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6일 <오마이뉴스> 토론회에서 팽팽한 논쟁을 벌였다.
이날 오후 서울 상암동 본사 스튜디오에 진행된 '오바마 시대의 미국과 한반도' 토론회에는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 민주당 송영길 의원, 김윤재 한국외대 겸임교수(국제변호사)가 참석해 향후 한미관계 전반에 대해 두루 토론을 벌였다.
토론회의 핵심쟁점은 한미FTA 비준과 대북정책의 기조로 모아졌다. 오바마 당선자가 후보시절 한미FTA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반복적으로 피력했고, 대북 정책에서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밝히는 등 부시 현 대통령과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와는 다른 오바마... 한미FTA 어떻게 될까
김윤재 교수는 미국의 FTA 비준과 관련해 "1992년 대선에서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입장을 얘기하지 않았던 클린턴 대통령은 당선된 후에는 NAFTA 비준에 애를 썼지만, 오바마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한미FTA에 반대 입장을 얘기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장악한 미 의회로서도 한미FTA가 우선순위가 아니기 때문에 FTA 비준이 빨리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했다.
권영세 의원은 이에 대해 "한나라당도 한미 FTA가 빨리 통과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우리가 미국의 개정 요구를 기정사실화하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추후 협상 비준을 위해서도 바람직하겠냐"며 선비준을 촉구했다.
반면, 송영길 의원은 "민주당도 다수파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협상을 타결했으니 비준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우리 국회의 체면은 어떻게 되냐"며 "한·EU FTA를 먼저 체결한 다음에 한미FTA로 가자, 한나라당이 지금처럼 FTA 비준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나오는 것은 FTA 찬성론자들까지 반대편으로 돌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와 관련해서도 권 의원이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오바마가 결코 유화적 포용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 데 반해 송 의원은 "오바마가 '악의 축'을 얘기하는 부시처럼 종교적 선악의 관점으로 대북 문제를 접근하지 않을 것"이라며 큰 폭의 정책 변화를 예측했다. 송 의원은 더 나아가 "이명박 정부가 94년 북미 관계까지 경색시키려고 했던 김영삼 정부의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고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순간은 2002년 한국 대선과 2008년 미국 대선의 비교였다.
권영세 의원은 "2008년 미 대선을 보며 우리도 벤치마킹해야 된다는 분들이 있는데, 거꾸로 미국이 우리나라 선거를 벤치마킹한 것 같다"며 ▲ 오바마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정치권의 아웃사이더 위치에 있었고 ▲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이용한 인터넷 선거운동을 활발히 했고 ▲ '변화'의 슬로건에 젊은 층들이 열광했던 부분들을 들어 양대 선거의 유사성을 인정했다.
권 의원은 더 나아가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가 세라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6년 전 저희들 모습이 생각나서 안쓰러웠다"고 회고했다.
송 의원이 "오바마는 선거가 끝난 후 연설에서 포용을 얘기했는데,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이 끝난 지금도 '잃어버린 10년'을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권 의원은 "역지사지로, 이해찬 국무총리가 한나라당을 부패정당으로 몰아세운 적도 있지 않았냐? '잃어버린 10년'은 정치적 슬로건이었으니 더 이상 그런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한편, 당초 전화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던 김대용 '오마바를 위한 동부지역 아시아 연대' 회장은 "언론에 너무 자주 노출되는 것 같아 부담스럽다"며 출연을 취소했다.
다음은 각 쟁점별 토론자들의 주요발언.
▲ 한미FTA 비준
- 김윤재 : 민주당이 장악한 미 의회에 한미FTA가 우선순위가 아니다. 미국은 콜롬비아 등 중미국가들과의 FTA가 걸려있고, 민주당의 FTA 입장도 복잡하다. 노조 등 민주당 지지층의 주요한 축이 자유무역 혜택이 소수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92년 대선의 클린턴대통령은 후보시절 나프타에 대한 입장을 얘기하지 않았지만 오바마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한미FTA 반대를 얘기하고 있다. 민주당이 한미FTA 비준을 빨리 처리할 가능성이 없다.
- 권영세 : 한나라당도 한미FTA가 빨리 통과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가 끝난 뒤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해야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는데 우리에겐 선비준이 옳으냐가 쟁점이다. 오바마가 후보시절 "미국은 한국에 수천 대의 자동차를 파는데 한국은 수십만 대를 판다"고 얘기했는데, 오바마의 자유무역 개념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의 개정 요구를 기정사실화하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추후 협상을 위해서 바람직할까?
- 김윤재 : 역사적으로는 미국이 국가간의 약속을 깬 전력이 엄청나게 많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환상을 안 가졌으면 좋겠다. 미국에서 비준이 안된 채 수십년 간 잠자고 있는 조약이 너무도 많다. 상원에서 99 대 0으로 부결된 교토의정서가 대표적인 예다. 미 의회로서는 한번 부결되면 재상정이 어려우니 (가능성이 없으면) 아예 상정도 안 하려고 한다.
- 송영길 : 민주당도 당내 다수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협상을 타결했으니 비준해야 한다"는 의견이지만, 부시 행정부 하에서 비준이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만약 비준을 먼저 했는데 미국이 응하지 않으면 우리 국회의 체면은 어떻게 되나? 선비준했다가 여러 가지 논란만 일으킬 바에야 내년 2월쯤 한·EU FTA를 먼저 체결한 다음에 한미FTA로 가는 게 어떨지? 한·EU FTA를 먼저 하는 게 미국에도 상당한 압력이 될 것이다.
- 권영세 : 송 의원이 국회의 자존심 얘기를 했는데, 선비준이 국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국익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
- 송영길 : 박진 국회 통외통위 위원장이 다음주에 FTA 비준안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킨다고 하는데, 이런 식의 대응은 FTA 찬성론자들까지 반대편으로 돌리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 대북 정책과 한미공조
- 송영길 : 오바마 당선 이후 미국은 국내적으로는 소수자를 배려하고, 세계적으로는 부시 독트린이 폐기되고 다자협력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바뀔 것이다.
- 권영세 : 안보 보다는 경제에 초점을 맞추는 외교가 새 행정부의 우선순위가 되지 않을까? 오바마가 소프트파워에 많이 의존하겠지만, 두 차례의 이라크전은 부시 행정부가 했지만 1994년 북폭을 구상했던 것은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 정부였다. 민주당 정부도 자국 안보 부분의 양보는 절대 없을 것이다.
- 송영길 : 한국의 의견이 더욱 존중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일방적인 외교를 폈는데, 오바마 정부는 남북한 입장을 두루 고려할 것이다. 94년이 클린턴 정부가 영변을 폭격하려고 해서 아주 위험한 때였는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오히려 북한을 봉쇄하려고 뛰어다니는 모습으로 비쳐졌다.
- 권영세 : 대북 포용정책을 놓고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가 엇갈리지 않겠냐는 전망이 있지만, 오바마가 결코 유화적인 포용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바마도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 송영길 : 오바마는 부시와 세 가지 차이점이 있는 것같다. '악의 축'을 얘기하는 부시처럼 종교적인 선악의 관점으로 대북 문제를 접근하지 않을 것이고, 직접 대화로 핵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같은 당 힐러리 클린턴보다도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 권영세 :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거절한다면 견실한 한미동맹으로 우리 의견을 관철시키는 게 중요하다. 김대중 정부도 출범 1년 정도는 대화가 진전되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 송영길 : 나는 조급하다. 얼마 전 개성공단을 다녀왔는데, 북측 노동력 공급이 안 되고 있다. 남북관계 경색 때문에 우리 경제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이 금강산 피격 사건에서 화를 내고 있는 이유가 양자 합의로 진행하는 사업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스톱시킨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 2008년 미 대선의 교훈
- 김윤재 : 오늘의 오바마를 있게 한 것은 이라크전이었다. 미 의회가 이라크전을 지지하는 동안에 일리노이주 의원이 반전의 논리를 충분히 제공했고, 힐러리와의 대결 구도에서도 힐러리를 압박할 수 있었다.
- 권영세 : 2008년 미 대선을 보며 우리도 미국을 벤치마킹해야 된다는 분들이 있는데, 거꾸로 미국이 2002년 우리나라 선거를 벤치마킹한 것 같다. 오바마가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정치권의 아웃사이더 위치에 있었고,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이용한 인터넷 선거운동을 활발히 했고 ▲ '변화'의 슬로건에 젊은 층들이 열광했던 부분들이 2002년 한국 대선과 유사하지 않나?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가 세라 페일린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며 6년 전 저희들 모습이 생각나서 안쓰러웠다.
- 하승창 :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가 닮은 꼴'이라고 했는데?
- 권영세 : 나는 대선 과정을 얘기하는 것이고, 청와대는 두 사람 삶의 역정을 얘기하는 것같다. 청와대에서도 한나라당이 보수이고 민주당은 리버럴이라는 걸 모르겠나? 두 사람 다 개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통령이라는 최고자리에 올라간 역정이 같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 송영길 : 오바마가 당선 후 연설에서 나를 안 찍은 사람의 목소리도 듣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는 그런 언급이 나온 적이 없는 것 같고, 한나라당은 선거 끝난 후에도 '잃어버린 10년' 얘기를 하고 있다.
- 권영세 : 잃어버린 10년은 정치적 슬로건이었다. 역지사지로, 이해찬 국무총리가 한나라당을 부패정당으로 몰아간 것과 같다. 더 이상 그런 얘기 안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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