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센(?) 여자, 공지영을 만났다. 한국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각광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공지영. 7년간의 긴 공백을 깨고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통해 더욱 독자들에게 가까이 다가선 그녀는 이후 작품활동에 전념하며 대중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이런 그녀가 그동안의 속내를 속 시원히 내뱉고 있는 <괜찮다, 다 괜찮다>를 생일 선물로 받아 반갑게 읽게 됐다. 이번 책은 전문 인터뷰어(Interviewer) 지승호와 공지영의 인터뷰 내용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만 만나던 공지영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옆에서 지켜 듣는 듯한 기쁨을 얻게 되었다.

 

공지영은 소위 '부르주아 가정의 딸'이라는 출신성분(?)을 가지고 있어 학생운동 시절이나 노동운동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혹평을 받게 되었다. '출신성분'이라는 단어의 어감 또한 지금에서는 과거 봉건주의 사회 혹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나 쓰인 것으로 어색함을 감출 수 없다.

 

이에 대해 공지영 역시 명쾌하게 반문한다. 물론 다소 자기변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자신을 옥죄어 왔던 쇠사슬을 끊어낸 공지영이 내린 결론일 것이다.

 

"부르주아 노동운동을 하다가 도망간 것은 부르주아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 리버럴한 기질 때문이에요…. 저는 공동체를 진짜 싫어하거든요…. 누가 나를 아는 게 싫어요…. 부르주아라고 욕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게,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떻게 해요. 아니 노력해서 그리로 간 것이면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나의 출신 성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니, 출신 성분을 가지고 욕하는 건 뭐냐는 거지, 그게 봉건이지.(웃음)"

 

이 대목에서 작가 공지영의 퍼스낼러티(Personality)에 대해 짐작이 간다. 그녀는 무척이나 개인주의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정체성과 자의식에 대한 한 똑 부러진 사람이다. 그래서 자기주관이 확실하고 그런 자신에 대해 굳이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

 

세 번 이혼과 성이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을 가진 여자라는 그의 굴곡진 인생 이력에 대해서도 그녀는 이제 담담하게 말한다.

 

"'우리 아버지는 보수주의자고, 나이가 그렇게 많은 사람인데도 그런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이 사람은 진보주의자고, 많이 배운 사람이고, 운동권인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저한테 필요 이상의 분노를 일으켰던 것 같기도 해요."

 

공지영 그녀는 자신의 의사가 충분히 인정받고 보호받는 인생을 원한 것이다. 물론 그녀가 자라온 환경이 그러했고, 자신의 아버지는 그러한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공지영은 자신만의 독특한 '끼'를 양보하기에는 그 끼가 너무 많이 보유한 사람이었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것을 소화해 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이혼경력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녀의 독특성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된 계기로 삼게 되었다.

 

그녀의 소설 창작관은 이러했다.

 

"여성 작가들은 전업 작가가 없기 때문에, 삶의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성 작가들이 명맥을 이어가는 힘이 거기서 나오지 않나 싶어요…. 소설은 더군다나 시장 한복판에 서 있어야 되거든요. 산사에 가서는 선시를 써야지."

 

"경험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써요. 프로라는 것은 돈 받고 글과 교환하는 것인데, 상품의 질이 문제죠."

 

그녀는 "글은 시장 한복판에서 써야 한다"는 대중적이며 다소 서민적이기도 한 지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그녀의 삶의 경험이 만들어 준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다. 결국 그녀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가 대중영합적인 데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자신의 글을 읽어 주고 자신에게 '밥'을 주는 독자들에게 보다 질 높은 상품을 전달하겠다는 대중적 글쓰기의 창작관을 용기 있게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글을 쓰기 위한 소설가의 자질에 대해서 그녀는 냉정하다.

 

"어느 정도 타고난 감수성, 언어 감각은 분명히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기본적으로 있다면 그다음에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을 읽어내는 힘, 통찰력 같은 것들이 필요하겠죠."

 

"아무리 노력해도 (글쓰기가) 안 되는 사람이 있다"고 밝힌 그녀는 작가로서의 타고난 감수성과 언어 감각에 대해 강조하며 그다음으로 노력과 통찰력 등을 제시한다.

 

작가 지망생들이라면 다소 의기소침해 질 수도 있는 대목이지만 이는 작가 공지영이라는 고수(高手)의 시각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될 것이다. 비범한 글쓰기의 재주를 지닌 그녀가 사회 속에서 견뎌 내오며 체득해 온 자신만의 '생존전략'은 결국 시장 속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과 기호를 추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대중과는 멀어질 수 있는 여지를 공지영은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필체로 녹아들고 있는 것이다.

 

비범함 속의 소소함이라고 할까? 그녀는 공·지·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만들어 낸 숱한 이슈와 논쟁을 뒤로하고 어느 순간 평안의 단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달관한 자세로,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속이지 않고 타인을 속이지 않는 자세로 자신을 이야기 했다.

 

필자 또한 <괜찮다, 다 괜찮다>를 읽는 동안 그녀의 감출 수 없는 자신감과 당당함에 때론 당황하기도 하고, 오해의 마음도 생겼지만 이제 나 또한 "괜찮다, 다 괜찮다"를 내뱉게 된다. 그녀의 삶이 이제 어느 정도 가슴으로 메아리쳐 돌아오기에. 그리고 오랜 아픔과 침묵 속에서 이겨낸 자아성찰(自我省察)에서 비롯된 진솔한 이야기였음을 믿기에 말이다.


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알마(2008)


#괜찮다, 다 괜찮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