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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강타하는 가운데, 경제 문제가 한 달 반 앞으로 다가온 미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은 자신이야말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적임자라며 유권자의 경제 불안 심리를 파고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경제는 민주당이 잘한다'는 인식이 강할 뿐만 아니라, 매케인의 경제위기 해법이 부시 행정부와 거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금융위기는 오바마를 긴장시킨 '페일린 효과'를 집어삼키고 있다.

미국 금융위기, '팍스 아메리카나' 종말 재촉한다

미국의 금융위기는 미국 대선과 세계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 전반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이다. 우선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서는 미국이 주도해온 '고삐풀린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미 부시 8년간 미국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비등해진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금융위기까지 촉발됨으로, 미국식 체제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

또한, 미국 금융위기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말을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만드는 데 결정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물 경제의 뒷받침 없이 주택과 파생금융상품의 '뻥튀기'에 의존해온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지탱해준 힘은 외국의 중앙은행들이 미국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해준 것에서 나왔다. 미국 정부가 AIG에 850억달러를 긴급 투입한 것처럼 자국의 금융기관 살리기를 미국 국민의 세금에 의존하면 할수록, 미국 정부의 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임을 예고해준다.

미국 채권의 최대 매입국은 미국의 우방인 유럽연합뿐만 아니라, 전략적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석유부국들도 있다. 이들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외환보유고는 자국의 이익이 미국과 충돌할 때, 막강한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이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 데에는 이러한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지닌다. 미국이 러시아를 선진 8개국 회의(G8)에서 축출하는 등 경제제재를 시도하면,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파이프로 유럽연합에 보복을 가할 수 있고, 미국에는 채권 매입 중단이나 매각으로 미국 경제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가장 강력한 전략적 지렛대를 확보할 수 있게 된 나라는 중국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1조8천억 달러를 돌파한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중국 경제의 깊은 주름살이 되고 있지만, 전략적으로는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만 사태가 불거지거나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로 불거진 '북한의 급변 사태 대응 논란'과 관련해서,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이 넘쳐날 정도로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 역시, 경제적 요인 못지않게 이와 같은 전략적 요인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의 금융위기는 앞으로 미국의 경제파워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권력도 크게 잠식할 것이 확실시 된다. 오바마든 매케인이든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미국 단일 패권 시대의 종말'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차기 미국 대통령은 무너지는 미(美)제국의 '구원' 투수보다는 '패전처리' 투수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왜, 미국인은 '안보는 공화당'이라고 믿게 되었을까?

잇따른 금융위기로 경제가 최대 이슈로 부각하고 있지만, 외교안보 사안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직면한 외교안보 사안들도 경제 못지 않게 미국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남은 40여일간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외교안보 정책을 분석·전망할 때 두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하나는 공약의 1차적인 대상은 국제사회라기보다는 국내 유권자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세의 변화가 반영되어 일관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특징은 1기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특징과 연결되어 있다. 대체로 1기 행정부는 미국의 중장기적 국익과 자신의 업적보다는 '재선'이라는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 이에 따라 누가 당선되든 국제여론과 미국 내부 여론 사이의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국제사회에서는 오바마를 지지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반면 미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외교안보정책에 있어서는 오바마보다 매케인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이를 반영하듯 매케인은 안보 이슈를 부각시키는 것을 핵심적인 선거 전략으로 삼고 있다. 반면 오바마는 안보 문제에 다소 수세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서민과 중산층 경제 살리기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외교안보 이슈에 있어서 민주당보다 공화당이 더 잘 다룰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일까? 우선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베트남 개입을 시작했고, 같은 당의 닉슨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하면서 전선을 확대하고 패배가 확실해졌음에도 대규모의 미군을 계속 베트남에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베트남전 패배의 책임을 민주당의 케네디와 존슨으로 돌리는 경향이 강하다.

민주당의 카터와 공화당의 레이건을 거치면서 '안보는 공화당'이라는 신화는 더욱 강해졌다. 카터는 소련과의 핵군축에 적극 나섰다가 역풍을 맞았다. 특히 이란 혁명과 인질 사태, 그리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더구나 "미국인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비정상적인 공포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 두고두고 구설수에 올랐다. 카터가 모스크바 올림픽을 보이콧하고, 임기 동안 군사비 지출을 2배 가까이 늘렸으며, 유럽에 퍼싱-2 핵미사일 배치를 추진하는 등 '나약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벗고자 했지만, 등돌린 미국인들은 그를 역사상 가장 인기없는 대통령으로 간주하게 되었다.

반면 카터를 '겁쟁이'로 공격하면서 당선된 레이건은 '안보는 공화당'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주역이 되었다. 집권 직후 이란에 억류되어 있던 인질을 석방시키는데 성공했고,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부르면서 미사일방어체제(MD)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전략방위구상(SDI)을 천명했다. 그레나다를 침공하는 등 중남미에서 각종 비밀 작전을 수행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회주의의 씨를 말리려고 했다.

특히 레이건의 퇴임 직후에 베를린 장벽과 소련이 무너지면서 미국인들은 그를 미소 냉전의 승리자로 기억한다. 아버지 부시 역시 냉전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1차 걸프전에서 승리하면서 '안보는 공화당'이라는 이미지 형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안보 대통령'을 자임했던 레이건-부시를 거치면서 미국 경제에는 쌍둥이 적자로 깊은 주름살이 패였다. 그러자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를 선거 슬로건으로 들고 나와 '승전 대통령' 부시를 꺾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클린턴 8년은 역설적으로 공화당의 안보 우위를 고착화시키는 기간이기도 했다.

클린턴에게는 '병역기피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고, 동성애자 군입대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해 보수파로부터 강한 비난에 직면했다. '절대 안보' 신화의 상징이었던 MD에도 미온적이었고, 군사비도 냉전시대의 절반 정도로 줄였다. 경제는 어느 정도 살아났지만,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안보 문제를 잘 다룬다'는 여론의 격차는 30%까지 벌어졌다.

'안보는 공화당'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자, 그 최대 수혜자는 현재 미국 대통령인 부시가 되었다. 병역기피자였던 부시가 베트남 전쟁 참전자인 고어와 케리를 잇따라 꺾은 것이다. 부시가 고어를 꺾자 클린턴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람들이 불확실성을 느낄 때, 그들은 옳지만 약해 보이는 사람보다 틀려도 강해 보이는 사람을 선호한다."

안보 문제에 대한 미국 국민의 민주당에 대한 불신은 2004년 대선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당시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더 불안해졌다는 점에 50% 안팎이 동의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케리보다 부시가 국가안보를 더 잘 다룰 것이라는 여론이 18% 높게 나타난 것이다.

'안보는 공화당'이라는 이미지 형성에는 미국 군입자들의 특성 역시 크게 작용하고 있다. 입대자들의 대다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고 공화당 텃밭으로 불리는 남부와 중부에서 지원자들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는 군인 가운데 상당수가 본인의 정체성을 공화당으로 간주하게 한다.

이러한 신화를 반영하듯 1968년 이후 미국인들은 미국이 전시에 있거나 위험한 상황이라고 느낄 때는 공화당 후보를, 평온한 시기라고 생각할 때에는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유일한 예외가 있는데, 바로 조지 W 부시이다.

안보일까 경제일까

2008년 미국 대선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알-카에다를 비롯한 테러집단이 핵무기를 손에 넣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정보도 있다. 이란과 북한과는 핵문제로 갈등 상황이 있고, 신냉전이 거론될 정도로 러시아와의 관계는 악화되어 있다. 한마디로 안보 불안이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지지 않았다면, 매케인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우선 이러한 안보 불안의 가장 큰 책임은 바로 부시의 공화당 정권에게 있기 때문이다. 안보 이슈가 강해질수록 '안보는 공화당'이라는 신화와 '부시 책임론'이 충돌하게 되는 까닭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대량살상무기 및 9.11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이라크로 총구를 돌리면서 아프간의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패배의 위기에서 구해주었다며 '부시 책임론'을 부각시키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부시-공화당-매케인의 3자관계이다. 쉽게 말해 미국 국민이 매케인을 부시 및 공화당과 동일시하느냐의 문제이다. 민주당은 "매케인의 당선은 부시 3기가 될 것"이라며, 부시와 매케인을 한통속으로 묶는 것을 핵심적인 선거 전략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매버릭(이단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매케인은 공화당 내에서도 개혁론자로 알려져 있으며, 오래 전부터 부시와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특히 워싱턴 정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런닝메이트로 선정함으로써 변화와 참신함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잇따른 금융위기는 최대 선거 쟁점을 안보에서 경제로 옮겨 놓고 있다. 이는 오바마에게는 호재로, 매케인에게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8월말 <뉴욕타임즈>와 CBS 공동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40%는 최고 관심사를 '경제'라고 답한 반면, '이라크 전쟁'은 15%, '테러리즘과 국가안보'는 9%에 그쳤다.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 오바마는 65%를, 매케인은 54%의 지지도를 나타냈다. 그런데 이러한 조사는 '리먼 사태'가 터지기 전에 나온 것이다. 미국 경제 불안이 수그러들지 않으면, 오바마에게 더욱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2008년 미국 대선, '안보는 공화당' 신화 깨지나

잘 알려진 것처럼, 오바마는 미국의 적대국가의 지도자와도 조건없이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외교없는 부시의 안보정책'이 오히려 미국과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미국을 국제사회에서 왕따시켰다는 비판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 맞서 매케인은 오바마의 외교정책을 순진하고 위험한 유화정책이라고 비난한다. '유화'는 지난 50년간 공화당이 민주당을 공격하는데 가장 즐겨 사용되는 표현이다. 그만큼 그 위력은 대단했다.

그러나 과연 공화당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보수주의가 미국 안보를 튼튼하게 했는지는 의문이다. <뉴 리퍼블릭> 편집장인 피터 스코블릭은 오히려 지난 50년간 미국의 보수주의가 미국 안보를 망쳐놨다고 비판한다. "악마와는 공존할 수 없고, 그래서 대화와 협상을 유화와 동일시해온 보수파"는 평화보다는 갈등을, 군비통제보다는 군비경쟁을, 실용보다 이념을 선호함으로써 오히려 미국의 안보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제국주의적 발상은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평범한 상식마저도 무시한 것이다. 미국식 가치가 유일하다는 관념은 다른 가치와 문화에 대한 부정과 제거를 전제로 깔고 있어, '문명 충돌'의 위험성을 야기한다.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집착은 다른 나라도 갖고 싶은 욕망을 부채질한다.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미국이 MD에 집착하려는 이유를 많은 나라들은 선제공격용으로 간주한다. 코소보가 독립권한이 있다면, 남오세티야와 압하지하가 안될 이유는 무엇이냐고 러시아는 되묻는다.

오바마 지지자들은 안보 문제를 피할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미국의 안보를 오히려 불안하게 만든 '부시 8년'은 '안보는 공화당'이라는 미국인의 신화를 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태그:#미국 대선, #오바마, #매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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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2008 미국 대선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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