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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로 풀 뽑으며 정치를 생각한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홍광석

"돌아서면 풀!"

전원생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풀이 골치라는 뜻이다. 그랬다. 겨울 마당의 눈 쓸듯 할 수 없는 것이 여름풀이었다. 풀도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더불어 사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다짐을 하고 농사를 시작했지만, 정말 여름풀은 너그러움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요즘 예초기라는 것이 있어 베어야 할 풀은 쉽게 잡을 수 있지만 문제는 호미로 뽑아야 하는 풀이었다. 

지난 봄에 찍은 철쭉길                                       이런 꽃길을 확장하기 위해 좋아하는 색의 철쭉을 꺾꽂이하여 밭에 옮겨 심었다.
▲ 지난 봄에 찍은 철쭉길 이런 꽃길을 확장하기 위해 좋아하는 색의 철쭉을 꺾꽂이하여 밭에 옮겨 심었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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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꺾꽂이해 놓은 철쭉을 밭으로 옮기면서 철쭉의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풀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는데 그건 철쭉이 풀의 키를 넘겼을 때 이야기였다. 10cm도 못되는 철쭉이 며칠 만에 자신의 키를 넘기는 풀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철쭉의 키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철쭉의 뿌리를 감고 있는 풀을 조심조심 뽑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잠시 남에게 맡길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부터 꺾꽂이했던 일이며 비닐하우스 안에 묘목 포장을 만들고 때맞추어 물 주었던 일들이 떠올라 풀 뽑기만은 직접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뙤약볕에 호미를 잡고 풀을 매기란 쉬운 일이던가! 거름을 주지 않아도, 살충제를 치지 않아도 병도 없고 탈도 없이 크는 풀, 그 풀의 줄기는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에 든 호미로는 철쭉 뿌리를 감고 있는 풀의 뿌리를 긁었다. 아마 철쭉이 자라서 뜨락의 꽃길이 되리라는 꿈이 없었다면 비처럼 흐르는 땀을 닦지 않았을 것이다. 8월이 다 가도록 아내와 나는 교대로 철쭉을 지키기 위해 호미를 들고 살았다.

철쭉밭 김매기                         지난 7월 22일 2차 김매기를 하다가  찍은 사진. 풀을 뽑으면 풀의 뿌리에 감긴 철쭉도 함께 달려나오는 경우가  많아 애를 먹었다. 그 때문에 많은 묘목을 잃고 말았다.
▲ 철쭉밭 김매기 지난 7월 22일 2차 김매기를 하다가 찍은 사진. 풀을 뽑으면 풀의 뿌리에 감긴 철쭉도 함께 달려나오는 경우가 많아 애를 먹었다. 그 때문에 많은 묘목을 잃고 말았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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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힘으로만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겨울 보리밭에서 잔디밭이라고 우기는 사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농사는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의 뜻을 따르는 실천적인 지식이다. 그리고  농사는 곡식의 생명을 다스리고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다. 농사는 순간순간 생명의 환희를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감동이며 예술이다.

그리고 농사는 사람과 자연이 화합하는 일이다. 농부가 때에 맞추어 씨 뿌리고 김매기 하며 거름을 주면 자연은 햇볕과 적당한 비를 내려 오곡백화를 길러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농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농기구가 없다면 더 많은 농작물을 수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필요에 따라 다양한 농기구를 만들고 개량해왔다고 본다. 땅을 갈기 위해서는 쟁기를, 땅을 파기 위해서는 삽이며 괭이를, 땅을 고르기 위해서는 써래를, 풀을 베기 위해서는 낫을, 김매기를 위해서는 호미를 만들었던 것이 그런 예일 것이다.

그런데 농기구를 사용하다 보면 한 손으로만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작은 호미로 풀을 뽑는 일도 오른손과 왼손이 협력 없이는 안 된다. 괭이나 삽은 물론 낫으로 풀을 치는 일도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알아야 탈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농사는 오른 손과 왼손의 협동, 손과 발의 협동으로 이루어내는 일이라고 하는 것이다.

잔디밭 김매기                        어쩔 수 없이 사람을 구해 종일 잔디밭의 김매기를 했다. 아주머니들의 부지런한 두 손 놀림에 풀은 뽑히고 잔디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김매기는 쉽지 않은 작업임에 틀림없다.
▲ 잔디밭 김매기 어쩔 수 없이 사람을 구해 종일 잔디밭의 김매기를 했다. 아주머니들의 부지런한 두 손 놀림에 풀은 뽑히고 잔디는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김매기는 쉽지 않은 작업임에 틀림없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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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농부의 조금 엉뚱한 비약일 수 있지만 나는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는 점에서 정치도 농사와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오곡은 물론 원예작물까지 재배하여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리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농사라면, 정치는 경제, 사회, 문화, 교육, 가족, 종교 등 모든 사회 제도를 아울러 조화를 이루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기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농부도 자기 땅에 무엇을 심을까 계획하고, 때에 맞추어 땅에 씨앗을 넣는다. 씨앗이 싹이 나오면 주변의 풀을 베고 풀 속에 갇힌 농작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농기구를 쓸 것인지 선택하여 땀 흘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며, 비료를 주고 농약을 치는 시기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농작물이 익기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안다.

그러나 현재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평범한 농부가 농사하는 것보다 못하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모든 국민이 좋은 농부를 만나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양식과 채소를 얻으려 하듯이, 국민은 좋은 정치 지도자를 만나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교육과 의료에서 차별받지 않는 질 높은 복지사회, 각종 범죄와 국가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국민의 여망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치와 경제 상황을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농부의 처지에서도 위기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그런데 대통령과 주변의 정치하는 사람들만 국민이 느끼는 위기감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하면서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비판 세력을 적이라고 몰아붙인다. 물가가 올라도 원자재가격 상승 탓으로 돌린다. 대학 나온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도 개인의 문제라고 외면한다.

지난 정부를 좌파정부였다면서 정부 기관은 물론 언론사까지 장악하고 말겠다며 온갖 꼼수를 부리고, 물가 불안, 투자가 위축을 걱정하는 국민에게 비전도 제시하지 못한 채 권위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러면서 법의 칼을 자의적으로 휘두르고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높은데도 대통령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매사에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원칙도 없이 마구잡이로 밀어 붙일 수 있을 것인가?

평범한 농부도 한 손으로 괭이와 삽을 다룰 수 없음을 안다. 호미를 잡은 오른손과 왼손의 협동 없이 풀을 뽑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한손으로는 일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 손을 상하거나 자기 발등을 찍기 십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3차 김매기                              8월19일 3차 김매기를 하다 중간에 찍은 사진. 풀을 이기고 살아난 철쭉을 보는 기쁨은 김매기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것이다.
▲ 3차 김매기 8월19일 3차 김매기를 하다 중간에 찍은 사진. 풀을 이기고 살아난 철쭉을 보는 기쁨은 김매기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것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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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가 예술이 되고, 사람을 살리는 기술이 되고,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적절한  농기구를 선택하여 오른손과 왼손이 힘을 합할 때 가능하듯이, 정치도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추종자와 반대자의 비판을 함께 아우를 때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의 모습은 마치 농사를 모르는 농부가 논에 피를 뽑겠다면서  낫을 들고, 철쭉 뿌리를 감은 풀을 뽑겠다고 예초기를 메고 설치는 것처럼 엉뚱하게 보여   불안하고 답답하다.

농부가 심어놓은 농작물을 위해 오른손과 왼손을 함께 사용하듯 대통령이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화합하는 정치, 국민을 살리는 경제, 균형 잡힌 외교, 편견 없는 종교의식으로 국민을 편안하게 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햇볕 좋은날 대통령이 호미를 쥐고 한 시간만 풀을 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덧붙이는 글 | 호미를 잡고 풀을 매는 데는 좌와 우의 협동없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풀을 매는 일은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게재한다.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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