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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도 전국 초등학교에는 혼자 졸업하게 된 100여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산간 지방의 분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입니다. 이제 곧 중학생이 될 이 아이들은 세상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전국의 '나홀로 졸업생'들을 모아서 한바탕 흥겹게 놀 수 있는 자리를 만듭니다. 이 자리를 통해 이 아이들이 세상을 넓게 볼 수 있게 하는 한편 우리 사회가 지역 문화와 농어촌에 좀더 관심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편집자주>
 문곡초등학교는 2007년에 마차초등학교의 분교로 편입되었다. 교문 앞에는 두 개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다.
문곡초등학교는 2007년에 마차초등학교의 분교로 편입되었다. 교문 앞에는 두 개의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다. ⓒ 이유하
 문곡분교 병설유치원 학생들. 작은 공을 들고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이 귀엽다.
문곡분교 병설유치원 학생들. 작은 공을 들고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이 귀엽다. ⓒ 이유하

 

지난 7일 강원도 영월군 북면에 위치한 마차 초등학교 문곡 분교에 도착한 건 12시 반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급식실로 안내하는 신차석(45) 선생님의 손길에 정신없이 급식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이미 반쯤 밥을 비은 상태였다. 그 틈에 끼여서 한 숟가락 뜨려는데, 내 앞에 웬 처녀(?)가 와서 앉는 게 아닌가.

 

문곡 분교에서 올해 혼자 졸업하게 된 6학년 김새별 학생이었다. 초등학생이라고 하기엔 

키가 훌쩍 큰 새별이와 급식 판을 사이에 두고 처음 마주 앉았다. 하늘거리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빨간 고무줄로 동여맨 첫 인상이 귀여웠다. 

 

벌써 처녀티 나네, 초등생 새별이

 

 4학년 학생들이 유치원생 그네 위에 올라가 있다. 이 날은 4학년 합동 수업날로 다른 분교의 학생들도 모두 모였다.
4학년 학생들이 유치원생 그네 위에 올라가 있다. 이 날은 4학년 합동 수업날로 다른 분교의 학생들도 모두 모였다. ⓒ 이유하
새별이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창문 너머로 아이들의 머리꼭지가 보였다가 또 사라졌다. 아이들은 발끝을 들고 창문에 줄지어 서서 이방인의 출현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소란스레 창문이 흔들리다가도 내가 쳐다보면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면서 도망쳤다.

 

왼쪽 편에는 아직 급식을 반도 못 비운 2학년 최성열 학생이 앉아있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내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며 대답도 잘 했다.

 

"너 몇 학년이야?"

"2학년이에요."

"1학년은 없어?"

"있었는데 저번에 전학 갔어요."

 

문곡 분교의 총 학생수는 6명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7명이었는데 1학년 학생이 그만 전학을 가는 바람에 성열이는 다시 문곡분교의 막내가 되었다. 나래가 말을 잇는다.

 

"쟤 형은 쌍둥이에요."

 

아까부터 홍길동 마냥 여기저기서 비슷한 얼굴이 튀어나오던 것을 기억해 냈다. 분명 내 뒤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또 금방 창 밖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아닌 게 아니라 살짝 놀라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학생 수는 6명이지만 세 가정이었다. 4학년 태근이와 6학년 새별이가 남매고, 2학년 성열이, 4학년인 쌍둥이 창열이, 경열이가 삼형제, 그리고 5학년 가영이다.

 

석탄 붐 시대에는 한해 졸업생만 180명

 

'검은 황금' 시대라 불리며 석탄 붐을 일으킨 70년대 영월의 마차에는 한 해에 졸업생이 180명이나 되기도 했다.

 

"굉장했지요. 광산이 쾅쾅 돌아가고 했는데요."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고주호(47)씨는 강원도에서 나서 강원도에서 자랐다. 학교도 마차 초등학교를 다녔다는데, 굉장했을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랬던 것이 학생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영월 북면의 9개 초등학교 중 지금은 4곳만 남았다. 역사를 자랑하던 문곡 초등학교는 작년에 마차 초등학교의 분교로 편입되었다. 

 

폐교를 면하긴 했어도 다른 분교와의 상황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매년 주민투표를 거쳐서 주민의 70%가 찬성을 하면 폐교가 결정되는데, 다행히 반대 표가 없어서 내년에는 정상적으로 학교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문곡 분교에 입학 예정인 학생은 없다. 8명의 유치원생이 있지만, 마차 초등학교의 다른 분교인 공기분교와 연덕분교로 갈 예정이다. 주민 투표를 거치지 않아도 더 들어올 학생이 없어서 자연히 폐교가 되지 않겠느냐는 게 선생님들의 생각이다.

 

월요일엔 사물놀이, 목요일엔 바이올린

 

 샛별이가 5학년 가영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고 있다.
샛별이가 5학년 가영이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고 있다. ⓒ 이유하

하지만 그런 기운은 학교 내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특기 적성 교육이 활성화 되어 있었는데, 월요일엔 사물놀이, 목요일엔 바이올린을 배우고 금요일에는 미술 수업 후에 본교와 분교들이 모여서 원어민과 영어 수업을 한단다.

 

이제 시작한 지 한달 된 바이올린은 아직도 반짝 반짝 했는데, 일주일에 한번씩 전문 강사가 강의를 하러 온다고 했다. 한달 되었다면 4번 정도 수업을 받은 건데도 아이들의 연주 실력은 생각보다 좋았다. 방과 후에 자발적으로 모여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이날도 3시 반에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바이올린 연습을 위해 4, 5학년 교실로 모여들었다. 대장 격인 새별이는 자못 진지하게 연주를 했는데,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작은 별'을 뚝딱 연주하는 통에 아이들과 함께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선생님들의 시샘(?)을 받았다.

 

"새별이가요. 아이들이랑 바이올린 연습할 때는 무서워요."

"(아이들 일동) 군기 대장이에요!"

 

같이 연습을 하던 유치부 선생님은 아이들이 참 말을 잘 듣는다며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힘들지 않느냐"는 나의 물음을 일축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보다,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게 더 많다"며 아이들 틈에서 신나게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샛별이가 혼자서 수업을 받고 있다.
샛별이가 혼자서 수업을 받고 있다. ⓒ 이유하

6학년 새별이와 올해로 교사 생활 20년이 되는 신차석 선생님의 관계도 다르지 않았다.

 

단 둘이서 진행하는 수업이지만, 수업 내내 친구처럼, 삼촌처럼, 선생님처럼 투닥투닥 거리는 모습이 다정해 보였다.

 

"둘이서 수업하니까 재미없죠. 수업하다가 한 명이 삐치면 말도 안 해서 수업이 조용할 때도 있어요."

 

처음엔 새별이와 선생님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돌 때도 있었단다. 이제 막 성숙해진 새별이는 지금이 딱 사춘기 시기여서 선생님이 늦게 들어온다든지, 수업이 마음에 안들 때면 새초롬해 질 때도 있다.

 

선생님 역시 그런 새별이에게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2년째 서로 함께 수업을 하면서, 이젠 눈빛만 봐도 척척 의사소통을 한다. 

 

"새별이가 잘 하는 게 많아요. 저번에 단종 문화제 사생대회에서 장원을 받기도 했고요. 장구도 잘 쳐서 대회에 나가도 될 실력이에요."

 

선생님은 새별이가 받은 상장을 꺼내 놓으면서 흐뭇해 하셨다. 이번에 상을 받은 그림은 당당하게 교실 뒤편을 차지하고 있었다. 장구를 한번 쳐보라는 선생님의 지시에는 귀에 익은 장단들을 뚝딱 쳐냈다.

 

어떤 수업이 제일 재미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물었더니 금요일에 본교와 합동 수업을 하는 '영어 시간'이란다. 영어와 안 친한 내가 조금 부러워하며 서있었는데, 사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마차 초등학교 본교에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어서 합동 수업을 하는 금요일이 되어야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아직 부끄러워서 이야기도 많이 못 나눠봤다는데, 수줍게 두 볼이 발그레한 모습이 참 풋풋했다.

 

영어 시간이 제일 좋다? 사실은…

 

이렇게 밝고 꾸밈없는 아이들에게도 사실 아픔이 있다. 시골 분교의 학생들 중 많은 아이들이 조손 가정이거나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새별이도 농사를 짓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살짝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려고 하니 그만 얼굴이 굳어졌다.

 

'꼭 그런 걸 캐물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한 번 더 말을 걸어 볼까 하고 고민하고, 지나가다 예쁜 옷을 보면 입어보고 싶고, 동생을 잘 챙기는 평범한 아이일 뿐인데 말이다.

 

 새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새별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이유하

옆에서 지켜보니 새별이는 하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런 새별이의 꿈은 아나운서란다. 똑 소리나는 새별이에게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돌아가기 전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더불어 졸업여행'이야기를 했다.

 

전국 초등학교에서 혼자 졸업하는 6학년 학생들을 모아 다같이 졸업여행을 가는 행사인데, 새별이는 "에버랜드에 갔으면 좋겠다"며 내내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래, 비록 문곡 분교에서는 혼자 졸업하게 되겠지만, '더불어 졸업여행'에서는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 마차 초등학교 '관심남'보다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렴. 내가 팍팍 밀어줄게! 

 

 마차초등학교 문곡분교 전경. 탁트인 학교 뒤 전경이 아름답다.
마차초등학교 문곡분교 전경. 탁트인 학교 뒤 전경이 아름답다. ⓒ 이유하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서 주최하는 '더불어 졸업여행'은 11월 4,5,6일에 서울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전국에 있는 '나홀로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참가 가능하다. 


#나홀로 졸업생#더불어 수학여행#문곡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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