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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는 문구점이었다. 문구점 간판을 그대로 살린채 간판을 꾸민 모습이 멋스럽다.
원래는 문구점이었다. 문구점 간판을 그대로 살린채 간판을 꾸민 모습이 멋스럽다. ⓒ 안소민

어디서 봤더라. 처음 그 집앞을 지날 때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길가의 코스모스와 같은 느낌이었다. 

한적한 경기전 돌담길 한켠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나지막히 있는 '상덕 커리(Curry)'. 문앞에 서면 '밥 한그릇의 행복, 물 한그릇의 기쁨'이라고 씌여있는 소박한 엽서가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레 향기와 정갈하고 청아한 바로크 음악이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게다가 여기가 어딘가. 비빔밥, 한정식 등 전주 대표선수(?)들이 즐비한 전주 한옥마을이다. 여기에 왠 카레점인가 싶었다. 분식점도 아니고 오직 '카레' 하나에 승부를 걸었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셔터가 내려져 있었는데 3주전 이곳에 이름만큼이나 소박하고 따스한 향기 솔솔 풍기는 카레점이 들어섰다. '상덕 커리'의 속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다음은 ‘상덕 커리’의 안주인 유승아씨와의 일문일답. 현재, 친구 양유경씨와 유승아씨 둘이서 꾸려나가고 있다.

 카레만큼이나 경기전을 사랑한다는 유승아씨. 양유경씨와 함께 6년전의 약속을 지켰다.
카레만큼이나 경기전을 사랑한다는 유승아씨. 양유경씨와 함께 6년전의 약속을 지켰다. ⓒ 안소민
안(안소민) "이곳(경기전 후문쪽 돌담길)에 카레가게가 있다니 참 의외예요. 어떻게 카레가게를 열 생각을 했나요?"
유(유승아) "사실 카레 가게는 몇 년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것이었어요. 그런데 마침 여기에 좋은 자리가 났어요. 제가 이 길을 참 좋아하거든요. 여기에서 카레를 만들어 팔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솔직히 이곳이 목이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웃음) 그렇긴 하죠. 돈 벌려고 작정하면 이곳에 카레가게는 좀."

"많고 많은 메뉴 중 왜 하필 카레예요?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요."
"첫 번째 이유는 우리 둘다 카레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는 것이구요. 그리고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면 2002년 유경씨랑 함께 간 일본 삿포로 여행이었죠. 그때 한 카레 전문점에서 카레를 먹었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었죠. 오직 카레만을 파는 곳이었데 손님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골라 즐길 수 있도록 굉장히 다양한 종류를 팔았어요. 그때 우스갯소리로 우리도 나중에 이런 카레가게 하나 내자, 얘기했죠."

비빔밥의 본고장에 '카레'를 들이대다

"그 맛이 어땠는데요?"
"굉장히 부드럽고 풍부하고, 하여간 우리가 보통 먹는 음식점의 카레와는 좀 다른 맛이었죠. 우리는 보통 비슷비슷한 인스턴트 카레 분말을 쓰잖아요. 좀 다른 맛을 내고 싶었죠."

"'상덕커리'의 특징은 고기가 없는 '채소카레'라던데요. 웰빙카레 그런건가요?"
"특별히 웰빙의 의미는 아니구요 저희 둘다 채식주의자라서요."

"카레를 만들 때 육수가 꽤 비중을 차지하잖아요. 그럼 어떻게 맛을 내죠? 특별한 비법이 있나요?"
"비법까지는 아니구요. 채소에서 우러나오는 국물로도 충분히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즐길 수가 있어요."

"카레에 들어가는 채소 종류는 특별한 것이 있나요?"
"크게 다를 건 없어요. 저희는 대신 아몬드나 잣, 호두와 같은 견과류와 감자, 고구마를 많이 넣어요."

꼬치꼬치 묻다보니 이 '상덕 카레'의 비밀을 너무 누설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조심스레 괜찮겠냐고 물어봤더니 유씨는 스스럼없이 '괜찮다'고 말했다.

고기대신 견과류, 곡물류로 맛을 내

"사실 저희는 비법이랄게 없어요. 저희 둘다 전문요리사도 아니고, 꾸준히 요리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에요. 저희가 알고 있는 레시피는 대부분 다른 분들이 아는 것들이에요. '카레하나만큼은 자신있다'고 말하는 건 좀 너무 교만하고요. 저희가 다른 사람보다 아주 조금 더 잘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 정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과 퍼즐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읽을 수 있는 책과 퍼즐들. ⓒ 안소민

 서로 이마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끼의 식사를 즐기고 싶은 곳.
서로 이마를 맞대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한끼의 식사를 즐기고 싶은 곳. ⓒ 안소민

"얼마나 연구했어요? 이 맛을 내기 위해서."
"특별히 배우거나 그러지는 않구요 그냥 집에서 늘 먹던 식으로 만들어요. 다만 둘이서 함께 요리를 하니까 레시피는 통일해야겠다 싶어서 주방에 써놓고 요리할 때 참고하죠. 그냥 집에서 먹는 요리다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언니가 해준 카레, 딸이 해준 카레, 그렇게 소박한 맛으로 기억되면 좋죠."

"다른 메뉴를 추가하실 생각은 없나요?"
"전혀요. 저희는 전문요리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요리를 만들기에는 너무 벅차요.(웃음) 그리고 보시다시피 장소가 아담해서요. 많은 손님을 수용할 수도 없어요. 그냥 카레만 맛있게 만들고 싶어요."

"카레만 나오는 게 아니던데요. 카레에다 빵, 그리고 요구르트가 함께 나오네요."
"네. 카레만 하면 좀 밋밋할 것 같아서 저희가 직접 구운 빵과 요거트를 함께 내고 있어요. 카레가 인도음식이다 보니 인도의 문화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궁리했어요. 인도의 랏씨(인도식 요구르트)와 난(인도의 대표적인 빵)에 모티브를 따서 저희식으로 만들었죠. 물론 흉내만 낸 정도에 불과하지만요." 

하루에 딱 50그릇만 판다

"일하면서 언제 기분이 가장 좋아요?"
"매상에 크게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웃음) 늘 즐겁죠. 그런데 손님이 가신 뒤 빈그릇을 볼 때 가장 기뻐요. 보람되고 감사해요."

 주방선반위에 놓인 책, 깔금한 주방이 인상적이다. 하루에 50그릇이상은 팔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한다. 오른쪽 메모는 양씨와 유씨의 당번스케쥴이다. .
주방선반위에 놓인 책, 깔금한 주방이 인상적이다. 하루에 50그릇이상은 팔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한다. 오른쪽 메모는 양씨와 유씨의 당번스케쥴이다. . ⓒ 안소민

 주방 선반에 있는 글귀. 지인이 선물해주었다고 한다.
주방 선반에 있는 글귀. 지인이 선물해주었다고 한다. ⓒ 안소민

"아무리 즐기면서 하는 것이라지만 매상을 생각 안 할 수 없죠. 어떤가요?"
"처음엔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여기서 누가 카레를 먹을까 싶었죠.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오세요. 전주에 카레만 파는 가게가 없거든요. 카레만 파는 이 가게가 굉장히 인상깊었나봐요."

"장소가 아담해서 단체손님은 힘들 것 같아요."
"네. 장소도 장소지만 아침에 준비해놓은 재료만큼 딱 그만큼만 팔거든요. 그리고 많은 양을 한꺼번에 만들다보면 아무래도 산만해지고 정성이 덜 가게 되더라구요. 물론 저희가 아직 숙달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몇 그릇 정도 만드나요?"
"점심과 저녁 두시간씩 총 네 시간 동안 40그릇 정도 파나봐요. 저희는 처음 시작할 때 하루에 50그릇 팔면 그날 장사는 접자고 다짐했거든요."

"하루 일과는 어때요? 굉장히 한적하고 여유있어 보여요."
"아침에 오면 청소하고 그날 판매할 카레를 준비하죠. 식사시간 외에는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면서 각자 할 일을 해요."

"두 분 식사는 뭘 드시나요? 설마 카레?"
"카레를 좋아하니까 카레를 먹죠. 당연히(웃음)"

"인테리어가 깔끔하고 단아해요. 직접 하셨나요?"
"네. 저와 유경씨가 했어요. 제가 도자기를 만들 줄 아는데 저희 조카들이랑 함께 만든 타일등을 함께 붙여봤어요."

"인테리어 소품도 소품이지만 창가에 펼쳐지는 햇살, 경기전 돌담길 이게 한몫하는데요."
"저희 가게의 자랑거리죠. 저는 가끔 저희 카레맛보다는 이 분위기, 이 장소를 더 많이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최근 음식점의 위생상태를 고발한 시사프로 때문에 사람들이 '사먹는 밥'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먹긴 먹지만 한편으로는 께름칙하다. 사먹는 밥뿐만이 아니다. 먹을거리의 총체적인 위기다. 먹을거리를 신뢰할 수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먹을거리가 아닌 '사람'이다. 그러나 상덕 커리 안주인들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 마음을 맡긴채 음식을 입으로 넣어도 될 듯싶다.  

밥상위의 덕,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

: "상호가 무슨 뜻이에요? 상덕 커리. 굉장히 궁금해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세요. 저희는 최대한 촌스럽고 소박한 이름으로 짓고 싶었어요. 궁리하다가 밥상(床)위의 덕(德). 그래서 상덕 커리예요. 사람들은 대부분 우리 둘중 누가 상덕이냐고 물어봐요. (웃음)"

"밥상위의 덕이 뭘까요?"
"글쎄요, 만드는 사람은 정성을 다해 만들고 먹는 사람은 깨끗이 비우는 것 아닐까요? 저희도 사실 고민중이에요."

 창가에서 감상하는 경기전 돌담길의 가을 정취는 상덕 커리를 또 찾게 만든다. 상덕커리 주인장은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이 경기전의 이 분위기를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창가에서 감상하는 경기전 돌담길의 가을 정취는 상덕 커리를 또 찾게 만든다. 상덕커리 주인장은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이 경기전의 이 분위기를 기억하기를 바란다고 한다. ⓒ 안소민

가게를 나오면서 마침내 생각해냈다. 이 가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다는 그 기시감은 바로 영화 <카모메식당>에서 나온 것이었다. 유승아씨는 손님을 기다리며 하루종일 그릇을 닦고 청소를 하는 영화 속의 사치에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 '상덕 커리'의 분위기가 궁금하다면 영화 <카모메식당>을 보시길.

덧붙이는 글 | 선샤인뉴스에도 올립니다



#카레#온고을사람들#경기전#전주#상덕 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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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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