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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 망기트 시내의 메드레세(사원)
▲ 작은 도시 망기트 시내의 메드레세(사원)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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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남자들은 술을 좋아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 못지않다. 술 마시는 습관도 비슷하다. 다른 사람 잔에 술 따라주는 것을 좋아하고 무조건 '원샷'이다. 보드카를 반쯤 마시고 남은 잔을 내려놓으면 "왜 마저 안 마시냐? 다 마셔라!"라고 권한다.

처음에는 날 취하게 하려는 속셈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이들은 원래 술마시는 습관이 그렇다. 이들이 마시는 술은 대부분 우즈베키스탄 보드카와 맥주다.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 교도들인데도 이들은 술을 마시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술을 금지하는 몇몇 이슬람 국가와는 대조적이다.

이런 면은 나같은 도보여행자에게 좋은 점이기도 하고 나쁜 점이기도 하다. 나도 술을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지만 도보여행 시작하기 전에는 '여행하면서 술을 얼마나 마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불필요했다는 것을 도보여행 이틀 만에 깨달았다. 어젯밤에 나를 재워준 루스탐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시내 곳곳으로 날 끌고 다니면서 술판을 벌였다.

"나도 돈 있어. 같이 돈 내자!"

이렇게 말해도 아무 소용없었다. 우리 도시를 찾아온 여행자니까 자기들이 대접하겠단다. 덕분에 샤슬릭, 삼사, 국수 등을 배부르게 먹었고 보드카와 맥주도 떡이 되도록 퍼마셨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마셨는데도 오늘 아침 내 상태가 멀쩡하다는 것이다. 머리도 아프지 않고 숙취도 거의 없다. 보드카의 장점은 뒤끝이 없다는 점인데 그것을 오늘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다리의 근육통을 제외하면 몸 상태는 만점이나 마찬가지다.

술을 좋아하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구르렌 가는 길
▲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구르렌 가는 길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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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술을 마셨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다.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루스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오늘 목적지인 구르렌까지는 약 45km라고 한다. 머나먼 길이다. 하지만 주변환경이 좋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친구! 차 한잔 마시고 가!"

도시를 벗어날 때쯤 되자 넓은 집에서 뛰쳐나온 두 명의 젊은이가 날 부른다. 저 사람들은 누구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출발 전에 대충 요기라도 하고 싶어서 나는 그들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 두 명은 형제 사이다. 집 안쪽의 평상에 앉자 이들은 차, 전통빵, 포도, 토마토 등을 차례대로 내온다. 맏형의 이름도 루스탐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루스탐'이란 이름이 흔한 이름인가 보다.

이들은 어젯밤에 시내에서 날 보았다고 한다. 내가 현지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판을 벌이던 도중에 자기들과 악수하고 인사했단다. 그런데 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이들을 만난 적이 없는 것 같다.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는 현상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뒤끝이 좋은 보드카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걸어서 타슈켄트까지 간다니까 루스탐은 공책에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한다. 여기서 구르렌까지는 도중에 작은 마을도 있고 식당도 많아서 어려운 점이 없다. 대신에 사막에 들어가면 좀 힘들거다. 사막에 가면 50km마다 경찰 검문소가 있는데 거기 가면 잘 수도 있고 쉴 수도 있다.

말이 안 통하면서도 루스탐은 이런 점들을 차분하게 설명한다. 아직은 사막을 생각할 때가 아닌데도 이 친구의 말을 들으니까 걱정이 된다. 50km라, 내가 하루에 사막에서 그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빵과 포도를 배부르게 먹고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도로 양쪽으로는 넓은 목화밭이 펼쳐져 있지만 내 머릿속에는 방금 들은 사막, 50km가 떠돌고 있다. 그 거리를 걷기 위해서는 물과 식량이 얼마나 필요할지 모르겠다. 군대 신병훈련소의 기억이 떠오른다. 내가 입소했던 때는 한참 더운 7월이었다. 그때 조교가 이런 말을 했었다.

"한여름에 야외에서 훈련받으려면 물을 많이 마시지 마라. 많이 마신 물은 땀으로 배출되고, 그러다보면 탈수증이 생긴다. 물은 적게 마시고 대신 소금정제를 먹어라."

반면에 여름에 걸어서 사막을 통과했던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여름에 걸으려면 물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당시에 하루 10리터의 물을 마시고도 부족했단다. 이 두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 두 상황은 서로 다른 것이니까 둘 다 맞는 이야기일까.

출발 전에 준비물을 챙기면서도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것이 바로 소금정제다. 인터넷을 여러가지로 찾아보았는데 이 소금정제는 찬반양론이 아주 치열했다. 우유부단한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냥 떠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우즈벡인들은 왜 외국인에게 친절할까

멜론을 먹으면서 이 아저씨는 1969년 생이다.
▲ 멜론을 먹으면서 이 아저씨는 1969년 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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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경에 도착한 작은 마을에서 우즈베키스탄식 만두 삼사와 함께 차를 마셨다. 다시 길을 걷는데 자전거를 탄 젊은이가 다가오더니 자기 집에서 차 한잔 마시고 가란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나는 이 친구를 따라갔다. 올해 30살인 이 친구는 두살된 아들이 있다. 나는 평상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빵을 먹었다.

보드카는 독해서 별로지만 맥주라면 언제든지 좋다. 역시 주위의 현지인들이 하나둘 모인다. 함께 시끌벅적하게 차를 마시고 커다란 멜론을 썰어서 먹었다. 한 아저씨가 나에게 나이를 묻더니, 자기 나이를 맞혀보란다. 나는 최대한 젊게 생각해서 45살이라고 말했다. 알고보니 40살이었다. 햇볕이 강한 우즈벡에서 야외에서 일을 하다보니 겉늙었나 보다.

오후 2시 30분, 한잠 자고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어쨌건 태양이 뜨거울 때 그늘에서 과일을 먹으며 쉬었으니 컨디션은 좋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자기암시를 하면서 부지런히 걸었다.

좀전에 이들과 대화하면서 또 알게 된 것 한가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나이를 잘 이야기한다. 도보여행을 시작하고서 만난 현지인들의 상당수가 나에게 나이를 물어보았다. 내가 나이를 말하면 자기도 나이를 말한다. 그리고 내가 자기보다 몇살 위다, 또는 몇살 아래다, 라는 식의 제스쳐를 취한다.

나이가 많고 적고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하건 아니건 나는 어차피 차 한잔 마시고 떠나면 다시는 못볼 사람이다. 그런 사람한테 나이는 물어서 뭐하나. 아니 가고나면 그만인 외국인에게 왜 이렇게 친절을 베풀까.

손님을 환영하는 것이 유목의 전통이고 나는 이 작은 마을에서 보기 힘든 외국인이다. 그 반가운 마음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차와 맥주, 과일을 나에게 대접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왜 친절을 베풀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내가 이상한 놈이다. 친절한 마음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지인의 초대를 받아서 집으로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구르렌 가는 길
▲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 구르렌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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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걷다보니 구르렌까지 12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시간은 5시 30분. 아침 7시부터 지금까지 30km가 넘게 걸었다는 얘기다. 지금의 추세로 보면 해질 때가 되면 구르렌에 도착할 것이다. 다리가 아프고 지쳤지만 남은 거리를 확인하니까 힘이 난다. 다시 열심히 걷고 있는데 또 한사람이 자전거를 밀고 걸으면서 내 옆으로 다가왔다.

거리에서 만나는 현지인과는 항상 같은 대화를 반복한다. 이번에도 한국에서 왔다, 걸어간다, 라는 말을 꺼내야 했다. '안바르'라는 이름의 이 친구는 구르렌에서 소방수로 근무한다. 안바르는 성냥을 꺼내서 불을 붙이더니 길가로 던졌다. 그 불이 크게 일어나는 모습을 손짓으로 만들더니, 자기가 뛰어가서 두 손으로 호스를 잡고 불을 끄는 시늉을 한다. 재미있는 친구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안바르와 함께 걸으면서 얘기하다 보니 이 친구가 오늘은 자기 집에 가서 자자고 한다. 이건 또 웬 행운일까. 시간은 6시 30분. 구르렌을 몇 킬로미터 남겨둔 지점에서 난 안바르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구르렌 부근의 작은 마을이다. 미로같은 길을 지나서 들어간 안바르의 집. 이 집에도 역시 상수도 시설은 없다.

난 안바르가 가져다 준 물로 대충 손과 얼굴만 씻고 거실에 앉았다. 안바르는 분주하게 움직인다. 집에서 기르는 닭을 한마리 잡고 부인에게 요리를 맡기더니, 자기는 맥주와 보드카를 내온다. 거실의 상에는 과일과 빵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배고프고 지쳤지만 음식보다는 자꾸 맥주에 눈이 간다. 차가운 맥주를 쭉 들이켜면 피로도 풀리지 않을까.

어제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또 술 생각이 나다니. 이건 나의 숙취해소능력이 뛰어난 건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안바르가 술을 내오지 않았다면 음식을 먹던 도중에 내가 먼저 술 얘기를 꺼냈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언제나 나의 문제다. 도보여행하면서 저녁에 마시는 술은 약이 될까 아니면 독일까.

하루종일 걸은 후에 피로를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깨끗한 물로 씻는 것, 좋은 숙소에서 푹 자는 것, 그리고 잘 먹는 것이다. 첫번째와 두번째는 대도시에 가기까지는 힘들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세번째 밖에 남는 것이 없다. 그래서 오늘도 맘편하게 마시기로 했다. 매일 이렇게 현지인의 대접을 받는 것도 분명히 행운이다. 이런 행운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지만.

다시 벌어진 푸짐한 술자리

나를 초대해준 친구 안바르와 함께
▲ 나를 초대해준 친구 안바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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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사는 안바르의 친구들도 찾아와서 합세했다. 안바르의 남동생 부인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단다. '동생의 부인'을 우리나라에서 뭐라고 부르더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릴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릴리는 유창한 영어로 우리의 대화를 동시통역해주었다. 내가 맥주를 한잔 권하자 그녀는 마시지 않겠단다.

"원래 술을 안 마셔?"
"여자들은 술마시면 안돼. 이 나라의 관습이야."

안바르가 식탁에 뭔가를 엎었다. 내가 화장지를 꺼내들자 릴리는 그 화장지를 빼앗더니 자기가 닦는다.

"이건 여자들 일이야."

세상 어딜가나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어지럽히고, 여자들은 정리한다. 식탁을 청소하는데 남녀구별은 왜 할까. 게다가 여자들은 술을 마시면 안된다니? 이건 우즈베키스탄의 관습인지 이슬람의 영향인지 모르겠다. 타슈켄트에서는 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들도 많이 보았는데, 여기는 시골의 작은 마을이라서 그런 습관이 유지되는 건지도.

이런 생각도 잠시, 난 다시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술을 마셨다. 옆집에 사는 안바르의 친구는 자신의 집에서 만든 만두를 한 접시 가져왔다. 안바르가 잡은 닭도 요리가 되어서 식탁에 올랐다. 안바르는 연신 나에게 보드카를 권하고 그때마다 우리는 함께 잔을 부딪혔다.

생전 처음 보는,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을 이렇게 푸짐하게 대접해주다니. 나라면 그러지 못할 것 같다. 거리에서 곤경에 처한 외국인을 보면 도움을 줄 수 있겠지만, 집으로 데려와서 재워주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왜 이들은 나에게 친절을 베풀까. 답 안 나오는 질문이 계속 보드카와 함께 목으로 넘어간다.

나를 초대해준 친구 안바르와 릴리
▲ 나를 초대해준 친구 안바르와 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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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중앙아시아#도보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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