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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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2년 만에 다시 선거시즌을 맞았다. 12대 KBS 노동조합 정·부위원장을 뽑는 선거운동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빡빡한 지역연설회 일정도 20일 모두 끝났고 21일 오전 11시 KBS 본관 공개홀에서는 마지막 합동연설회가 열렸다. 각 후보들이 직접 조합원 앞에 나서 한 표를 호소하는 것은 사실상 이날이 마지막. 주말에는 각 후보 선거대책본부가 '텔레마케팅' 읍소작전에 매달릴 것이다,
21일 합동연설회에 참석한 각 후보들은 모두 '위원장감은 바로 나'라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네 명을 공동 노조위원장 시키면 산적한 KBS 문제가 모두 풀리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기호 1번 강동구-최재훈 후보는 'KBS 사원행동 후보'라면서 2번 박종원-박정호 후보와, 4번 김영한-김병국 후보를 겨냥했다. 나머지 후보들은 주로 강 후보를 비판하며 '박승규 집행부 심판론'을 주장했다. 기호 3번 문철로-한대희 후보는 "둘(현 노조, 사원행동) 다 자격없다. 기호 3번만이 희망"이라며 중간지대에 섰다. 강동구 후보는 연설 중 '2번 4번 후보가 당선된다면 사장 퇴진 투쟁에만 매몰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올해 내내 11대 노조가 비판받았던 내용이기도 해 눈에 띄었다.
정확한 시간 엄수 속에 낮 12시 5분 무렵, 연설회가 모두 끝났다. 연설회를 취재하고 있는 동안에는 기자였지만, 연설회가 끝나니 '이를 지켜본 몇 안 되는 KBS 밖 국민'이었다.
구조조정만 막아내면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을까?
수신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국민, 그 입장에서 평가하자면 이번 연설회 역시 '허했다'. '국민의방송' KBS 노조위원장 선거임에도 정작 연설문에 '국민'이라는 단어는 기호 3번 진영에서만 몇 번 나왔을 뿐이다.
내심 'KBS는 국민의 방송입니다', '국민들이 KBS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신료 내는 국민들', '국민들의 신뢰를' 등의 식상한 말이라도 나오기를 바랐지만 올해도 그렇지 않았다. 기호 3번 문철로 후보가 "국민은 KBS 방송 보고 감동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 정도다. 유세 시간이 짧아서였을까?
대신 작금의 현실을 반영하듯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터져 나왔다. 각 후보 모두 연설문 여기저기에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배치되어 있었다. '복지'도 절대 강조지점이었다. 모두 '구조조정 저지 전문가'와 '복지 전문가'를 자임했다.
맞다.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이해와 요구에 따라 안정된 위치를 절대적으로 확보해주고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 KBS의 인위적 구조조정도 막아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KBS 인원이 결코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군데군데 묶여있고 막혀있는 비효율성과 비합리성부터 걷어내는 게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공영방송 사장이 광고주 앞에 빌빌거리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게끔 적절한 수신료 인상도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KBS가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새삼 드는 의문 한 가지. 과연 지금 이 마당에 KBS 구조조정만 막아내면 국민들이 KBS를 확 신뢰할 수 있을까? 공영방송 노동조합 선거인데, 국민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이유다.
지난 11대 선거에서 승리한 박승규-강동구 후보의 당시 모토가 '코드 박살, 복지 대박'이었다. 눈에 확 들어오긴 하지만 난 당시 공영방송스럽지 않고, 국민의 방송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다. KBS의 진짜 주인인 국민들에게 '방송 복지 대박'을 안겨주는 일도 KBS 노조의 큰 일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지난 선거에서도 이 부분은 치열하게 다퉈지지 않았다.
KBS는 늘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고, 그 수신료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겠다'는 가치를 내세우는데 KBS 노조 선거는 너무 안으로만 매몰되고 있다는 아쉬움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물론 각 후보들이 내세우는 각종 구호와 공약이 종국적으로는 공영방송 제 길 가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노조 선거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다. 각 후보들 모쪼록 끝까지 건투하시되,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지 간에 KBS 노동조합 고민의 귀결점은 '국민'이어야 한다.
말이 나온김에 KBS 조합원들에게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한 마디 보태자. KBS 노조 선거가 끝나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수의 사원에게 이런 말이 나오곤 했다.
"한나라당 미워 죽겠지만, 뉴타운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 찍는 유권자들과 똑같다."
공영성과 다양성 추구의 기반과 KBS의 위상, 역할 제고보다는 개인주의·이기주의가 만연한 조직 문화를 비판하는 소리였다. 선거때만 되면 '복지안동(伏地眼動)'하며 눈치를 보고, 귀가 얇아지는 조합원들이 많다는 말도 꽤나 많이 들었다.
KBS 노동조합이 가장 신경써야 할 것은
네 방송사 중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임금과 불안정한 위치 등이 당장의 양심과 소신보다 먼저 맘에 걸릴 수는 있겠다. 그러나 KBS 노조 선거에 이런 기대심리는 없어야 한다. 더군다나 작금의 상황에서 KBS는 그럴 겨를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도 안 된다.
연설문을 참고하고 각종 홍보물을 읽어보니 네 후보 모두 현재 KBS 상황이 '비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름의 해법을 내놓고 있다. 면밀히 따져 뽑자. KBS에서의 내 미래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KBS 미래도 생각하는 공영방송 일꾼들이어야 한다. 국민을 품고 국민의 시선과 눈초리를 신경써야 하는 임무와 사명을 갖고 있어야 한다.
KBS 노조는 조합원들을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다. 더해서 국민의 신뢰를 지켜야 하는 더 막중한 책임이 있다. KBS는 '국민의 방송'이다. KBS의 'K'는 'Korea'이면서 'Kookmi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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