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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풍리 올레
신풍리 올레 ⓒ 김강임

 

제주의 중산간 올레9코스 도보기행은 중산간 마을 올레라 해서 흙길인 줄 알았습니다. 제주 오름과 어우러진 인적 드믄 올레를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지금 제주 올레는 시멘트로 덧칠한 도로가 대문까지 뚫려 있더군요.

 

대문까지 시멘트로 덧칠한 올레

 

올레가 흙길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그곳을 떠나온 도회지 사람들의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마을 안길과 올레가 포장이 되지 않았다면 경운기나 자동차가 다니는데 불편할 뿐 아니라, 그곳 토박이 농부들이 생활하는데도 불편하겠지요. 그러니 올레까지 시멘트로 덧칠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올레꾼들에겐 흙길 대신 시멘트 올레를 걷는다는 게 조금은 섭섭하더군요.

 

제주올레 9코스 22km 중에서 중산간 올레는 14km 정도. 그 길 또한 제주시와 서귀포를 연결하는 일주도로와 성읍과 수간 간 중산간도로가 펼쳐져 있으니 대도로와 얽혀 있는 셈이지요. 길과 길이 연하여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사람의 욕망에 따라 확장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그 길은 나름대로의 사색이 있었습니다.

 

 올레에서 백곡을 말리는 농부
올레에서 백곡을 말리는 농부 ⓒ 김강임
 

농부는 바빠 죽겠는데, 나그네는 할 일 없이?

 

점심을 먹고 걷는 올레길은 다리가 아파왔습니다. 햇볕도 따가웠습니다. 

 

"아주머니! 여기가 어디꽈?"

가을걷이를 하는 농부들에게 길을 물었지요.

"신풍리우다. 어디서 옵디꽈? 무시거허래 이추룩 걷는데 마심?"

 

어디서 왔느냐 묻는 마을 사람들에게 나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제주 안에 살면서 제주 길을 물으니 이런 무례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농부들은 바빠 죽겠는데 왜 할 일 없이 걷느냐는 질문에는 얼른 현명한 답이 생각나지 않더군요.

 

글쎄요! 왜 우리는 걸었을까요? 그 심심한 중산간의 마을길을. "사색하기 위해 걷는다"고 말해요. 동행한 한 선생님은 나를 힐끗쳐다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더군요.

 

 조롱박
조롱박 ⓒ 김강임
 올레에 말리는 고추
올레에 말리는 고추 ⓒ 김강임
 

천미천 주변 '내끼' 마을

 

신풍리 길을 걷자니 한라산 상류에서부터 홀로 바다로 통하는 천미천을 옆에 끼고 걷게 되었지요. 천미천 주변에는 3개의 마을이 있습니다. 신풍리, 신천리, 하천리 마을이 바로 천미천을 따라 생겨난 마을입니다. 이 세 마을을 두고 '내끼'라 부르더군요. '내끼'란 '내의 끝 냇가'라는 뜻으로, 천미촌이라 부르기도 하구요. 즉, 세 개의 마을이 천미천을 끼고 있다는 이야기이지요.

 

점심을 먹고 신풍리를 지나 김영갑 갤러리에서 영혼의 올레길을 걸은 것뿐인데, 벌써 올레꾼들의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합니다. 추분이 지났으니 가을해는 벌써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평리에서 출발하여 얼마쯤 걸어왔는지, 앞으로 얼마를 더 걸어야 하는지, 그리고 도착지점인 당케포구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묻는 이가 없으니 속이 탔습니다. 하루에 22km를 걸어보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왜 그리 마음이 약해지던지요. 도전의 올레길을 걸어보겠다고 자신과 약속해 놓고 이 무슨 엄살인지 생각해보니 우습더군요.

 

 부자가 걷는 올래꾼
부자가 걷는 올래꾼 ⓒ 김강임
 

부자(夫子)가 걷는 아름다운 동행길

 

'새로운 마을을 지향한다'는 신풍리마을, 그 올레에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부자(夫子)가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운 동행이더군요. 50을 넘긴 아버지와 23살 아들이 함께 걷더군요. 아들에게 왜 걷느냐고 물어봤습니다.

 

"아버지와 그동안 못다 나눈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싶어서 올레에 참여 했습니다."

 

얼마 전에 군대 제대하고 복학 준비를 하고 있다는 23살 청년과 연륜이 있어 보이는 아버지는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쉼 없이 대화를 나누더군요. 아름다운 동행이 신풍리 올레 길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더군요.

 

 6살짜리 올레꾼
6살짜리 올레꾼 ⓒ 김강임
 

부자가 같이 걷는 올레꾼들은 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6살짜리 아들과 올레에 참가한 아빠,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 아들(제주시 백록초등학교)과 같이 걷는 아빠, 신풍리 올레 길은 부자간 대화와 사랑이 싹트는 길이었습니다.

 

 올레에서 참깨를 수확하는 농부
올레에서 참깨를 수확하는 농부 ⓒ 김강임
 

'내끼' 사람들의 아름다운 속살을 보다

 

중산간 도로를 관통하니 신천리 올레입니다. 여름이면 자리돔으로 유명한 신천리는 농업과 어업이 주산입니다. 일주도로변의 아래로 땅이 기름지지 못한 신천리 사람들, 그들은 밭에서 백곡을 일궈내더군요.

 

 누렇게 익어가는 백곡
누렇게 익어가는 백곡 ⓒ 김강임
 돌담위에 익어가는 수수
돌담위에 익어가는 수수 ⓒ 김강임
 

추분이 지난 내끼마을 올레는 백곡을 거둬들이는 농부들이 길을 열었습니다. 콩을 따는 아낙, 참깨를 수확하는 농부, 돌담 위에 익어가는 수수와 누런 콩이 가을입니다. 해산물로 유명하다는 하천리에 접어드니 바다 냄새가 나더군요. 제주의 여느 마을이 그렇듯이 하천리는 대문 없는 마을이었습니다. 궁궐같은 집에도, 대궐 같은 집에도 대문이 없었습니다.

 

 대문없는 올레
대문없는 올레 ⓒ 김강임
 

나는 '내끼' 올레를 걸으며 중산간 마을사람들의 속살을 보았습니다. 여름에 그을린 농부들의 까만 피부, 올레마다 곡식의 가득한 부자, 마음을 비우는 대문이 없는 속살 말입니다.

'내끼' 마을 사람들이야말로 날마다 올레 길을 걷고 있더군요. 올레는 그들의 피와 땀이 서린 삶이 터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제주올레 9코스 도보기행입니다. <제주의 소리>에도 연재됩니다


#내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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