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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베이징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는 가운데 12일 오후 베이징 천안문 광장이 외국인 등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배치된 공안 뒤에는 근대 중국의 상징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이 한창 열리고 있는 가운데 12일 오후 베이징 천안문 광장이 외국인 등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배치된 공안 뒤에는 근대 중국의 상징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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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당신 이리 와봐! 엉? 한국인이야?"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지난 8일 저녁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인근. 베이징 빈민가 골목 앞을 지키고 있던 중국 경찰 공안(公安)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빈민가와 '일반 시민'들을 분리하고 있던 몇몇 공안이 "당신 누군데 사진을 찍는 거야!"라며 위압적인 딱딱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다소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혼잣말을 했더니, 공안은 자기들끼리 "저 사람 한국인이네(너거 런 스 한구어런)"을 주고받으며 태도를 바꿨다.

위압적인 태도는 부드러워졌고, 딱딱한 말투도 순화됐다. 내가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란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한 공안은 "올림픽 기간 동안 이 쪽(빈민가) 출입은 안 된다"며 "사진을 찍으면 곤란하다"고 부드럽게 말했다. 이어 이 공안은 "그냥 가던 길을 갔으면 좋겠다"며 길을 안내했다. 

"그렇게 위세 당당하던 공안이 이렇게 달라지다니..."

이 모습을 지켜본 통역을 맡은 베이징의 한 교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올림픽 때문에 중국 공안이 180도 달라진 것"이라며 "평소 같았으면, 특히 중국인이었으면 바로 잡아서 취조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안의 달라진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하나의 실험을 해봤다. 바로 중국인처럼 행동하며 공안과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것. 공안들은 그녀의 제안에 손사래를 치며 당황해 했다. 하지만 그녀가 팔짱을 끼며 완곡하게 부탁을 하자, 공안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촬영에 응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D조 2차전이 열린 10일 중국 친황다오 스포츠센터스타디움 입구에 중국 공안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한국과 이탈리아의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D조 2차전이 열린 10일 중국 친황다오 스포츠센터스타디움 입구에 중국 공안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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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8년 넘게 거주한 이 교민은 다시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는 100m 앞에서라도 누군가 자신들에게 카메라를 겨누면 바로 달려와 카메라를 조사할 만큼 공안의 기세가 높았는데 이게 왠일이냐"며 놀라워했다.

이처럼 중국 공안은 최근 올림픽 기간에 중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친절하다. 그렇다면 위세 높고 강압적인 것으로 유명한 중국 공안은 달라진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그렇다"가 아니라 "아니올씨다"다. 

현재 중국은 '100년 동안 꾸어온 꿈'인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거의 계엄 수준의 통제를 하고 있다. 베이징의 빈민 거주 지역은 출입증이 있어야 통행이 가능하고, 거리 곳곳에는 무장 보안요안들과 붉은 색의 완장을 찬 치안 담당자들이 배치돼 있다.

올림픽 기간에 베이징에서의 집회 시위는 거의 봉쇄돼 있다. 정부는 집회를 열 수 있는 공원 세 곳을 지정해 줬지만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집회를 신고하러 경찰서를 방문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체포 구금 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계엄 수준의 베이징 올림픽, 핵심은 바로 공안

이렇듯 계엄 수준의 올림픽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을 바로 공안이 담당하고 있다. 이런 공안에 관해 중국인들은 대체로 '관대한' 편이다. 많은 베이징 시민들은 "국가가 하는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어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한 중국인 학생에게 "치안을 담당하는 공안의 통제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물으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올림픽 때문에 과도하게 통제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런데, 요즘 한국은 우리보다 더 하지 않나. 한국 경찰은 올림픽도 없는데 왜 그렇게 강하게 시민들을 몰아붙이나. 솔직히 요즘은 한국 경찰이 더 심한 것 아닌가?"

15일 저녁 서울 한국은행앞에서  제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미 쇠고기 재협상' '집회 시위의 자유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색소 물대포를 쏘며 강제해산시켰다. (왼쪽 사진) 색소 물대포를 뒤집어 쓴 한 시민이 경찰에 강제연행되고 있다. (오른쪽 사진) '815평화행동단' 회원들이 '대통령님 대화해요'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15일 저녁 서울 한국은행앞에서 제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한미 쇠고기 재협상' '집회 시위의 자유 보장'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자 경찰이 색소 물대포를 쏘며 강제해산시켰다. (왼쪽 사진) 색소 물대포를 뒤집어 쓴 한 시민이 경찰에 강제연행되고 있다. (오른쪽 사진) '815평화행동단' 회원들이 '대통령님 대화해요'가 적힌 종이피켓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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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 학생으로 한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는 이 학생은 다소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국내의 사정을 잘 아는 중국 유학 1년차 박아무개(25)씨도 비슷한 견해를 나타냈다. 박씨 역시 "인터넷을 통해 접하는 최근 한국 경찰 모습은, 중국 공안보다 더하면 더 하지 절대 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씁쓸했다. 한국 경찰이 중국 공안보다 "더 심하다"는 말을 중국 베이징에서 듣게 되니 말이다. 그런데, 올림픽 취재를 위해 베이징에 머물며 뉴스로 접한 한국 경찰은 씁쓸함을 넘어 한숨까지 나오게 했다.

지난 8일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릴 때 한국 경찰은 KBS에 난입했다. 경찰버스로 KBS를 에워싼 채로 말이다. 그리고 15일 한국 경찰은 푸른색 색소가 섞인 물대포를 쏘며 촛불시위를 하려는 시민들을 150명 넘게 연행했다.

한국 경찰, 중국 공안과 일란성 쌍둥이?

경찰은 시위 참가자만이 아니라 떡볶이 먹던 시민들까지 무차별 연행했다. 그리고 경찰은 연행된 한 여성에게 브래지어까지 벗으라고 요구했다. 경찰이 서울에서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사실 이쯤 되면, 한국 경찰은 올림픽 기간 중 베이징 시내에서 집회 시위를 금지하고, 골목 곳곳에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있는 중국 공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카메라만 들이대도 현장에서 취조를 하는 중국 공안과 촛불만 보면 거의 경기 수준의 반응은 보이는 한국 경찰은 일란성 쌍둥이다.

안전과 법치를 주장하며 자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건 중국 공안이나 한국 경찰이나 그야말로 오십보 백보다.

정말 백보 양보해서 올림픽도 없는데, 왜 한국 경찰은 "해도 해도 너무 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외국인에게 친절하고 자국민에게 가혹한 중국 공안의 모습에서 한국 경찰이 겹쳐 보였던 건 단지 나만의 일시적인 착시 현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15일 저녁 서울 한국은행앞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 '이명박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제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파란 색소를 섞은 물대포를 쏘며 강제해산 및 검거 작전에 나서고 있다.
 15일 저녁 서울 한국은행앞에서 '한미 쇠고기 재협상' '이명박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제100차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파란 색소를 섞은 물대포를 쏘며 강제해산 및 검거 작전에 나서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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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태그:#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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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북경대전 : 2008 베이징올림픽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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