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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 타기
 자전거 타기
ⓒ 모락산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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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만나러 왔다고 하자 초등학교 1학년 석현이가 하얗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20분 이른 시간이었다. 12일 오전 10시 40분, 모락산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기 위해 의왕시 내손동에 있는 <모락산아이들>을 방문했다. <모락산아이들> 은 지난 2007년 7월에 개원한 공부방이다.

추레한 차림 때문에 이상한 아저씨로 의심받지 않을까 내심 고민 했었다. 착한 석현이는 온 몸이 땀투성이고 옷에 덕지덕지 흙탕물까지 묻어있는 시커먼 아저씨를 친절하게 맞아 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겠노라 호언장담 했었다. 출발 할 때 비가 올 듯 말 듯해서 자전거 안장에 앉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용감하게 페달을 밟았다. 안양시 석수동에서 <모락산아이들>이 있는 의왕시 내손동까지 안양천 자전거 도로를 타고 갔다.

다행히 비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물웅덩이가 문제였다. 밤에 내린 비 때문에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었다. 물웅덩이를 지날 때 마다 자전거와 난 흙탕물 범벅이 되어갔다. 굳이 자전거를 타고 가겠노라 호언한 것은 <모락산아이들>이 독특한 자전거 프로그램으로 주목받기 때문이다.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연대감을 느끼게 해서 인터뷰를 자연스럽게 풀어 나가고 싶은 마음에 자전거를 타고 가겠노라고 호언했다. 

흙탕물 뒤집어쓴 채 나타난 아저씨에게도 친절한 '모락산아이'

 친절한 석현이와 노신옥 선생님(왼쪽) , 이혜정 선생님
 친절한 석현이와 노신옥 선생님(왼쪽) , 이혜정 선생님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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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대로다. 이혜정(45) 선생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하자 "선생님 훌륭하세요"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 선생은 <모락산아이들> 창립멤버이고 현재 교사 대표직을 맡고 있다. 이야기는 기대했던 대로 자연스럽게 자전거로 흘렀다.

"예전부터 자전거 활성화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전거는 친환경적이고 건강에도 좋은 교통 수단이죠. 개원 하고 나서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신나게 해줄까 고민 하다가 자전거를 떠 올렸어요. 첫 만남이기에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나 서로 서먹서먹했는데 그것을 함께 자전거 타면서 풀어 주려는 의도 였어요."

시작은 이랬다. 자전거로 아이들 간 아이들과 교사 간 '소통'을 도모했던 것. 의도는 좋았지만 장비와 인력이 문제였다. 스무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사 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다.

"헌 자전거를 기부 받았어요. 인터넷을 이용해서 홍보했지요. 자전거 관련 사이트 마다 찾아다니며 '모락산아이들'에게 자전거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어요. 3개월 걸렸어요. 자전거 모으면서 좋은 분들도 만났구요."

자전거와 함께 좋은 자원봉사자도 만났다. 군포 YMCA 간사는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과 안전하게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당시 교육을 받은 아이들에게는 '자전거 면허증'을 만들어 주었다.

한이 아빠라 불리는 장철호(47)씨는 헌 자전거를 수리해서 아이들이 탈 만한 자전거로 만들어 주었다. 장철호씨 자전거 운동 수제자 대학생 이주호(아이디 3급비밀)씨는 작년 9월초부터 12월 중순까지 매주 1회씩 아이들에게 자전거 수업을 해 주었다.

이들은 모두 자전거 운동 동호회 '발바리(http://bike.jinbo.net/)' 회원이다. 발바리는 '두 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라는 뜻이다.

"지금은 한이 아빠가 수업을 하고 있어요. 자전거 영화도 보고 자전거 안전교육도 합니다. 자전거 체육대회가 재미있어요. 운동장에서 '토끼 달리기(빨리 가기)' '거북이 달리기(천천히 달리기)' '이어 달리기'도 합니다. 공휴일에는 장거리 여행도 하고요."

아이들 자전거 실력은 어른들과 함께 장거리 여행을 해도 될 만큼 훌륭하다. 지난 4월 9일에는 자전거로 시화 갯골공원에서 오이도까지 비를 맞으며 횡단 한 적도 있다. 당시 지쳐서 헉헉 거리는 이혜정 선생을 오히려 아이들이 다독여 주었다고 한다.

자전거는 <모락산아이들> 최고의 프로그램

 모락산 아이들과 선생님
 모락산 아이들과 선생님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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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모락산아이들>이 의왕시에 자리 잡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지난 2005년 부모 이혼으로 외조부모 밑에서 외롭게 살던 9살 권 모군이 집에서 키우던 도사견에게 물려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이 바로 의왕시다.

당시 권 군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충남 서산으로 농사지으러 간 사이 혼자 비닐하우스로 꾸며진 집을 지키다 변을 당했다. 이 사건이 기폭제가 돼서 지역 저소득층 아이들이나 편부모, 조부모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공부방 이 있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다.

통장을 개설하고 후원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모락산아띠'라는 단체다. '아띠'는 순 우리말로 '친한 친구'라는 뜻이다. '아띠'는 '율목생협' 조합원들이기도 하다.

"아띠들이 후원카드 들고 발로 뛰었어요. 아띠는 예전부터 지역에 공부방을 만들려고 노력했었어요. 모금은 생각보다 수월했어요. 권 군 사건 때문에 공부방 필요성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거든요. 1천만원을 무이자로 빌려준 분도 있어요. 그 돈으로 공부방 보증금 했어요."

이혜정(45) 선생은 이렇게 말하며 당시 상황이 기억나는 듯 잠시 고개를 뒤로 젖혔다. 이 선생은 '아띠' 일원이고 <모락산아이들> 창립멤버다. 창립기금은 약3000만원 이었고 전액 뜻있는 인사들 후원으로 만들어 졌다.

이혜정 선생이 아이들과 함께 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6년이다. 96년에서 97년까지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했고 98년에서 2000년까지 자선단체 <한무리나눔의집>에서 운영하는 공부방에서 일했다. 이혜정 선생은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곧 감동이라고 말한다.

"일주일에 절반은 뿌듯하고 절반은 그렇지 않아요. 아이들 마음까지 다독여 주어야 하는 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간혹 있어요.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제법 있거든요. 그럴 때는 한계를 느끼며 제 자신에게 실망해요.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자체가 감동이에요. 산에 갈 때 헉헉 거리는 저를 위해 어떤 녀석은 지팡이를 하나 사 주기도 했어요. 자전거 여행 할 때 힘들어 하는 저를 짐받이에 태우고 간 녀석도 있구요. 하하 기특한 녀석들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나올 때 친절한 석현이는 또 다시 하얗게 웃었다. "안녕, 잘 있어"라고 인사하자 조그만 손을 내밀며 의젓하게 악수를 청했다. 다시 올 때는 "하이 친구"라고 인사를 해야 할 듯하다.

돌아오는 길은 걱정했던 비를 만나서 갈 때보다 더 힘들었다. 하지만 마음은 훈훈했다. 친절한 '모락산아이들' 향기에 취한 덕이다. 친절한 아이들과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까지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공부방 선생님에게서 우리시대 희망을 본다.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 모락산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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