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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임, 나윤숙에게 연민을 느끼다

김수임은 부민관의 청중석 한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부민관에 온 것이었다. 그녀를 초청한 것은 나윤숙이었다. 나윤숙은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여류 명사들과 나란히 단상에 앉아 있었다. 행사 이름은 ‘임전보국 부인결전대회’였다. 김수임은 그런 험악한 이름을 좋아하지 않았다. 갈수록 시국은 삼엄한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그녀가 소망하던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계는 그녀에게서 영영 멀어지는 것 같았다.

부민관은 그녀가 머무는 기숙사 바로 옆에 있었다. 참석하지 않으면, 그 가까운 데서 들여다보지도 않았다고 핀잔을 먹을 것이 마음에 걸려서 마지못해 온 것이었다. 이미 여류 명사가 되어 있는 나윤숙은 집을 장만해 이사한 지 오래였다.

역사와 시국을 알지 못하는 김수임이었지만 단상에 앉아 있는 나윤숙을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말했다 하면 언제나 ‘사랑’이거나 ‘독립’이었던 나윤숙이 왜 저런 강연에 발 벗고 나서는지를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문학에도 재능이 있는데다 똑똑하고 사교성이 있는 나윤숙이었다. 저런 일을 하지 않고도 평온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그녀였다. 김수임은 최근 들어 보이는 나윤숙의 변모된 모습을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마침내 나윤숙의 강연 차례가 되었다. 그녀의 강연 제목은 ‘여성도 전사다’였다.

“이번에 영·미국의 죄상을 들어 알고 보니까 참으로 황인종으로서는 괘씸하고 분한 일이 여간 많지 않습니다. 그 사탄의 정체에 같이 춤추는 여자가 동양에 한 분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입니다. 이 여자는 어떻게 된 셈인지 동양 여성이면서 미국 발바닥을 핥아야 행복감을 느끼는 변태 여성입니다. 미국의 온갖 향락성, 개인주의 관념에 잔뜩 물이 먹은 이 여자는 그 생활이 말 못하게 향락적입니다. 미국에 오가며 온갖 망령된 사상을 추려서는 남편인 장개석의 머리에 불어 넣어 줍니다. 이런 여성이 동양에 있어 사태를 어지른다는 것은 같은 동양 여성으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보다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가슴에 대화혼의 총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 가문에서 쫓겨나더라도 나라에서 쫓겨나지 않는 며느리가 됩시다.”

김수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녀는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그러고는 교회에서 빌려온 녹음기를 켰다. 아름다운 성가가 울려 나오자 그녀는 뛰는 가슴을 다소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나 가나안 복지 귀한 성에 들어가려고/ 무거운 짐을 벗어 버렸네./ 나 홀로 다시 방황할 리 전혀 없으니/ 내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그녀는 녹음기와 함께 성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내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내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

그녀는 몇 달째 소식이 없는 이강국을 떠올렸다. 창문이 물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자위에 함초롬히 고인 눈물 때문이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문이 소리 없이 열리더니 모자를 눌러 쓴 웬 청년이 들어왔다. 놀랍게도 이강국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어 열십자를 만들어 보였다. 김수임의 눈에는 그것이 구원의 작은 십자가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강국은 접혀진 쪽지를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는 이강국의 손바닥에 놓인 쪽지를 집었다. 그러자 이강국은 손으로 모자를 한 번 들썩 하더니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오늘 밤 반도호텔 414호.’

얼마 후 다시 문이 열리더니 뜻밖에도 나윤숙이 들어왔다. 그녀는 무명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김수임을 안았다.

“수임아,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

나윤숙의 얼굴에는 눈물이 번져 있었다.

“언니, 그만 진정해. 우리 옛날로 돌아가. 교회 다니면서 봉사활동도 하고. 그러면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나윤숙은 김수임을 안았던 팔을 풀었다.

“이강국 선생 같은 이가 나를 보면 어떻게 대할까?”

김수임은 그녀에게 이강국이 방금 다녀갔으며 오늘 밤 만나기로 되어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윽히 나윤숙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나윤숙은 혼잣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겠어. 이광수 선생 같은 이는 나를 얼마나 칭찬하는데. 나는 그런 훌륭한 분의 말을 들으면 되리라고 생각해서 행동했는데, 요즘 들어서는 뭔가 크게 잘못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나윤숙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다.

“요릿집에서 혼자 나와 버렸어.”

김수임은 난생 처음으로 자기가 나윤숙보다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언니, 그냥 교사 노릇만 성실히 하면 안 될까?”
“벗어날 수가 없어. 다음 주에는 또 중국에 가야 해.”

나윤숙은 자신의 경솔한 삶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녀는 술기운 때문인지, 아까 부민관에서 강연했던 내용과는 딴판인 말들을 마구 주워섬기고 있었다. 시국강연회는 차라리 점잖은 편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끌려 다녀야 할 모임들을 나열했다. 전쟁문학의 밤, 결전문예좌담회, 황민문학 총력운동, 신도실천운동, 그리고 일본 해군 견학과 만주 개척촌 시찰에다 최근 들어 대동아문학자대회가 추가되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이광수의 말을 거역할 수 없어 대동아문학자대회에 따라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본군이 점령한 것은 점과 선뿐

1944년 11월, 중국 남경에서는 제3차 대동아문학자대회가 열린다. 원래 이름대로 동아시아권 대표 문인을 두루 참석시켜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데 목적이 있는 대회였다. 그래서 일본, 한국, 만주, 중국, 대만은 물론 버마, 태국, 자바, 필리핀, 인도지나 등의 위성국 문인들이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동경에서 열린 창립 대회에는 조선의 박영희, 유진오, 이광수 등이, 2차 대회에는 유진오, 유치진, 최재서 등이 참석했다. 그런데 태평양전쟁으로 제해권은 물론 제공권까지 빼앗긴 시점에 열린 3차 대회에는 아시아 남방계 대표들이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본, 한국, 만주, 중국, 대만 대표만 참석하게 되었다. 일제는 급히 참석자를 늘리도록 조치했다. 여기에 나윤숙이 걸려들게 된 것이었다.

이틀간의 대회를 마친 그들은 상해로 가는 도중, 중국의 지상 낙원이라는 소주(쑤저우)에 들렀다. 일행은 40명씩이나 떼를 지어 소주 관광을 마치고 소주 관동군 사령부를 방문했다. 대회에 처음 참가한 평론가 팔봉 김기진은 매우 의욕적이었다. 그는 언제나 이광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었다.

전황이 급박할 때였다. 화급한 일로 사령관은 자리를 비워야 했다고 참모장이 양해를 구했다. 참모장은 나이가 50줄로 보이는 일본군 소좌였다. 그는 기립한 자세를 끝까지 흐트러트리지 않으며 문인들에게 전황을 브리핑했다. 김기진은 턱을 조금 치켜든 자세로 키 작고 나이든 일본군 소좌의 얼굴을 정시하고 있었다. 

“우리 일본이 지금 지나 대륙을 점령했다고는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점령하고 있는 것은 점과 선뿐입니다. 천진, 북경, 서주, 남경, 상해… 이 같은 점들과, 점들을 연결하고 있는 선만을 우리 일본이 가지고 있습니다. 점과 점을 연결하는 철도의 좌우 5마일 밖으로는 사실 일본군의 점령 지대가 아닙니다. 여기는 왕정위 정권도 미치지 못하고 장개석 정권도 미치지 못하며 오직 팔로군이 지배합니다. 그들은, 즉 지나 공산당은 일정한 방침 밑에 구체적 설계를 합니다. 그리고 구체적 설계 밑에서 조직적 실천을 합니다. 여기에는 장개석도 왕정위도 일본군도 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기진은 오싹 몸을 떨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몹시 감명 받은 듯 상기된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대동아문학자대회#김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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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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