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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 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것을.

 

그가 부르다 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내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으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서른 살, 혹은 삼십대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20대는 인생에 대해 너무 서툴고 자아상도 확립이 채 되어 있지 않은 서툰 열정과 꿈으로 뭉친 때라면, 30대는 꿈과 현실이 서로 타협하고 통합하면서도 현실 위에 발을 딛게 되는 그런 시기가 아닐까. 그래서 30대는 또한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극도의 괴리감을 겪는 시기이기도 하다.

 

문득, 꿈과 현실의 충돌로 내 스스로 힘들어했던 그 혼돈의 긴 터널이 떠오른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내가 지나온 30대와 오늘의 30대는 또 얼마나 다를까.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김혜남/갤리온)는 현대를 살아가는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로, 대한민국에서 30대 전후를 살아가는 낀 세대들을 위해 심리학적 통찰로 분석하고 서른 살의 삶과 일, 사랑, 그리고 인간 관계에 대해 애정 어린 관심과 격려를 보내고 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밝혔듯이 '서른이란 나이는 심리학에서 특별한 이름이 없는 무명의 나이이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발달을 설명할 때 인생의 큰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를 중심으로 아동기, 사춘기, 21~40세까지의 초기 성인기, 40대의 중년기, 50대의 갱년기, 그리고 60대 이상의 노년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30대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다. 그야말로 낀 세대인 것이다. 세대와 세대 사이에 뭉텅거려 묶여 있는 세대이다. 심라학자 에릭슨도 30대를 발달학상 뚜렷한 과제나 변화가 없기 때문에 이 시기를 일컬어 '미지의 시기'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서른 살은 어떤가. 낀 세대로 살아가는 서른 살은 이도 저도 아닌 힘들고 고달프고 우울하다. 예전에는 수무 살이 넘으면 정서적 경제적 독립을 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직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는 시기이다.

 

그런데 오늘 현실은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오늘의 30대는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보편적으로 배우고 준비해야 할 것이 점점 많아져서 독립의 시기가 서른 살 전후로 늦춰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20대는 앞으로 실질적 어른이 되기 위해 여러 가지 연습을 하는 시기라면, 서른 살은 진정한 독립을 이루는 시기여야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20대의 과도기적 성격이 사라진 지 오래고, 취업의 문이 좁아진 요즘 20대는 젊음의 발산과 실험기라는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준비기간 없이 서른 살을 맞게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저자는 이어서 지금의 서른 살 전후의 세대를 이렇게 표현한다.

 

"지금의 서른 살은 어린 시절 경제 호황기의 수혜자로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대학입할 전후로 IMF를 겪고 그 여파로 인해 심각한 취업난과 고용불안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어느 세대보다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20대를 보내고 서른 살을 맞이한 것이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직장을 얻었다 해도 안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뚜렷한 목표가 없는데도 불안감이라도 해소하고자 학원으로 몰려간다."

 

이들이 무슨 자아실현이나 성취감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불안감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휴유증으로 나타난 사람들이 바로 '갤러리 맨'이다. 갤러리 맨이란 골프 관람객인 갤러리를 비유한 말로, '직장의 모든 일을 마치 골프 구경하듯이 관망하는 직장인'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고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사회 속에서 진득하게 오랫동안 사람을 사귀고 또 자기가 맡은 직장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할 수 없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이다.

 

갤러리맨들의 출현은 오늘의 우리 사회상을 간접적으로 말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 해도 줄을 잘 못서면 어제 있었던 책상이 오늘 없어지는 이런 세상을 살면서 나름대로의 눈치 빠른 선택인 것이다. 쿨하거나 '쿨함'을 외치는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김별아의 소설 <이상한 오렌지>에서 쿨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쿨하다는 것은 한없는 상냥함이다. 그것은 질척대는 삶의 중력권 밖에 있다는 얘기거든. 그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는 거야. 살기 위해서는 일상에 신음하기 마련이니까."

 

쿨하거나 쿨함이란 것으로 무장하려는 젊은이들, '쿨함에 목숨 거는 젊은이들은 말 그대로 멋지고 자유롭고 세련되게 보이기 위해 애쓰지만, 알고 보면 한치 앞도 모르는 시대에서 살아남고자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고, 외로우면서도 상처 입기 두려워 외로움을 참아 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슬픈 현실인가. 인간관계나 남녀간의 사랑과 일, 이 모든 일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고 괴테는 말했던가. 서른 살, 그 방황과 혼돈에 놓인 그대들에게 저자는 방황은 결코 방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제 자리로 돌아와 잘 서기 위한 방황인 것이라고 격려한다. 이 책의 말미에서 "서른이라는 나이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제목에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응원의 말을 보낸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또다시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당신에게 선물이 될 것이다. 30년의 세월이 주는 선물, 그것은 바로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당신의 인생을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능동성이다. 우선 서른 살의 당신에게는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도 되는 자유가 있다. 물론 그 무엇도 보장된 것은 없고 확신한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완전히 독립한 당신은 자유롭게 당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이 무엇인가를 절실히 원하고 그것을 향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간다면 꿈은 이루어질 것이다. 또 하나, 서른 살의 당신에게는 자신에 대한 확신과 능동성이 있다. …(중략)… 젊음과 나이 듦의 장점이 서로 만나고 섞이기 시작하는 나이인 서른의 당신은 당신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러니 당신 자신을 믿고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디뎌라. 왜냐하면 당신은 언제나 옳으니까."

 

1959년 서울출생,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서울정신병원에서 12년 동안 정신분석 전문의로 일하였고, 2006년 한국정신분석학회 학술상을 수상하기도 한 저자 김혜남은 현재 정신분석 전문의로 생활한지 20년이 되었다.

 

그런 그가 어린 시절,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한 둘째 언니를 보며 선망과 질투를 느끼며 남몰래 언니의 불행을 상하기도 했었고, 고3 때 둘째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죄책감과 함께 혼란과 충격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큰 계기가 되어 의대에 진학해 정신분석을 전공하게 되었고 자기의 상처를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며, 언니의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최근에 펴낸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갤리온)외에도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하는 걸까?>, <어른으로 산다는 것>, <왜 나만 우울한 걸까?> 등이 있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김혜남 지음, 갤리온(2008)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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