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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단어만 떠올려도 기대와 설렘이 앞선다. 거기다 약간의 불안감도 함께. 막연하게 언젠가 유럽여행을 가자고 생각은 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김형경 작가의 여행이 부럽다. 

 

아니,  다시 고쳐 쓰야할 것 같다. 부럽다는 것은 시기심의 가장 소극적인 표출이라고 했던가. 무어라고 고쳐쓸까. 마땅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솔직히 부럽다고 하자. 

 

김형경 심리 여행에세이 <사람풍경>(아침바다)는 결국 작가 자신이 만난 많은 사람과 사물과 예술 이 모든 풍경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만나는 것으로 귀착된다. 오랜 시간동안의 여행을 통해 작가 자신과 만나는 마음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마흔으로 넘어서는 고개에서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집을 팔아 세계여행을 하게 되었고,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사물들 속에서 발견한 세계의 상처들을 만난다.

 

혼자 몸으로 로마와 피렌체, 밀라노, 파리, 니스, 베이징, 적도 아래의 뉴킬레도 니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시와 항구를 발로 누비며 그녀가 만난 사람들, 그 사람들의 내면의  상처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심리적 문제와 상처를 발견하고 또 그것을 극복하고 극복해 낸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울러 작가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내재한 감정의 실체와 근본에 대해 사색하면서 또 독자들을 그곳으로 이끈다.

 

작가가 자신의 ‘마음’ 때문에 여행을 했듯이, 책의 첫 장을 열면서 작가의 여행길에 동승했다. 박해받았던 기독교인들이 지하 묘지 카타콤도 함께 가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도 갔으며 독일 뮌헨에도 갔다. 작가의 여행길 따라 말없이 책 속의 활자를 통해 내 마음은 고단하기도 하고 낯설어 두려움과 불안과 기대에 찬 여행을 함께 했다. 작가는 이 여행이 다만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유적지와 풍경들에만 눈길을 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는 것과 드러나지 않는 것 즉, 의식의 이면에 더 크고 깊게 자리한 무의식의 세계, 그것이 만들어낸 의식표면의 현상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생의 문제들을 직시하고 사색하는 여행이다. 작가 자신이 현재의 삶 속에서 왜 그동안 많은 인간관계와 사회생활이 삐거덕거렸는지 정신분석치료를 받았던 경험을 토대로 깊이 사색하고 있다. 유아기 때의 그 짧은 생이 그 후의 삶에 얼마나 오랫동안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 강조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삶의 중요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비밀 한 가지는 우리 대부분이 세 살까지 형성된 인성을 중심으로, 여섯 살까지 배운 관계 맺기 방식을 토대로 하여 살아간다는 점이다. 정신 분석가들은 인간 정신이 생후 3년에 이르기까지 60퍼센트, 여섯 살까지 95퍼센트 형성된다고 한다. 그들은 대체로 다섯 살까지가 아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신분석을 받은 후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얼마나 정확하게 인간 정신을 설명하는 말인가 싶어 놀란 일이 있다.”

 

다음 소개하는 구절을 읽다보면 엄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나의 엄마는 내게 어떤 엄마였을까. 나는 또 어떤 엄마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생의 모든 문제가 사랑에서 비롯된다고 할 때 그 중 가장 중요하고 모든 문제의 핵심이 되는 사랑은 아기 때 엄마와 나누는 최초의 사랑이다. 아기에게 엄마는 최초로 경험하는 안락함, 즐거움, 쾌락, 행복감의 근원이다. 엄마와의 안락한 공생 체험은 사랑의 원형으로 자리잡아 성인이 된 후의 사랑의 방식을 결정짓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엄마와 나누는 애착 경험은 그 사람의 정신을 형성하는 자양분이 된다.”

 

완벽한 엄마 역할을 했노라고 떳떳하게 고백할 사람 얼마나 있을까. ‘자기의 심리학’을 주창한 제임스 F.매스터슨은 <참자기>라는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세상에는 완벽한 어머니도 없고 완벽한 자식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참자기가 생겨나서 독특하고 자율적인 자기에 통합되기 시작하는 생후 첫 3년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이 어린 시절의 사소했던 갈등의 잔재 때문이고 그 결과 창조성과 자율성, 성적 친밀감에서 경미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저자의 말대로 생의 모든 문제는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랑스 정신분석의인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사랑의 역사>라는 책에서 ‘인간의 한평생은 거대하고 영원한 사랑의 과정이다.’라고 말했다. 생후 18개월부터 부모로부터 떨어져 외가에서 자랐던 작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엄마가 데리러 오기까지 인생의 중요한 시기를 엄마와 애착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불안했고, 상실감과 버림받은 느낌 등을 경험했을 것이다.

 

인생의 모든 면에 자신 없음도 그 시기에 형성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정신분석을 받고 자신의 문제를 정직하고 바라보고 인식하고 자유로워진 작가는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는 눈 역시 보이지 않는 그 이면의 것을 보며 관찰하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분노는 사랑의 뒷면’이고, 애착의 감정을 박탈당했을 때 애착을 품은 대상을 잃었을 때나, 애착의 감정을 박탈당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 한다. 한마디로 ‘돌아오지 않는 사랑’이라는 것, 대상 상실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그와 연계해서 공포심은 모두 억압된 분노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기 자신의 어떤 특정한 행동, 혹은 사람들의 행동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신분석 전문의의 글이 아니라 가장 편안하게 접근하고 따뜻한 여행과 함께 사색하며 마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책이라 더욱 친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중년의 흙바닥 위에 엎드려

물고기 같이 울었다'

 

당신도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이렇게 울고 있진 않는지, 김형경의 <사람풍경> 속으로 들어가보길, 함께 여행길에 올라 정직하게 자신과 대면할 수 있기를.

 

작가 김형경은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문학사살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새들은 제 이름을 부르며 운다>, <세월>, <피리새는 피리가 없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성에> 등의 장편소설과 창작집, <단종은 키가 작다>, <푸른 나무의 기억>등이 있다.


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여행 에세이, 개정판

김형경 지음, 사람풍경(2012)


#김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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