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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현동 달동네 전경
아현동 달동네 전경 ⓒ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이라 하면 흔히 농촌의 옛 모습들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인구 대부분이 삶의 터전을 도시로 옮겨온 지 꽤 오랜 일이고, 22세기에 돌아보는 오늘 우리의 도시 삶은 제2기 민속의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민속학이 초기에 오지나,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들을 숨가쁘게 쫓아다녔다면 이제는 조금 여유를 찾고 도시 속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 첫 번째 성과가 나왔다. 우리나라 민속연구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신광섭)이 작년 1월부터 1년간 서울 마포구 아현동 일대를 대상으로 벌인 민속조사 보고서 2권이 발간되었다.

아현동은 조선조 한 때 고양군에 속한 적도 있지만 과거에는 '애오개'로 익숙한 서울의 오래된 동네이다. 조선시대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묻은 것에 유래해 생긴 '애오개'의 아현(兒峴)이 아현(阿峴)으로 변하였다.

동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이, 행세 부리던 양반들보다는 예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몰려 살았을 거란 예측은 어렵지 않다. 일제시대 때에는 이 동네사람들이 하도 거칠어 몰매를 맞는 일이 흔히 벌어져 일본 순사들조차 쉬이 방문하지 못했다고 한다. 해서, 경찰서에서 아현동 산 7번지 출신이라면 뺨을 한 대 더 칠 정도였다고 전한다.

 40년된 아현동 목욕탕의 탕 모습. 사진만 보아도 먼 기억 속의 내가 종종 걸음으로 나타나 등을 밀거나, 좁은 탕 안에서 물장난을 칠 것만 같다.
40년된 아현동 목욕탕의 탕 모습. 사진만 보아도 먼 기억 속의 내가 종종 걸음으로 나타나 등을 밀거나, 좁은 탕 안에서 물장난을 칠 것만 같다. ⓒ 국립민속박물관

그렇다 보니 이 동네에는 토박이가 없다. 태어나서 줄곧 산 몇몇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대를 이어 아현동에 터를 내린 사람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살림이 어지간해지면 떠나고픈 마을인 것이다. 그러나 '조국 근대화'란 기치 하에 몰아부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심에 자리한 아현동은 도시빈민들의 불가피한 터전이 되었다.

1권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에는 그곳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의 예전과 오늘의 삶이 담겨져 있다. 어떻게 아현동에 들어와 살게 되었으며, 지금 그들의 삶의 이모저모를 사진과 글로 옮겨 놓았다. 2권 <김종호, 김복순 부부의 물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한 부부의 아현동 삶과 생활재들을 모두 기록했다.

기실 이 책의 내용이 대단히 호들갑스럽게 떠들 만한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달동네가 흔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스스로 겪거나 여러 통로를 통해서 공유된 이야기들이다. 또 물건 이야기라고 해서 전시를 열 수도 없는, 지금 당장 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눈가가 따끔따끔 해지면서 가슴 한쪽은 따뜻해진다. 나의 이야기거나 혹은 내 부모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들이다. 현재의 사실들인데 어쩐지 자꾸 옛날 일로 여겨진다. 아현동 사람들의 삶과 물건들이 대한민국의 표준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2008년 아현동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데도 독자의 감정은 명작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정이입을 뿌리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마력이다.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 계획에 의해 아현동 633번지 일대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도시의 생성과 발전과정에서 끊임없이 재개발은 자행되었고, 도시빈민들은 삶의 질곡을 강제 당했다. 이 보고서가  재개발을 직접 겨냥하지 않지만 보고서를 읽노라면 하나의 지역역사가 매몰되는 안타까움이나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도시민속조사 보고서 2권.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세상에 남의 일이란 없다'와 '김종호, 김복순 부부의 물건이야기-물건, 익숙한 과거와 낯선 현재의 만남'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도시민속조사 보고서 2권.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세상에 남의 일이란 없다'와 '김종호, 김복순 부부의 물건이야기-물건, 익숙한 과거와 낯선 현재의 만남' ⓒ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에 대해서 다소 고답적인 선입견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현동에서 무슨 민속조사를 해'하고 시큰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불어 농경사회의 낡은 흔적이건 새로운 개념의 도시민속이건 대관절 민속이 무슨 역사가 되냐고 왼고개를 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가 왕이나 귀족들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해서 그들이 역사의 주인인 것은 결코 아니다. 역사는 대대로 살아도 한 줄의 역사도 차지하지 못한 아무 것도 아닌 평범한 모든 사람들. 나와 당신이 바로 역사의 주인인 것이다.

민속학이 더없이 발전한다 해도 모든 인류의 이름이 교과서에 등장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노력과 시각의 발전은 인간 스스로에게 역사의 자부심을 갖게 할 것이다. 도시민속연구를 담당하는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 천진기 과장은 "이제는 땅 속의 역사에서 땅 위의 문화로 눈을 옮겨야 할 때"라고 도시민속연구의 의미를 정리한다.

작년 내내 옥탑방 하나를 세내어 거주하면서 아현동 일대를 조사했던 국립민속박물관 조사팀은 올해는 정릉 지하셋방을 얻어 같은 일를 진행 중이다. 이미 행복도시 내 개발예정지역 등지에서 얻은 노하우 중 하나가 상주조사라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조사의 원칙이 되었다.

한편 보고서 발간과 때를 같이 해 도시경관기록보전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는 '문화우리'(culturec.org)에서는 오는 9월 6일(토) 아현동을 조사했던 국립민속박물관 이건욱 학예연구사와 함께 ‘아현별곡’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 공개답사를 준비하고 있다. 오후 4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될 이 공개답사는 5천원의 참가비가 필요하다.

 아현동 골목에서 김치담그는 여인의 뒷모습. 이런 저런 미사여구를 달 것 없이 그냥 아름답다.
아현동 골목에서 김치담그는 여인의 뒷모습. 이런 저런 미사여구를 달 것 없이 그냥 아름답다. ⓒ 국립민속박물관


#아현동 #도시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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