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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평화.망향의 의미 퇴색시킨 임진각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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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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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경 거실에서 리모콘으로 TV채널을 돌리다 한 영화채널에서 영화 <박치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는 끝날 무렵이었는데, 젊은 재일조선인의 죽음을 사람들이 흐느끼는 장면과 함께 교복차림의 남자가 기타를 강물에 던진 후 라디오 생방송에서 일본에서는 금지된 노래 '림진강'을 부르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짧은 장면을 보고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어와 우리말이 묘하게 섞인 구슬픈 '림진강' 노랫소리는 한동안 머리와 가슴, 입안에 남아 세차게 울려댔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림진강'(박세영 작사/고종한 작곡)이란 노래는 남북분단의 슬픔과 통일의 염원을 담은 노래로 일본에서는 1968년 '더 포크 크루세더스'가 번역해 발매했지만 금지곡으로 선정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림진강'을 일본어로 번역한 마츠야마 타케시는 중학생 때 '림진강'을 듣고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어 2002년 <소년M의 임진강>을 집필하였고, 이를 읽은 한 영화사 대표가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에게 이 책을 건네면서 1968년 변화와 변혁의 시대를 맞이한 일본사회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재일조선인 2세와 일본 젊은이들의 우정과 갈등, 사랑을 그린 영화 <박치기>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남과 북을 이어주는 철도와 임진강역
그 영화에서 남북분단을 가슴 아프게 노래한 '림진강'이 떠올라 자전거 여행 둘째날의 기착지를 임진각으로 잡았습니다. 남과 북을 경계짓고 같은 민족끼리 철조망을 치고 서로 경계하며 총부리를 수 십년간 겨누고 고향땅과 헤어진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서로 오가지 못하게 한 그 망향의 강을 보기 위해 문산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임진각으로 내달렸습니다. 문산에서 임진각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다시 어렵게 이어진 임진강 철교를 건너 도라산역으로 가기 전 기차가 잠시 멈추는 임진강역에서 땀을 식히고는 코앞에 다다른 임진각으로 향했습니다. 어렸을 적 임진각에 와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위해 전쟁무기를 전시해 놓았나?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임진강까지 다가가다보니 곳곳에 분단을 뛰어넘어 통일과 평화를 바라는 조형물과 전시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중 경기평화센터 옆에 자리한 '자유와 평화를 위한 전시마당'에서 전시 의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쟁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는게 눈에 띄였습니다. 특히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키고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미군의 탱크와 장갑차 등을 말입니다.
이 뿐만 아니었습니다. 남북분단으로 달릴 수 없는 철마는 기차카페와 놀이기구로 전락해 있었고 그 반대편 주차장 한편에는 바이킹 등 대형 놀이기구가 들어선 대형 놀이공원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임진각은 평화와 통일, 망향의 의미까지 팔아먹는 말그대로 관광지로 변해 있었습니다.
망향의 넋을 노래한 '림진강'과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임진강
그 씁쓸한 모습을 뒤로하고, 임진강 가까이 다가가니 망배단과 초병이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철조망 너머로 낡은 교각만 남은 철교와 새로 북과 이어진 철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북녘땅이 보이는 망배단 앞에서 잠시 눈을 감고 설날이나 추석 명절 때마다 이곳을 찾아 죽을때까지 고향을 그리던 넋들을 기리고, 임진강과 철교가 내려다 보이는 벤치에 걸터앉아 분단과 통일, 평화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그리고 영화 <박치기>에서 구슬프게 노래한 '림진강'의 노랫말을 떠올려봤습니다.
임진강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내리고
물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 고향 남쪽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아 원한 싣고 흐르느냐
강 건너 갈밭에서 갈새만 슬피 울고
메마른 들판에서 풀뿌리를 캐건만
협동벌 이삭바다 물결 위에 춤추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는 못하리라
내 고향 북녘 땅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 하리라
임진강 흐름을 가르지를 못하리라
망향의 넋이 펄럭이는 평화누리와 아기자기한 문산도서관
철도와 도로가 남과 북이 이어지고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와 통일이 오고 사람들이 임진강을 건너 오가게 될 때 다시 임진각에서 자전거로 북녘땅으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평화누리를 잠시 둘러보고 문산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자전거 여행 둘째날의 최종목적지가 임진각과 문산이 아닌 전곡이었기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임진강과 마주한 그 짧은 순간만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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