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많은 유럽 국가들의 '원죄'에 해당하는 식민 국가 제도의 쇠퇴도 이런 변화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 이렇게 유럽은 유럽 내 '독일 문제'를 비롯해 유럽 밖에서 밀려온 파도 때문에도 '새 유럽'에 관한 풀기 어려운 숙제(!)에 더욱 매달리게 되었다. 이 책 지은이는 그 어려운 과정을 겪고 태어난 현대 유럽이 유럽 연합이라는 외부 틀을 만들어가고 그 내부 가치에 대해 끊임없는 논의와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추적했으며 이것이 지닌 역할을 상당히 긍정한다.

 

20세기와 21세기의 충돌? '유럽식 생활 모델' vs '미국식 생활방식

 

"이 책은 그런 초연함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나는 <포스트워>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유럽의 최근 과거에 대해 명백히 나 자신의 해석을 제공하기를 원한다. 부당하게 경멸적인 함의를 얻은 말로 표현하자면 이 책은 주장이 강한 책이다."

 

갑자기 역사에 공정함이 있는지를 묻고 싶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모든 역사서에서 완벽한 공정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데, 토니 주트는 다소 다른 의미에서 '비공정성', 곧 이유 있는 주장을 펼친다.

 

내가 지은이를 조금이나마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비롯된다. 우선, 앞서 말했듯이 두 번의 대전 이후 한없이 줄어든 유럽이 이 일 때문에 오히려 진정한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을 걷게 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는 그러한 '새 유럽'이 지닌 가치(한 마디로, '유럽식 생활 모델'로 표현할 수 있다)가 이 시대 유일 가치로 부당한(!?) 대접을 받아온 미국 방식에 맞서 세계화의 다른 사례(중에서 한 가지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토니 주트는 '새 유럽'의 탄생 자체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며, 그런 유럽이 어렵사리 낳은 '유럽 연합(EU, European Union)'에 대해서도 무척 깊은 애정을 보인다. 이는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점이다.

 

1부 '전후 시대'는 유럽이 2차 대전 후 (2차 대전이 남긴 엄연한 흔적을 놓고) 왜 한동안 침묵에 빠졌고 그 침묵이 어떤 침묵이었는지 살폈고 한편으론 냉전시대로 접어든 사연을 탐구했다. 2부 '번영과 불만 1953~1971'은 유럽이 새로운 세계 질서로 자리잡은 냉전 시대를 무대 위에 서서 전후 유럽의 은인이었던(은인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미국과 장차 어떤 불화를 겪게 되었는지를 담고 있다.

 

참고로, 2부 중간에 들어가 있는 '후기 두 경제 이야기'는 전후 독일과 영국 경제의 희비쌍곡선을 비교 관찰하고 있다. 2차 대전 후, 독일은 철저한 파괴의 밑바닥에서 오히려 성장의 기틀을 차곡 차곡 마련했고, 그에 반해 유럽 국가들 중 2차 대전 후유증을 가장 많이 겪은 것으로 보이는 영국은 전쟁에 쏟아붇은 전비의 후폭풍으로 오랜 기간 신음했다. 그런 영국은 한 때 '유럽의 환자'라는 달갑지 않은 호칭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전쟁의 승자와 패자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겪는 모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었다.

 

이제 책은 2권으로 넘어가 '새 유럽'의 희미한 그림을 좀 더 많이 보게 된다. 3부 '퇴장 송가 1971~1989'는 냉전 시대를 양분하는 한 세력인 공산권 세력이 어떻게 무너지고 그것이 '새 유럽'에 관한 요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탐구했다. 재미있는 것은, 2차 대전 직후를 그린 1부 '종결부'가 '구유럽의 종말'을 담은 반면 '새 유럽' 그림이 좀더 뚜렷해지는 시기를 그린 3부 마지막 장(19장)이 '구질서의 종말'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4부 '몰락 이후 1989~2005'는 소련 붕괴와 맞물려 공산권 붕괴가 이루어진 이후 그야말로 명실상부하게 떠오른 '새 유럽'에 관한 꿈이 더욱 힘을 받게 된 시대를 그리고 있다.

 

유럽은 예전에도 그랬고 유럽 연합을 이룬 지금도 여전히 사실상 '분열하기 쉬운 대륙'(20장)이다. 지은이가 유럽 연합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유럽 사회에 강력히 요구하는 '청산'(21장)에 관한 문제도 솔직히 여전히 그대로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럽은 지금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구유럽과 신유럽'(22장)의 상호 교체는 일단 이루어졌다. 연합 기조 위에 선 '다양한 유럽'(23장)에 관한 지지는 유럽의 연합을 오히려 더욱 공고히 하는 밑받침이다. 그러면서도 유럽이 앞으로도 '유럽, 하나의 생활양식'(24장)을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는 방향으로 계속 이루어갈 수 있을지는 솔직히 미지수다.

 

그러나, 지은이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은 '유럽식 사회모델'에 관한 꿈이 결코 일장춘몽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또 지구촌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경험담이 많으며 그만큼 (21세기 지구촌의 밑그림을 그리는 문제에 관한) 해야 할 역할과 책임도 만만치 않다.

 

"1960년대는 유럽 국가들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19세기 서유럽에서 시민과 국가의 관계는 군사적 필요와 정치적 요구 사이에서 이루어진 타협의 산물이었다. 다시 말해 새로 선거권을 획득한 시민들의 현대적 권리는 왕국을 보호할 오래된 의무의 이행과 상계되었다. 그러나 1945년 이래로 신민이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신민에게 봉사하는 데 기반을 둔 세세하게 규정된 사회 복지 혜택과 경제 전략이 점차 그 관계의 특징이 되었다."

 

사실 '유럽식 사회모델' 또는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적용하기 전에) 세세히 논의해야 할 점이 많다. 이른바 유럽 모델이란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피로 물든 전후 유럽에 대한 반작용이었으며, 한편으론 한 때의 은인이자 이젠 경쟁자인 미국의 기준에 대한 반작용(물론, 유럽 스스로 새로 만드는 기준이라는 의미도 있다)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국이 선호하는 자유시장주의에서 철저히 반대로 돌아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또, 국가 부담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사회 안정과 국민(시민) 화합(여기서 말하는 '사회'란 모든 유럽으로 확장할 수 있으며, '국민(시민)' 의미 역시 그러하다)을 추구한다. 유럽은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자기 파멸을 겪은 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아니 돌이키고 싶지 않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다. 

 

또한, 이 모델은 두 번에 걸쳐 뼈저리게 느낀 대(大)전쟁의 상흔을 긍정적으로 치료하는 일이기도 하다. 유럽 모델이란 이렇듯 단순히 미국 방식에 반대하는 그 무엇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이 유럽 모델이 기꺼이 21세기 세계사의 의미있는 동력으로 활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실제로 그러하느냐는 문제는 별도로 따져볼 일이다. 

 

"미국의 시대였던 20세기는 나락으로 처박힌 유럽을 목도했다. 옛 유럽의 회복은 더디고 불확실한 과정이었다. 어떤 점에서 그 회복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미국이 최대의 군사력을 보유할 것이고 중국은 더 값싼 상품을 더 많이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도 중국도 누구나 보편적으로 모방하고 싶은 유용한 모델을 갖지 못했다. 가까운 과거에 참사를 겪었지만, 그리고 상당 부분 그러한 참사를 겪었기 때문에, 세계에 자신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에 관해 온당한 충고를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는 자들은 유럽인이었다. 60년 전에 이를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겠지만, 21세기는 유럽에 속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분열하던 유럽, 이젠 좀 더 굳건한 연합을 꿈꾼다

 

"주트는 유럽의 회복과 '유럽 모델'의 출현을 유럽인이 거둔 성과로 칭송하기는 하지만, 유럽인의 연대 의식의 범위가 과연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유럽은 방어적으로 편협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 아니면 유럽 내의 비유럽인들과 국경 밖의 비유럽인들, 나아가 '문명 세계 전체를 끌어안는' 보편적 연대 의식을 보여 줄 것인가? 가능성은 반반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유럽이 이제 불과 60여년밖에 지나지 않은 과거에 파괴적인 참사를 겪었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 옮긴이의 말

 

그 조그만 대륙(그래, 유럽은 그간 쌓아온 처절한 역사 이후 진정 대륙이 되었다!)이 전후에 쌓아 온 역사의 높이와 깊이 만큼이나 이 책 역시 엄청난 두께와 남다른 가치를 자랑한다. 두 권에 걸쳐 1448쪽에 달하는 그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이 책에 압박을 받아 헛소리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현대 유럽이 어렵사리 유럽 연합을 이루고서 21세기에 안착한 것과 그 역할에 내심 희망을 품는 지은이 주장에 얼마간 동의한다는 점은 밝혀두어야겠다.

 

토니 주트는 21세기 세계사의 밑그림을 짜는 데 유럽이 의미있는 조언과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심 확신한다. 그 밑바탕에는 오류와 멸망을 딛고 일어선 유럽이 어렵사리 낳은 '유럽 모델'이라는 가치와 '유럽 연합'이라는 꿈 같은 실체가 있다.

 

그의 조언 아니 그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결코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이유는 그야말로 여전히 현재 같은 살아있는 과거(!)에서 비롯된다. 우리나라만 해도 분단 상황이 여전하여 (2차 대전 문제와 함께) 여러모로 비슷한 독일 사례가 꾸준히 거론된다. 또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시시때때로 일본의 과거를 여전히 쉽게 잊을 수 없다는 사실은 유럽의 '독일 문제'에 못지 않다.

 

전후 유럽의 상처와 변화가 여전히 현재이듯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현대사 역시 여전히 현재이다. 그가 굳이 그 엄청나고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유럽 현대사를 관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덕에, 우리는 유럽 못지 않게 얽히고설킨 우리 문제를 언제든 다시 관통해야 할 이유와 동력을 발견한다. '과거'를 진솔하고 분명하게 대면하지 않는 이상 '미래'는 어디선가 갈 길을 잃어 버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유럽이 더이상 무책임한 침묵과 그에 못지않게 무책임한 망각에 머무르지 않기를 바란다. 역사에 대한 무책임한 발언은 더더욱 거절한다. 내가 보기에, 이 책에서 그가 강력히 주장한 것은 사실 '새 유럽'의 역할과 가능성 이전에 '구 유럽'을 정면으로 대응하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는 '새 유럽'이 그렇게 자신의 옛 모습을 통째로 다시 살펴보면서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세계사에 의미있는 역할을 하기를 희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와 아시아 각국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식 가치와 체계에 맞서 어렵사리 유럽식 가치와 체계를 만들어 온 유럽. 멸망과 절망의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선 그 유럽이 세계(사)를 위한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그것을 내심 믿고 확신하는 지은이의 주장에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본다. 참 오래도록 미국식 세계가 판을 휘어잡았음을 그래서 그 판에 휘둘린 이들이 한 둘이 아님을 기억하면서, 유럽(사)를 통째로 파헤친 그의 목소리를 같이 들어보기를 독자들에게 청한다.

 

"현대 유럽은 세계화 시대에 우리와 무관한 곳이 전혀 아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정치적 변동과 과거 청산 같은 무거운 주제들만이 아니다. 기업의 민영화나 ‘제3의 길’, 역사의 상품화, 인구 변동과 연금 문제, 예술에 대한 국가의 후원, 다민족 사회의 문제점, 환경오염, 지역 간 빈부 격차, 분리주의 등 현대 사회의 첨예한 문제들과 좌파와 우파,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와 시장, 복지와 경쟁 등 서로 대립하는 개념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형성과 작동 등 국제 관계에 관한 많은 내용들이 들어 있다. 이야기는 과거형이지만 문제는 많은 경우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기업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현대 유럽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또 대학생들에게도 유익한 교양서가 되리라 본다. 아무쪼록 역자의 부족함이 훌륭한 역사가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옮긴이의 말

 

20세기가 되기 전 이미 유럽은 이렇게 저렇게 그 좁은 땅을 나누고 합치고 또 나누어왔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선 유럽은 히틀러와 스탈린으로 상징할 수 있는 두 필연적인(?!) 존재들 때문에 새 유럽을 짤 수 있는(또는 짤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그리고, 지금은 실제로 '새 유럽'을 짜고 있다. 20세기 초 유럽과 20세기 후반 유럽은 그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국경선만으로도 참 많이 변했다.

 

물론 유럽은 유럽 연합 안에서 계속 변하고 있다. 얼마간 아니 상당히 오래 유럽에서 떨어져 '붉은' 유럽으로 지낸 동유럽이 어렵사리 조금씩 유럽연합에 참여한 이후, 이제  또 다른 예비 유럽 일원이 얼마나 더 유럽 연합에 참여할 수 있을까. 또한, 터키 같이 이슬람 빛이 감도는 국가들이 유럽 연합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또는 그럴 가능성)을 유럽(연합)이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유럽은 지금 20세기 후반부터 떠오른 21세기 문제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 짜기에 여념 없는 세계 속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누가 힘있고도 의미 있는 조언을 할 수 있을까. 여기서 새삼 지은이가 '전후 유럽'을 딛고 일어선 '새 유럽'을 강력히 추천한다는 사실을 다시 언급하고 싶다. 물론 누가 또 얼마나 이에 동의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다른 많은 독자들이 '전후 유럽'에 관한 이 두텁고 깊은 맛을 얼추 느끼고 난 뒤에나 계속 얘기할 수 있을 듯 싶다.

 

<포스트워 1945~2005>에서 유럽사 전체를 묵직하게 통과한 토니 주트는 유럽(연합)에 대한 기대가 만만치 않은 만큼 역사(를 아는 일이 지닌 중요성)에 관한 깊은 이해를 다시금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그는 "'유럽연합'은 역사에 대한 응답일 수는 있지만, 절대로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는 말로 '에필로그'를 마무리했다. 그래서 넌지시 한 마디 더 덧붙인다면, 이 책은 유럽사이면서 조심스럽고도 과감하게 세계사를 바라본다.

 

"만약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나는 문화로 시작하겠다." - 장 모네

"유럽의 조물주는 유럽을 작은 크기로 창조했다. 그리고 유럽을 한층 더 작은 부분들로 분할했다. 그래서 우리의 가슴은 크기가 아니라 다양성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 카렐 차페크

덧붙이는 글 | <포스트워 1945~2005: 전쟁의 잿더미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든 유럽 이야기>1, 2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플래닛, 2008. 총 1448쪽/ 1,2권 각각 32000원
(원서) 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 (2005)


#유럽#포스트워 1945~2005#토니 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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