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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한 백화점의 유제품 코너. 9월 14일 생산된 제품은 검사에서 합격된 제품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한 백화점의 유제품 코너. 9월 14일 생산된 제품은 검사에서 합격된 제품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 이점숙

산업용 색소가 검출된 장어, 붉은 빛을 내기 위해 파프리카 색소와 쇳가루까지 넣은 고춧가루, 기생충 알이 발견된 중국산 김치, 무게를 늘리기 위해 납덩이를 넣은 냉동꽃게, 이산화황이 검출된 중국산 찐쌀, 살충제가 들어간 초밥용 냉동고등어, 중국에서 생산된 생쥐머리 새우깡, 멜라민이 검출된 아기용 분유와 유제품, 포름알데히드 성분이 함유된 '고무은어'….

그간 문제가 돼왔던 중국산 식품들의 목록이다. 김치부터 물고기까지, 끝이 없다. 특히, 최근 아기용 분유와 유제품에서 공업용 원료인 멜라민이 검출된 이후엔 더욱 중국산 식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식탁에 올라올 수 있는 대부분의 식품이 경계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중국산 식품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를 떨게 하고 있다. 싼값을 무기로 한 중국산 식품들은 이미 전 세계인들의 식탁을 장악한 지 오래이고 그간 중국산 식품들의 안전성에 의혹이 일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흐지부지 돼왔던 게 사실이다.

당연히 중국에서 수입한 식품을 소비하는 외국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이번만은 그냥 넘길 수 없다'며 대안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정작 그 식품들이 생산·소비되고 있는 중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먹을까?

"냉장고에 든 우유 2팩 내다버렸다"

베이징에서 한국 기업의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문형식(38)씨는 "어린 아들에게 멜라민이 첨가되지 않은 분유를 먹이고 있는데 100% 안심은 할 수 없다"면서 "치즈와 과자는 한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하고 아이스크림은 최대한 먹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불량식품도 문제지만, 아동 완구류에서 납이 검출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멜라민 유제품 문제도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혀져 갈 것이라며 이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생후 18개월 된 아기를 둔 중국인 손구어화(여, 32)는 "아기에게 모유와 수입분유를 번갈아 먹이고 있다. 문제가 된 싼루(三鹿)사의 분유를 먹이지 않은 것에 대해 안심하고 있다"면서도, 말도 못하는 아이의 생명을 담보로 이익을 추구하는 회사와 관리감독이 부실한 국가의 잘못이 크다고 질책했다.

리우청찌엔(62) 역시 "멜라민이나 불량식품 문제는 나이든 우리보다 정화능력이 없는 아이들에게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인 유학생 윤아무개(여,30)씨도 "우유에 멜라민이 들어갔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접한 후 냉장고에 보관되었던 우유 2팩을 내다버렸다"고 말했다.

"나쁜 우유 목록은 프린트해 놓았죠"

 공업용 멜라민이 첨가된 유명 유제품회사의 명단이 게재된 관영 CCTV 화면.
공업용 멜라민이 첨가된 유명 유제품회사의 명단이 게재된 관영 CCTV 화면. ⓒ CCTV
아기용 분유뿐 아니라 성인들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즐겨 찾는 우유에서도 공업용 멜라민이 첨가되었다는 보도 직후 베이징의 대형마트 내 유제품 코너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중국내 유명 유제품 회사로 알려진 이리(伊利)와 멍니우(蒙牛)의 우유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됨에 따라, 사람들은 공업용 멜라민이 첨가된 유제품에 대해 증폭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으면서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우유를 찾게 된다고 했다.

상하이에서 사는 유학생 김윤아(여, 25)씨는 "인터넷에서 멜라민이 검출된 유제품에 대한 리스트를 검색한 후 프린트해 놓았다. 유제품 구입시에는 먼저 제조 업체명을 확인한 후 상품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생활하는 김경진(여, 23)씨 역시 "멜라민 파동직후 유제품은 물론 우유가 첨가된 커피나 음료, 과자 등은 먹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렇지만 중국에서 살고 있는 이상, 중국산 먹거리가 위험하다고 해서 수입식품만 먹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급적이면 건강도 챙기고 돈도 절약할 겸 요즘에는 주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말했다.

유학생 인터넷카페 '진짜 제조일자 알아내는 방법'

중국에서 유학하는 한국인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북유모'에도 멜라민이 첨가된 유제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오신 친척분이 중국에서 파는 음식은 죄다 멜라민이 들었다고 걱정하더라."
"3주째 통조림과 김, 고추장만 먹고 살고 있다."
"중국은 네발 달린 것 중 책상만 빼곤 다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다면 책상다리엔 멜라민이 첨가되지 않았을 테니 안심하고 드세요."

또한 안전하고 신선한 우유를 마시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들간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기도 한다.

우유의 진짜 제조일자를 알아내는 방법으로는 우유팩에 인쇄된 제조일자 중 영문과 숫자 표기를 살펴봐야 한다는 것. 제조일자가 '080510 HDC8 H'라고 인쇄되었을 경우, 소비자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생산일은 2008년 5월 10일이지만 이는 소비자용 표기법이며, 실제 생산일은 뒷면에 표기된 'HDC8 H'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첫번째 알파벳은 생산년도의 표시로 업계의 규정상 A는 01년, B는 02년, C는 03년 식으로 읽으면 H는 08년이 되며 두번째는 월로 D는 4월이다. 세 번째 알파벳은 생산일로, 1일부터 9일은 앞에 A를 붙인 A1, A2… 10일부터 19일은 앞에 B를 붙인 B0,B1…, 20일부터 29일은 앞에 C를 붙인 C0, C1…, 30일과 31일은 앞에 D를 붙인 D0, D1로 표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HDC8'은 08년 4월 28일에 생산되었으며, 생산일로 표기된 08년 5월 10일은 실제보다 12일 가량 늦게 표기된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또한 '한국계 OO마트에 가면 프랑스에서 수입한 우유가 있다'는 식의 유통 정보도 함께 교류되고 있었다.

태평한 중국인들 "먹었던 것은 그대로 먹어야죠"

먹거리 걱정이 태산인 한인들과는 달리 일부 중국인들은 태평함을 넘어 오히려 멜라민 파동이 가져온 위기를 적당히 즐기는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베이징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왕레이(여, 26)는 식품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된 현재의 위기를 현명하게 대처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면 관리감독이 더욱 엄격해질 테니 좋은 것 아니냐"며 평소대로 유제품을 즐겨 먹는다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마칭(여, 25) 역시 "모든 음식에 위해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면 아무 것도 먹지 못할 것이다. 멜라민 파동이 내 식습관에는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다"며 "유제품만으로 영양소를 섭취해야 하는 아기들의 부모가 걱정이 더 많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인 대학생 손쭝화(25)도 "멜라민 파동 직후 유제품에 대한 검사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에 더욱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중국 네티즌 "우리는 개혁개방 중에 양심을 잃어버렸다"

'멜라민 파동 이후 식품안전 의식이 제고될 것이라는 일반의 기대와는 달리, 아직도 인터넷상에서는 인민의 생명을 담보로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내려는 기업들의 부도덕함에 공분을 표하는 많은 네티즌들의 댓글이 올라오고 있다.

'라오바이는 사실만을 말한다'(Laobai's blog)라는 블로그명을 내걸고 멜라민 우유 파동을 지적한 글에 달린 댓글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양심, 그것은 우리가 개혁개방 중에 잃어버린 것."
"중국의 과오는 아무 일 않고 있다가 일단 사건만 터지면 뒤늦게 허둥대는 것이다."
"현재 당 관료의 공통된 이름은 그들의 얼굴에 씌여지고 뼈 속 깊은 곳에 숨겨진 '돈'이다."

선양에서 거주하는 중국인 가정주부 리우드어만(여, 57)은 "아침마다 배달해서 마시는 유제품은 예전처럼 마시고 있다. 그러나 번거롭지만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 음식은 주로 집에서 해먹고 있다"라며 가족을 생각하는 주부의 마음은 어느 나라나 한결같음을 강조했다.

멜라민 파동과 불량식품 문제로 인해 국제적으로 망신살을 뻗치고 있는 중국. 국외에서 연일 동시다발적으로 확산되는 멜라민 공포를 보도하는 언론을 접한 까오펑(28)은 "정작 중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아무렇지 않은데, 외국언론들이 멜라민 파동을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별로 외국언론을 개의치는 않을 것이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아무개(여, 33)는 "중국 관영 CCTV에서는 우유가 안전하다고 하는데, 외국 친구의 말을 들으면 외국에서는 아직도 문제가 많은 것처럼 들렸다. 조금 혼란스럽다"라고 말했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인 김아무개씨(여,37)는 "중국에서는 언론통제로 인해 정확한 피해사항을 알 수 없으니 불안하다"고 말해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왕푸징 먹자거리에는 아무도 음식걱정이 없는 양 많은 인파가 한데 어울려 각양각색의 음식을 찾고 있다.
왕푸징 먹자거리에는 아무도 음식걱정이 없는 양 많은 인파가 한데 어울려 각양각색의 음식을 찾고 있다. ⓒ 이점숙

"길에서 파는 음식은 한 번도 사먹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쇼핑의 천국으로 불리는 왕푸징에 위치한 먹자거리에는 항상 손님들로 북적인다. 벌레꼬치부터 만두, 국수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간식거리를 팔고 있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독특한 음식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거나, 쇼핑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한 사람들이다.

굳이 왕푸징의 먹자거리가 아니더라도 중국에서는 이른 아침이나 저녁시간 리어카를 간이 식당으로 개조하여 음식을 팔고 있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량식품 문제는 중국을 생산지로 두고 있는 식품과 불량한 위생상태로 영업하는 식당이나 길거리 음식점 모두 포함된다.

베이징에서 거주하는 김아무개(40대)씨는 "빠오즈(찐빵)는 겉만 먹고 조미료가 범벅된 속은 먹지 않는다"고 말했고, 유학생 이아무개(여, 26)씨는 "중국생활 2년이 다 되어가지만 길에서 파는 음식은 청결하지 않은 것 같아서 한번도 사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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