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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의 현석이 가족 외갓집에 다녀온 현석이(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동생 광석이가 필리핀 마닐라공항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마닐라의 현석이 가족외갓집에 다녀온 현석이(오른쪽에서 두번째)와 동생 광석이가 필리핀 마닐라공항에서 장난을 치고 있다. ⓒ 김당

"제 소원은 필리핀에서 시집온 엄마 손을 잡고 엄마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이에요. (양현석, 충북 보은 수정초등학교 삼가분교 1년)"

"선생님도 되고 싶어요, 어른도 되고 싶고요. 짝꿍도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어머니의 고향에 가보고도 싶어요. (문경옥, 전남 구례 토지초등학교 연곡분교 1년)"

아름다운재단과 <오마이뉴스>가 '나홀로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동기획한 '소원우체통 지원사업'의 제1차 사업 대상자인 경옥이와 현석이 가족이 모두 차질 없이 필리핀의 외갓집을 방문했다.

먼 여행길에 두 가족 모두 고생을 했다. 경옥이네 가족은 가지고 간 짐이 많아서 고생이었지만 보름간의 일정이어서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그에 비해 현석이네는 짐은 가벼웠지만 일정(6박7일)이 짧고 교통이 불편해서 고생을 했다.

마닐라 주류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난 가난한 섬, 마스바테

낙후된 섬, 마스바테 현석이 외가가 있는 마스바테(원으로 표시) 섬은 지리상으로는 필리핀 군도의 한 가운데 있지만, 위의 필리핀에어라인의 국내선 항공노선도에서 보듯 마닐라 주류 사회의 관심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가난한 섬이다.
낙후된 섬, 마스바테현석이 외가가 있는 마스바테(원으로 표시) 섬은 지리상으로는 필리핀 군도의 한 가운데 있지만, 위의 필리핀에어라인의 국내선 항공노선도에서 보듯 마닐라 주류 사회의 관심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가난한 섬이다. ⓒ 김당

현석이 외가는 필리핀 마스바테 지역 부리아스 섬의 마비톤이라는 벽촌이었다. 거기에 가려면 마닐라에서 하루 한 번밖에 없는 '아시안 스피릿'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마스바테(마스바테 타운, 인구 7만)로 가서 부두에서 배를 타고 부리아스 섬에 내려 다시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수도인 메트로 마닐라를 중심으로 필리핀 전역을 촘촘한 선으로 잇는 필리핀 국내 항공노선도를 보면 마스바테가 어떤 곳인지가 확연히 드러난다. 노선이 많은, 한국의 부산에 해당하는 세부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지역에도 몇 가닥의 노선이 그려져 있지만 마스바테만은 예외였다.

알다시피 필리핀은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군도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큰 섬과 섬을 잇는 항공교통이 발달했다. 그런데 마스바테주(州)는 제법 큰 섬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이었다. 여객기는 1일 1회 마닐라-마스바테를 운항하는 아시안 스피릿 노선이 유일했다. 그마나 툭하면 결항이었다(관련기사 참조).

다행히 현석이네 가족은 20일 마닐라에서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아침 일찍 마스바테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주도(州都)인 마스바테 타운의 부두에 가서 부리아스 섬으로 가는 배도 탔다. 그런데 중간에 배가 고장이 나서 2시간 동안 수리하느라 현석이네는 6시간이 넘게 걸려서 마비톤에 도착했다. 마비톤은 큰 배가 닿기에는 부두가 작아 현석이네는 타고 간 배가 정박해 있는 동안 소형 패신저 보트로 옮겨 타서 섬에 내렸다.

그럴 만도 했다. 세계적인 여행 가이드북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 시리즈의 <필리핀>편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섬 마스바테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지리상으로는 필리핀 군도의 한 가운데 있지만 정치·경제·문화를 좌우하는 마닐라 주류 사회의 관심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곳이다. 가난한 섬 마스바테는 오래 전부터 지방 정치가들의 무자비함으로 유명했다. 필리핀의 다른 섬에 있는 농장과 마찬가지로 마스바테의 광활한 가축 방목지는 소수 부유한 가문이 소유한 반면, 대다수 주민들은 바다 및 농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선물' 질문에 끝내 울음 터뜨린 까냐레스씨

오늘만 같아라 7년만에 친정집을 찾은 현석이 엄마 까냐레스씨가 모처럼 활짝 웃었다.
오늘만 같아라7년만에 친정집을 찾은 현석이 엄마 까냐레스씨가 모처럼 활짝 웃었다. ⓒ 김당
현석이 엄마 까냐레스(41)씨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 먼 곳에서 2000년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까냐레스의 말에 따르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한곳씩 있는 마비톤의 인구는 500여 명. 까냐레스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인 아버지 마티아스(70)와 엄마 까나테 사이에서 2남4녀 중 둘째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마스바테 타운에서 칼리지를 졸업(타갈로그어 전공)했다. 그후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교사인 아버지를 도와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로도 일했고, 싱가포르와 홍콩 등지에서는 간호사와 식당 종업원으로도 일했다.

그러다가 98년 홍콩의 한 식당에서 일할 때 통일교를 믿게 되었고, 당시 통일교 신도인 학 학부형이 충북 보은의 한 학교 기사로 근무하던 양재붕(51)씨를 소개해 두 사람은 1999년 홍콩에서 통일교 합동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2000년 4월 한국에 와서 다시 정식으로 결혼했다.

까냐레스는 이듬해인 2001년 11월 남편 양씨와 함께 친정을 처음 방문했다. 그때 까냐레스는 부모님께 미화 300 달러를 선물로 드렸다고 한다. 당시 양씨는 직장 때문에 1주일 만에 돌아왔고 그녀는 한 달 동안 머물다가 왔다.

필리핀은 '인력 수출국'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이들의 해외송금액이 필리핀 국부(國富)의 25%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다. 거기에다가 필리핀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인정과 유대관계가 끈끈한 것으로 유명하다.

7년간의 복받친 설움 현석이 엄마는 "왜 귀국선물 보따리가 없냐"는 질문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7년간의 복받친 설움현석이 엄마는 "왜 귀국선물 보따리가 없냐"는 질문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 김당
그런데 그녀에게는 이번이 7년 만의 두 번째 친정 방문인데도, 한국으로 시집간 다른 필리핀 여자들과 달리 '귀국선물 보따리'가 보이지 않았다.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만나서 "리자 B. 암비씨(경옥이 엄마) 짐은 이렇게 큰데 당신 짐은 왜 이렇게 작냐?"고 질문할 때만 해도 그녀는 말을 아끼며 웃음으로 질문을 피해갔다. 그러나 친정집에 다녀온 뒤에 마닐라에서 만났을 때는 같은 질문을 하자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까냐레스는 "처음 갔을 때만 해도 300달러를 가지고 갔는데 이번에는 돈이 없어 선물을 사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7년 동안 참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복받친 듯 "친척 중에는 아픈 분도 있는데 드릴 약값도 못 가지고 왔다"고 울먹였다. 까냐레스의 아버지는 교사 출신이지만 은퇴했기 때문에 친정은 가난했다. 친정집에는 전화도 없고 냉장고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복받친 감정의 원인이 꼭 경제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7년 전에 친정을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남편이 친정아버지에게 "아이를 낳으면 대학에 갈 때까지는 아이들을 필리핀에서 키우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아 아버지가 충격을 받았고 자신 또한 무척 혼란스럽다고 했다.

취재진도 혼란스러웠다. 취재진은 취재를 계속하기보다는 그녀보다 한국 생활을 더 오래한 사람으로서 그녀에 대한 '인생의 조언자'가 되어야 했다. 현석이네가 겪고 있는 혼란과 불화의 상당 부분은 의사소통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친정아버지의 희망은 다음에 집에 올 때는 모두 영어를 배워오는 것"

동생이자 친구 사이 '나홀로 입학생' 현석이에게 광석이는 동생이자 유일한 친구다.
동생이자 친구 사이'나홀로 입학생' 현석이에게 광석이는 동생이자 유일한 친구다. ⓒ 김당


현석이네는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현석이까지 모두가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무척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취재과정에서 양재붕씨는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을 했고, 현석이는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 하지 않았다.

현석이의 내성적인 성격은 환경적 요인 탓이 큰 것으로 보였다. 현석이처럼 짝꿍이나 또래 친구가 없는 '나홀로 입학생'의 경우 사회성 부족이 가장 일반적인 학습 장애요인으로 꼽힌다. 현석이 또한 친구가 없다 보니 혼자 노는 것에 익숙했다.

그런 현석이게 유일한 친구는 동생 광석이(6)다. 현석이는 공항에서도 광석이하고만 대화했다. 마을에는 내년 취학연령 아동이 없어 삼가분교에는 내년에 입학생이 없다. 다행히 내후년에는 광석이를 포함해 2명이 입학할 예정이다. 결국 내년까지는 동생이 현석이의 유일한 친구인 셈이다.

내성적이기는 까냐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그녀를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가이드 대니씨는 "한국말도 잘 못할 뿐만 아니라 필리핀 사람인데도 타갈로그어(국어)와 영어(공용어)도 서툴러 대화하기가 무척 힘들었다"고 토로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녀는 대학에서 국어(타갈로시)을 전공했으며 영어도 잘했다.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아 말을 아낀 것이 말을 못하는 것으로 '오해'를 야기한 것이다. 그녀는 "아들(현석)이 영어 쓰는 것을 싫어해 집에서는 한국어만 쓴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8년을 살았지만 한국어는 여전히 서툰 편이었다.

아이들은 영어와 타갈로그어를 못해도 외가에서는 다 통했다. 양재붕씨는 "비록 말은 못하지만 아이들은 손짓과 몸짓으로 다 통하더라"면서 아이들은 외삼촌네 아이들과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수영도 하면서 신나게 놀았다고 했다. 아이들도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해 했다. 까냐레스는 "아버지가 남편과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커뮤니케이션이 안되어 안타까워했다"면서 "아버지의 희망은 다음에 집에 올 때는 모두 영어를 배워오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석 파이팅! 조철호 교장 선생의 감사 편지

무슨 생각을 할까 현석이가 마닐라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할까현석이가 마닐라 국제공항으로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 김당

취재진은 양씨에게 필리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만큼 영어를 배울 것을 권유했다. 현석이에게는 엄마가 영어 쓰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오히려 엄마한테서 영어를 배우라고 충고했다. 까냐레스씨에게는 한국어를 더 배우고 이웃과 대화할 기회를 더 자주 가질 것을 조언했다.

그리고 특히 그녀에게는 초등학교 보조교사 경력과 영어 실력을 살려 현석이 학교에서 '방과후학교' 영어강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그렇게 하면 약간의 수입도 생길 뿐만 아니라 이웃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한국에서는 교사를 존경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양씨도 아내가 방과후학교 강사가 되는 것에 적극 찬성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삼가분교의 본교인 수정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도 현석이 엄마의 한국생활 적응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난 7월 20일 오마이뉴스가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전국의 '나홀로 입학생' 110여 명 가운데 36명을 초청해 '더불어 함께 입학식'을 개최했을 때, 관련 기사에 맨 먼저 '현석! 파이팅, 아름다운 재단과 오마이뉴스 관계자님께 감사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댓글로 격려 편지를 보내준 분도 조철호 수정초교 교장이었다.

"저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 수정초등학교(삼가분교장 포함) 교장 조철호입니다. 본교의 나홀로 입학생 양현석군과 그 가족을 초대해 주심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우리 학교 기사님이신 아빠와 필리핀 엄마 그리고 동생 광석군은 정말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한국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선생님들과 봉사자들이 팔방으로 노력하고 다양한 다문화 교육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아직 성과를 논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일이 있기를 기대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번을 좋은 기회로 현석이네 가족이 더욱 활기차고 현석이 엄마도 한국 생활이 더 활기차고 즐겁기를 기대합니다."

조 교장은 이어 거듭 감사를 표하며 "기회가 되면 꼭 속리산 수정초등학교를 찾아달라"고 덧붙였다. 다음에 취재진이 수정초교를 방문했을 때는 현석이 엄마가 방과후학교의 영어 선생님이 돼 있기를 기대해 본다.

성격이 내성적인 현석이 현석이(맨왼쪽)가 지난 7월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다른 '나홀로 입학생'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하고 있다.
성격이 내성적인 현석이현석이(맨왼쪽)가 지난 7월 '더불어 함께 입학식'에 참석한 다른 '나홀로 입학생'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 놀이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방과후학교 영어선생 될 수 있을까 조철호 수정초교 교장은 아이들의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위해 현석이네 같은 다문화가정을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방과후학교 영어선생 될 수 있을까조철호 수정초교 교장은 아이들의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위해 현석이네 같은 다문화가정을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 김당



#소원우체통#나홀로입학생#양현석#수정초교 삼가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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